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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기획.특집 김해의 산을 거닐다
다소곳이 앉은 여인 닮아 '옥녀봉' 낙남정맥 끝자락서 온 숲, 온 산, 온 가을(30) 굴암산(屈庵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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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2.11.13 14:42
  • 호수 98
  • 12면
  •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굴암산 전망대 바위. 위에 올라서면 장유를 포함해 산을 오르며 조망되던 모든 전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진/ 최산·여행전문가 tourstylist@paran.com
가을의 끝을 맞는 굴암산으로 등산객들이 오른다. 장유면 신암마을을 뒤로 병풍처럼 감싸 안은 굴암산 줄기가 울긋불긋, 그야말로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마을 집집마다 감나무가 빨간 감을 조랑조랑 달아놓았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골의 물길이 청량하고 깨끗하다. 나직하게 수런거리는 물소리가 그 울림은 오히려 더 크다.

이번 산행은 깊은 가을 속에 파묻혀 있는 굴암산을 오른다. 신안마을을 들머리로 해서 굴암산 갈림길 이정표~전망대~554봉~평상 안부사거리~망해정~굴암산 정상에서 계속 능선을 타다가, 신안마을 갈림길 이정표~큰골 계곡을 거쳐 신안마을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이다.
 
옛날 사기그릇을 만들었던 마을이라 사기점골이라 불렸던 신안마을. 마을다리를 건너 산으로 접어든다. 계곡 물소리가 가까이 들리면서부터 온 산, 온 가을, 온 숲에 들어앉는다. 마치 어미 품으로 드는 느낌. 그래 너르고 깊은 품이다.
 
만산홍엽에 빨갛게 물이 드는 것, 계곡 물소리에 청아하게 몸을 맡기는 것, 단풍 속으로 들어서는 길과 물길 따라 몸을 열어 품어주는 것. 그리하여 산 속 깊이 드는 것이, 계절의 절정으로 치닫는 '만추(晩秋)의 자리'이겠다. 그렇게 가을은 깊이깊이 숲으로 드는 것이다.
 
초입 이정표에는 굴암산까지 2.3㎞를 가리킨다. 돌무지 산길로 오래전 낙엽과 새로이 떨어진 낙엽이 어우러져 바람에 흩날린다. 산을 오를수록 계곡 물소리는 더욱 급박해지며, 그들의 존재를 명료하게 밝힌다. 나무들도 수종에 따라 가을을 맞이하는 시간차와 온도차가 다르다. 이미 가을 갈무리를 끝내고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 푸른 제 잎 끌어안고 미련을 두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그리고 빠르게 흘러가는 가을과 함께 한창 단풍잎을 만들어내는 나무들도 있다. 제각각 제 인생의 한 장면을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굴암산 계곡. 앵글에 담기만 하면 작품이 된다.
길가로 자그마한 돌탑들이 하나씩 보인다. 사람들의 염원은 산에 들면서 더욱 깊고 짙어진다. 각각의 염원들로 이 산은 더욱 제 품을 무겁게 열어놓는 듯하다.
 
굴암산 갈림길. 능선 길은 2.4㎞, 계곡 길은 2.0㎞이다. 능선 길을 택하여 오른다. 오르막이 시작된다. 나뭇가지 사이로 노란 단풍잎들이 숲에 불을 밝혀놓은 듯 환하다. 소나무 사이로 길은 이리저리 기분 좋게 구불거리고, 통나무 계단을 오르며 뒤돌아보니 급한 경사만큼이나 산은 쑥쑥 고도를 높이며 키를 키운다.
 
계곡은 오른쪽으로 마른 몸을 비스듬히 산 아래로 뉘였다. 참나무와 때죽나무, 소나무 등속이 그 비탈 위에서도 꿋꿋이 서서 잘 자라고 있다. 계속되는 오름세. 이렇게 계속 능선까지 가파른 길을 내겠다. 잠시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무숲 사이로 장유시가지가 얼핏얼핏 보인다.
 
길은 오래도록 급박한 오르막이다. 말 한 마디 없이 적조하기만 한 비탈길을, 오랜만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즐긴다. 서서히 하늘이 열리면서 낙남정맥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끄러운 낙엽을 밟고 오르다 숨이 턱에 찰 때쯤 바위지대가 다가오고, 그 바위를 계단삼아 험하게 오르면, 곧이어 소나무 서너 그루 서 있는 큰 바위 위에 선다. 아직도 장유시가지는 나무에 가려 띄엄띄엄 보이지만, 굴암산 주위의 모든 능선들은 선명하게 조망된다.
 
   
▲ 전망대 소나무 두 그루. 제 몸보다 긴 뿌리로 뱀이 똬리를 틀듯 바위를 감싸고 있다.
바위지대에서 오솔길을 조금 더 오르면 곧이어 철탑. 철탑 앞에서 산 아래를 조망한다. 장유시가지가 시원하게 다가오고, 반룡산의 육덕진 몸매와 그 뒤로 용두산, 칠산이 동그마니 누워 있다. 그 오른쪽으로는 추수를 끝낸 칠산벌이 허허롭게 펼쳐져 있다. 김해 쪽으로는 임호산~함박산 능선과 경운산 능선이 여유롭다. 그 뒤로 분성산과 신어산이 어렴풋하다.
 
철탑 뒤로 난 길을 오른다. 햇빛 속에 묻힌 장유시가지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왼쪽으로 용지봉이 두 팔 벌리고 장유계곡을 안고 있다. 다시 길을 오르자 조망은 나무숲 사이로 서서히 숨는다. 다시 숲으로 젖어드는 것이다.
 
