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는, 그 실체를 규명하기가 어렵다. 역사 기록이 부실해서이다. 그래서 고분과 유물 등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역사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이영식 교수는 그 지난한 가야 역사 발굴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의 연구실은 그 역사를 찾아나서기 위한 '전진기지'이자, '공장'이다.

▲ 가야를 연구하고, 가야를 찾아나서고, 가야에 대한 글을 쓰는 이영식 교수의 연구실은 가야를 위한 '공장'이며, '전진기지'이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연구하고 글쓰고 하는 모든 것들 이곳 연구실에서 이루어지죠
유적탐사 준비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현장도 매우 중요해요
600년이나 존속했던 가야인데 고교 역사책엔 다섯줄 뿐이죠
대학원 시절부터 가야에 집착한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가야'의 분량은 얼마나 될까. 불과 몇 줄이다. 12개 이상의 나라들로 구성된 가야는 고구려·백제·신라와 함께 600여 년을 존속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영식이 가야사를 전공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이런 의문에서 비롯됐다. 600여 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가야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 고작 '가야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의 호기심에 불을 댕겼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가야에 대해 배운 게 별로 없었어요. 이상하지 않나요? 600년이나 존속했던 나라인데.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죠. 현재, 가야의 성립에서 멸망까지의 일들이 고등학교 역사책에는 단 다섯줄로만 기록돼 있습니다. 그것도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성립을 기술하는 부분 안에 속해 있습니다.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 다른 나라의 성립단계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가야는 멸망까지를 다 끝내버리는 거죠. 그나마 분량이 많이 늘어난 게 이 정도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은 드물었다. 대중을 위한 역사책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 출간된 해가 1996년이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조선의 역사가 그 정도였으니, 연대기적으로 주요한 사건이나 왕의 업적만 암송하는 학교의 역사 시간이란, 인체를 엑스레이로 투과해 보았을 때 겨우 드러나는 뼈대처럼 앙상한 것이었다.
 
이영식은 이런 현실에서 가야의 정확한 성립과 멸망 그리고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전개됐는지를 궁금해 했다.
 
"고려대 사학과 대학원 재학 시절인 지난 1981년부터 2년여 동안 '가야'라는 단어가 들어간 논문이란 논문은 다 찾아다녔어요. 논문이 있다는 풍문이 들려오면 어디든 달려갔지요. 그랬는데도 가야 관련 논문은 10편밖에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가야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적었다는 말이다.
 
▲ 각종 자료와 책들로 빽빽한 이영식 교수 연구실.

이영식은 고려대에서 한국고대사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지난 1983년,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학비를 지원받아 유학을 간 당시의 한국 학생들은 모두 50명이었는데, 그 중 49명은 일본어 시험을 쳐 자격을 획득했다. 이영식만이 고대사 연구를 한다는 명분으로 일본어 시험을 생략한 채 일본 유학의 길을 밟았다. 고려대와 일본 와세다대가 석사학위 교환 협약을 한 덕분이었다.
 
"일본어를 할 줄 몰랐는데, 일본에서 국비를 받아 공부를 했지요. 가야를 연구하는 데에는 일본 고대사 연구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일본 고대사인 <일본서기>가 보고 싶었어요. <일본서기>는 우리 고대사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다른 한 장의 거울이거든요. 일본이 우리의 고대사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데, 그건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서이죠. 만 7년 반동안 일본 생활을 했습니다. 와세다대에서 일본 고대사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일본에서 돌아와 고려대에서 한국사학과 강사로 활동한 지 2년 쯤 됐을 때, 인제대에서 가야사 전공 교수를 찾았다. 이영식이 본격적으로 김해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1993년 인제대 사학과 조교수로 부임한 이영식은 김해시는 물론 경남도의 자문을 맡느라 정신없이 한 시절을 보냈다. 가야사 연구자가 드물었던 시절, 이영식은 홍익대 역사교육과 김태식 교수와 함께 가야 관련 고대사 학술회의의 발제와 토론을 도맡다시피 했다. 발제자와 토론자의 자리만 바뀌었을 뿐, 10여 년 동안은 두 학자가 가야사 연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영식은 "지금은 가야사 연구자 수가 많아졌고, 가야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반가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영식의 활약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제대에서는 가야사를 핵심 교양과목으로 개설해 놓고 있다. 가야사가 핵심 교양과목이라니, 적어도 김해에서는 가야의 역사가 다른 어떤 왕조의 역사보다도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당연한 일일 터이지만, 김해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이영식은 강의실과 연구실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현장을 매우 중시했다. 가야 역사의 현장을 찾은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도 그는 기꺼워 했다. 현장에서 나온 질문은 그에게 연구의 자극과 계기가 됐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은 질문은 '왜 가야는 나라가 그렇게 많은가'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각 산들 사이의 분지에 세워진 가야의 여러 나라들을 연구해 답을 내놓았습니다.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을 보고 나면, '두 분의 능이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나'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왕의 세력 못지 않게 가락국 왕비족의 힘을 연구하는 데 자극제가 됐지요."
 
이영식은 지금까지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인제대에 온 이후에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단행본도 16권 출판했다. 그 외 논평과 발굴보고서는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이 연구실에서는 연구하고, 글 쓰고, 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져요. 그래서 저는 이곳을 '공장'이라 불러요. '전진기지'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현장 탐사를 나갈 때, 유적 탐방을 나갈 때 모든 준비가 여기서 이루어지니까요."
 
그의 연구실은 창문만 빼고는 온통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책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에서 발간된 책들도 부지기수이다. 서가에 자리가 모자라 이중으로 책을 꽂아놓기도 했다. 이영식도 책이 모두 몇 권인지를 알지 못한다.
 
"책이 너무 많아서 당장 보지 않을 책들은 학교 도서관 서고에 보관하고 있어요. 여러 번 도서관에 책을 내려 보냈어요. 사람들은 '이 책들, 다 본거냐'고 묻곤 하는데, 그건 아니고, 계속 보고 있는 거지요. 급히 참고해야 할 책이 있는데 어디 있는지를 알지 못해 다시 산 경우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책은 두 세권씩 사기도 했어요."
 
이영식은 얼마 전부터 김해발전전략연구원과 함께 '김해학' 연구 준비를 해왔는데, 오는 30일 '김해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본격적인 김해 지역학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이다. 이영식은 '김해학'을 통해 정치·행정·경제·무역·교육·건축 등 각 분야에 걸쳐 '김해'를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하는 한편, 시민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한편, 이영식은 현재 <김해뉴스>에 격주로 '새로 쓰는 김해지리지'를 연재하고 있다. 2010년 12월 15일에 시리즈를 시작했으니,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김해의 구석구석을 직접 발로 디디며 기록하는 현지조사·현장답사 방식이라 그의 글은 생생하기만 하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이 시리즈는 행간과 자간마다 그의 땀방울이 짙게 배어있다. 그는 말했다. "'새로 쓰는 김해지리지' 시리즈 때문에 2년 가까이 다른 건 아무 것도 못했어요. 하지만 김해의 구석구석을 취재하는 동안 풀뿌리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사연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절로 했어요. 제발 '사진 와 찍습니꺼'하면서 나무라지는 말아주세요! 설마, 저 혼자 김해를 짝사랑 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 이영식 교수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한국고대사(문학석사)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 일본고대사(문학박사)
▶현재 인제대학교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 관장
▶가야문화연구소 소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경상남도 문화재위원회 위원
▶국립김해박물관 운영위원회 위원장
▶김해시 학술위원회 위원
▶김해발전정략연구원 운영위원
▶(재)동아세아문화연구원 이사
▶(재)경상문화재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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