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전 의기투합·이미용 기술 연마
독거노인·이주노동자 대상 자비봉사

매월 둘째 주 화요일이 되면, 내외동에 사는 이순옥, 김호자, 손순이, 박부영(아래 사진 왼쪽부터) 씨 등 주부 4인방은 몸과 마음이 특히 바빠진다. 이날, 대가족의 안주인인 김호자(62) 씨의 아침은 그야말로 전쟁터 같다. 아침 식사 준비하랴, 출근하는 자녀들 챙기랴, 손자·손녀들 어린이집에 보낼 준비하랴…손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 일들을 다 마치고 나면 몸에서 힘이 쑤욱 빠져나가 버린다. 손순이(51)·이순옥(53)·박부영(55) 씨 역시 사정은 엇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주부 4인방은 화요일만 되면 아침 전쟁을 치르고 난 뒤 내외동의 한 요양원에 모인다. 이들은 이곳에서 1년 넘게 이미용 봉사를 하고 있다.
 
이미용 봉사는 다른 봉사와 달리 준비해야 할 게 적지 않다. 우선 커트기술 연마 등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들은 1년여 전 이미용 봉사를 하기로 뜻을 모은 뒤, 한 미용학원에서 4개월 동안 커트기술을 함께 연마했다. 한 달 학원비가 20만 원이나 됐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자비로 부담했다. 기술을 배우고 나니 가위, 전기이발기 등 이미용 장비가 필요했다. 주부 4인방은 이왕 하는 것, 어느 정도 괜찮은 수준의 장비를 구입했다. 이런 저런 장비를 갖추다 보니 주머니에서 100만 원이 훌쩍 빠져 나갔다. 맡언니 역할을 하는 김호자 씨는 "초기엔 돈이 좀 들어갔지만 지금은 왕복 차비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자비 봉사지만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미용 봉사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이들은 최종 리허설을 실시했다. 남편을 비롯한 가족과 서로의 머리를 잘라주며 실전에 대비했다.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박부영 씨의 남편은 왼쪽과 오른쪽의 머리 길이가 달라 회사 동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물론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박부영 씨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매번 활력이 생기는 건 아니다. 아침 전쟁을 치른 뒤 대충 점심을 챙겨먹고 나면 마음에서 갈등이 일기도 한다.
 
'오늘 몸도 안 좋은데 그냥 하루 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고민은 잠시, 마음의 지우개로 머릿속의 생각을 지워버린다. 미용 장비를 들고 일단 현관문을 나선다. 손순이 씨는 "사람인지라 때론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릴 때면 일단 집 밖을 나서고 본다. 집을 나서서 봉사활동 현장에 도착하면 '오늘도 잘 해야지'하는 다짐만 남는다"고 말했다.
 
요양원에서는 머리를 자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다리고 있다. 건강한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지만,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어르신들의 경우 다듬기 어려운 머리를 한 경우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선뜻 손이 안 갈 정도로 끈적거리는 머리도 있다. 처음에는 저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지금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됐다.
 
어르신들은 외출할 일이 별로 없으니 머리 스타일에 별 신경을 안 쓰겠거니 했는데, 사정은 전혀 달랐다. '이 쪽을 이렇게 해줄 수 있겠느냐'는 주문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손순이 씨는 '예, 물론이죠' 웃으며 주문대로 손질을 한다. 어르신들은 말끔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 전환이 좀 된 듯 '고맙다' 한 마디를 건넨다. 이날 주부 4인방은 두 시간 동안 어르신 스무 명의 머리를 깎았다.
 
이들은, 매주 첫째 주 금요일에는 봉황동에 위치한 방주원에서, 매월 마지막 주에는 대동아파트에서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이미용 봉사를 해오고 있다. 4인방은 "우리가 무슨 '동네일꾼'이냐.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는 수많은 진짜 일꾼들이 있는데 부끄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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