▲ 수가마을은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록 세상의 소음과 멀어지는 마을이다. 한때는 풍족하고 여유로웠지만 지금은 개발 바람에 밀려 오지가 돼 버렸다. 김병찬 기자 kbc@

조만강 앞에 두고 금병산 품에 안겨
예부터 물 좋고 강변 아름다워 '수가'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조그만 터널을 지나야 한다. 신기하다. 터널이 그리 길지도 않은데 이곳을 통과하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장유면 수가리 수가마을.
 
수가로를 따라가다 보면 왼쪽에 마을 표지석이 나타난다. 그리고 곧바로 터널을 만나게 되는데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이와 폭이다. 컴컴한 터널을 통과하자 수가마을의 풍경이 펼쳐졌다.
 
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이 터널만이 바깥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옛날에는 수레나 자전거를 이용했으니 넓어보였겠죠. 지금은 워낙 큰 차들이 많아 좁게 느껴지는군요."
 
마을 뒤편으로는 금병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앞으로는 조만강이 흐르고 있다. 옛날에는 마을 앞 들판이 모두 갯벌이거나 갈대밭이었다고 한다. "통발만 넣어도 게와 조개, 고기가 쉽게 잡혔다고 그래요. 예로부터 이곳은 자원이 풍족한 곳이었습니다." 조백현(57) 이장이 말했다.
 
수가마을에서는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가락국시대까지 쓰였던 반월형 칼을 비롯해 골각기, 석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기도 했다. 고속도로 공사 때는 마을주민들이 몰려나와 직접 패총을 확인하기도 했다. 지금도 들판에서 땅을 파면 굴 껍데기와 조개 껍데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물이 좋은 동네라 해서 수가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지만,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조만강의 아름다운 풍경도 마을 이름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고속도로 놓인 뒤 세상과 단절된 듯
굴다리 통로가 바깥 이어주는 유일한 길

마을에는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집들이 남아 있다. 마을 앞에는 고속도로가 놓여 있어 소음이 적지 않지만, 마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조용하고 평화로운 고향의 정취가 느껴졌다. 마을 사이 사이로 난 작은 길들을 따라 여유롭게 산책하듯 걸어보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길옆으로 온갖 채소들과 들꽃 등이 눈에 띄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자그마한 터널은 수가마을 주민들이 마을 밖을 오갈 때 사용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마을 뒤쪽으로 난 길을 올라가다 보니 양 옆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시원한 대숲이 형성돼 있다. 시멘트로 네모 반듯하게 만들어 놓은 동굴 비슷한 것이 보였는데, 우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쓰기 위해 만들었어요. 기념하는 의미에서 글자도 새겨 넣었대요." 농사를 짓기 위해 길을 가던 한 주민이 말했다. 흐릿하긴 했지만 '깨끗이 하십시오'란 글자가 보였다. 지금은 오염을 막기 위해 돌로 메워놓은 상태다.
 
수가마을과 가동마을 사이 골짜기에는 주적방과 강신모롱이가 있다. 둘 다 들판이름이다. 주적방은 짠물이 들어오는 곳에 둑을 쌓아 땅을 개간한 곳을 말하고, 강신모롱이는 지대가 높아 짠물이 들어와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곳을 일컫는다고 한다.
 
장유에서 가장 많은 농사 짓던 마을
개발의 뒤편에서 '오지'처럼 떼밀려


1960년대 후반만 해도 수가마을은 장유면에서 농사를 가장 많이 짓던 곳이었다. 벼농사와 보리농사를 주로 지었고, 주 수입원이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농사를 못짓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하니 풍족함의 정도가 짐작이 간다.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당산나무와 당산제가 없다. "소득 수준이 높다 보니 부산이나 서울 등 외지로 출타를 많이 했죠. 견문이 넓어지다 보니 미신이 일찍 없어진 게 아닌가 해요." 마을 어르신 김종만(71) 씨가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추억을 더듬었다. "그때는 이웃집 아래채에 가서 호롱불을 켜놓고 선배들과 한담을 많이 했어요. 여름에는 정자나무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요. 조만강에 가서 수영도 하고 낚시도 하고."
 
그러나 번성했던 수가마을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사정이 어려워졌다. 1960~1970년대에는 80가구가 넘었지만 하우스 농사가 번창하면서 논농사의 수입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급기야 1970년대 들어서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됐고, 많은 양의 농지가 사라졌다. 지금은 30가구 70~80명의 주민들만 살고 있다.
 
"지금 우리 마을은 많이 낙후됐어요. 잘살았던 동네가 언제부턴가 오지가 됐습니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적절한 방법이 모색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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