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프랑스의 철학자·문인)를 전공하겠다던 친구의 골방에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만났다. 얼마 후 그 친구는 1980년대 대학생들을 강제징집하던 녹화사업의 대상자로 군에 입대했다. 당시 내가 사르트르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시몬느 드 보봐르와의 계약결혼과,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행동하는 지성'의 표상으로 불린다는 것 정도였다. 그 때 이 책을 읽은 느낌은 무척 난해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지만 지식인의 위치에서 난세를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가짜지식인'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가슴 밑바탕에 어렴풋이 그려졌다.
 
이 책은 사르트르가 1966년 일본에서 세 번에 걸쳐 했던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의 기능', '작가는 지식인인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지식인이란 자기 내부와 사회 속에서 구체적 진실에 대한 탐구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 사이에 대립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은 사람이다. 더 나아가 진정한 지식인은 항상 자기가 속한 사회적 위치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하면서 피지배계급과 연대하고, 나아가 지배계급에 맞서 공동으로 투쟁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인은 자신의 보편주의가 어떠한 계급의 특수주의에 종속되는 것을 극구 거부해야 한다.
 
그 반면에 지식전문가와 가짜지식인이 있다. 지식전문가는 지배 권력에 예속되어 자신의 능력을 제공한 대가로 물질적 만족을 누리는 상부구조의 2급 봉급자, 혹은 관리이다. 문제는 가짜지식인이다. 다른 말로 사이비 지식인인데 진정한 지식인처럼 '아니다'라고 말하는 법이 없다. 그는 '아니다, 하지만…', 또는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하고 즐겨 말한다. 여기서 우리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시키는 동물임이 실천적 측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가짜지식인을 샤르트르의 친구인 폴 니장은 '집 지키는 개'라고 명명하였다.
 
서슬 퍼런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부정권 체제를 건너면서 이 땅의 많은 지식인들이 시쳇말로 권력의 주구가 되어 다수 민중의 정의와 보편적 이익을 외면하는 데 앞장서 왔다. '아니다, 하지만…',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라는 자기 합리화를 무기로 내세우고 객관적 진실에 쐐기를 박아 왔던 것이다.
 
사르트르는 깊은 사색과 자기 성찰에 더해 '아니다'라는 구체적 명제가 확립되면, 실천적 행동에 돌입하였다.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는 늘 그의 안경 너머로 쏘아보는 듯 살아 있는 눈빛이 현재해 있었다. 이러한 사르트르의 구체적·실존적 행동철학은 '앙가주망'이라는 참여문학을 이끌어내기도 하였으며, 이 땅의 소수의 양심적 지식인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이 한 권의 책이, 부정의와 부조리에 대응하는 나의 행동준거의 틀과 기준을 제시해 주었다.
 
그렇지만 그 흑백필름을 거꾸로 돌리면 돌릴수록 점점 더 왜소해지고 부끄러워짐을 감출 수 없다. 브레히트의 시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을 뇌이면서 이 글을 맺는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Who >> 시인 남승열
경북 울진 출생. 1997년 전국 한밭시조백일장에서 장원, 1998년 <시조문학> 천료로 등단했다. 첫 시집 <윤이상의 바다>는 2003년 문예진흥원 우수시집으로 선정됐다. 2010년에 두번째 시집 <즐거운 감옥>을 펴냈다. 현재 김해문인협회 감사, 구지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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