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이 꽉 차오른 싱싱한 배추밭 너머로 보이는 하사촌마을의 전경. 김정은 kimjjung@

덩치 큰 덤프트럭과 자동차들이 빈번하게 다니는 생림 나전로. 나전로를 따라가다 집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자 이내 구불구불한 마을길이 나타났다.
 
마을 바로 앞에 간선도로가 있는데도 안쪽은 의외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 흔한 공장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두런두런 어르신들의 이야기 소리와 소 울음 소리, 라디오 소리, 새가 우짖는 소리 등 자연마을의 소소한 소리들만 들려왔다.
 
둘러보니 집집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감들이 잘 익었다. 돌담길에다 좁은 길들이 이어지고 집과 집들이 오밀조밀 연결돼 이어져 미로 같은 느낌도 들었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실개천의 물은 가물어서 그런지 발목 정도 깊이밖에 되지 않았다. 흐름도 잔잔했다.
 
▲ 포구나무와 도토리나무 등 3종의 나무가 모여 있는 할머니 당산.
잘 가꿔놓은 전원주택도 보였고, 포구나무와 도토리나무 등 3종의 나무가 모여 있는 할머니 당산도 눈에 띄었다.
 
더불어 누런 벼들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이곳은 생림면 사촌리 하사촌(下沙村)마을이다. 앞뒤로 산들이 늘어서 있어서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는 이 마을에는 현재 150가구 4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앞뒤로 산 늘어서 사계절 변화 뚜렷
땅 파면 도자기용 흙·사기 많이 나와
마을 이름 또다른 내력으로 추정
난 많고 굴 발견된 '삼지바위' 유명


마을 이름에 모래 사(沙)자가 들어있지만, 주민들은 사기가 많이 출토된 곳이라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 추측했다. 오래 전 하사촌마을에는 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었고, 지금도 땅을 깊이 파면 그릇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는 흙이 나온다고 한다.
 
"방위로 따지자면 우리 마을은 북쪽에 있으니까 상사촌마을이 됐어야 하죠. 그런데 이곳 사촌리는 물이 남에서 북으로 흘러요. 물이 흐르는 아래쪽에 위치한 사촌마을이라 하사촌마을이 됐다고 하더군요." 하계욱(75) 하사촌 경로회장이 말했다.
 
하사촌마을은 용 모양을 한 무척산의 아래쪽 그러니까 용의 엉덩이 부분에 위치해 있다. 마을 뒤편에는 시루처럼 생긴 시루봉이 있고, 장군바위·상여바위·말 바위 등 독특한 모양과 이름의 바위들이 있다. 삼지바위란 곳에서는 틈 사이로 물이 나오고 굴도 발견됐다는데, 특히 바위 일대에 난이 많이 났다고 한다.
 
하사촌마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마을 어르신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태어난 사실을 알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은 3살 때 쯤 진영으로 이사를 갔는데, 아직도 어릴 적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는 유난히도 단합이 잘됐던 옛 어른들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마을에 있는 건물과 땅 등을 처리하려고 하는데 알아보니 '하노금' 씨가 주인이더군요. 하노금…. 처음엔 하노금이란 사람을 수소문했죠. 그런데 문헌을 보니 하사촌마을에는 하씨와 노씨, 금(김) 씨가 많이 살았다고 합디다. 그들의 성을 한 데 모아 '하노금'이란 이름을 만들고, 건물과 땅을 공동으로 소유했던 거죠." 하원식(56) 이장이 말했다. 그 '하노금' 소유의 건물과 땅은 현재 마을 소유로 되어 있다.
 
하사촌마을의 농지는 천수답이다.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로가 부실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마을은 낙후돼 있었다. 그러다가 그 시기에 마을주변으로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마을의 규모도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는 농사 대신 한우 사육을 하는 농가가 많아졌다.
 
낙동강환경청 '도랑살리기' 지역 선정
황금들녘과 소소한 가을정취 가득


▲ 하사촌마을 주민 모두가 도랑살리기에 나섰다. 이 도랑에도 곧 맑은 물이 흐를 것이다.
하사촌마을은 올해 초 낙동강 환경유역청으로부터 '도랑 살리기' 지역으로 선정됐다. 매월 환경관련단체들과 자원봉사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마을과 도랑을 청소해 준다. 물도 많이 깨끗해졌고, 비닐과 농약으로 엉망이었던 공간들도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주민들의 의식도 달라졌다. 마을의 일이라면 내 일처럼 나서서 돕고 있다.
 
앞으로 하사촌마을은 도랑가에 야생화도 심고 빨래터도 새로 만들어 사람들이 찾아오면 자연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깨끗한 마을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또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하사촌 소류지도 깨끗하게 정비돼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언젠가는 저기 난립해 있는 공장들도 다 정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까지 이 마을을 잘 꾸려가고, 버텨내면 우리 마을은 김해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 돼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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