돌무지와 능선을 차례대로 걷다보니 멀리 태정산과 김해벌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조금 더 오르자, 큰 바위 하나. 전망대다. 바위 옆으로 밧줄을 탄다. 오른쪽으로 낙남정맥의 화산 능선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전망대에 선다. 산 아래가 장쾌하다. 장유 전체가 조망된다. 지금껏 조망한 모든 전경들이 하나로 합쳐져, 파노라마처럼 거침없이 펼쳐지는 전망이다. 전망대 소나무 두 그루. 바위 위에 뿌리를 두고 뱀이 똬리 틀듯 바위를 친친 감고 있다. 자기 키보다 더 긴 뿌리로, 그 큰 바위 전체를 감다시피 하며 생명에의 질긴 끈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다.
 
   
▲ 망해정에서 바라본 굴암산 정상. 붉게 타는 듯 얼굴을 붉힌 능선이 가을을 지나 겨울로 치닫고 있다.
산줄기를 계속 타고 오른다. 돌무지 사이로 교묘하게 길은 나고, 그 길 따라 계속 오르니, 길 위로 하늘이 조금씩 열린다. 곧이어 능선 길, 오랜만에 편안하게 길을 내어준다. 능선 길에는 벌써 많은 나무들이 겨울잠을 준비하고 있다. 가진 것 모두 털어내고 푹신한 이부자리도 발밑으로 깔아놓았다.
 
533봉우리에 서니, 멀리 망해정과 굴암산 정상이 맞은 편 산 능선으로 보인다. 정상을 바라보며 왼쪽 능선으로 길을 돌아든다. 오르내리는 봉우리와 능선이 가을햇살과 맞닿아 적요하고 그윽하다. 빈 가지 나무사이를 걷는 나그네 발길 또한 그들처럼 명료해진다.
 
554봉 정상의 바위 전망대. 장유 율하지구가 환하다. 김해벌은 더욱 넓어 시야가 호활하다. 잠시 쉬다 다시 길을 내린다. 굴암산 계곡으로 향하는 길이다. 슬슬 내리다 보니 평상 안부사거리. 많은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다. 이정표에는 굴암산 정상까지 0.74㎞를 가리키고 있다.
 
다시 길을 오른다. 오르막이지만 길은 넓고 편하다. 능선 위로 햇빛이 비추어 눈부시다. 육산(肉山)이라 그런지 발걸음마다 땅이 울린다. 터벅터벅 오르다보니 망해정 정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 망해정. 산 정상 가까이 있어 전망이 탁 트인다.
망해정(望海亭)에 선다. 이름 그대로 부산과 창원의 앞바다가 한달음에 다가온다. 김해 쪽으로는 장유시가지가 보이고, 부산 방면으로는 신항만과 가덕도가, 창원으로는 진해만이 올록볼록 파노라마처럼 시야를 틔운다. 굴암산 정상으로는 이파리 모두 떨어낸 참나무 군락들이, 이울어 가는 역광을 받아 가지 끝마다 선명한 햇살을 걸어놓았다.
 
굴암산 정상으로 향한다. 곳곳에 철모르는 철쭉이 피어 있고, 길섶마다 억새들이 하얀 홀씨를 하늘로 흩뿌리고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 길은 참 예쁘다. 왼쪽으로는 진해만이 호수처럼 잔잔하다. 정상을 얼마 남겨두고 마지막 오르막. 암석지대를 지나자 작은 공터가 나온다. 굴암산 정상이다.
 
굴암산(屈庵山). 산 아래 바위굴에 암자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낙남정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산이다. 아리따운 여인이 옷을 입고 다소곳이 앉은 모습이라 옥녀봉이라 불리기도 했단다.
 
정상석에는 '굴암산 662m'라고 표기되어 있다. 창원 쪽으로 조망이 트여 있는데, 부산의 녹산공단도 보이고, 진우도, 대마등의 모래섬들도 보인다. 김해 방면으로는 조망이 없어 못내 허전한 느낌이다.
 
하산은 화산 방면으로 길을 잡아 내린다. 소사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노각나무들도 눈에 띈다. 편안한 능선, 바다와 산줄기를 품고 끌고 가는 산길… 길옆에 서 있는 전망바위에 잠시 올라서니 불모산과 화산, 용지봉의 산줄기가 나그네 앞에서 웅장하게 서 있다. 웅천의 시루봉도 눈에 들어온다. 곰처럼 생겨 '곰뫼'라 불리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처녀의 젖꼭지처럼 생겨먹어, 뭇 사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바위 봉우리다.
 
능선 옆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마다 단풍이 한창 달아오르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도 다양하고 색색의 빛깔을 낼 수가 있을까? 짙고 깊은 색들이 산기슭으로 서서히 내려가고 있음을 바라본다. 단풍의 길을 좇으며 봉우리 두어 개 오르내리다 보니, 능선 길옆의 깊은 비탈이 천 길 낭떠러지다.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더욱 가을은 애타게 깊어만 간다.
 
신안마을 이정표에서 능선을 버리고 큰골로 길을 내린다. 예쁜 능선 길의 미련으로 잠깐 동안 아쉬움이 남는다. 내리는 길이 쏟아진다. 아래로 보이는 봉우리들은 진달래 하얀 가지와 붉게 단풍진 잎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더욱 불타오르고 있다.
 
   
▲ 하산길에 만난 바위. 탕건처럼 생겨 독특하다.
경사가 깊어 곳곳에 로프를 매달아 놓았다. 주위 단풍들이 해거름에 더욱 진하게 빛을 낸다. 곱게 물든 단풍과 낙엽길이 사람 마음을 달뜨게 한다. 탕건처럼 생긴 바위 암벽이 하나 막아선다. 병풍처럼 막아선 바위의 왼쪽 길로 내려선다. 아! 가을이 절정이다. 고요한 계곡 속으로 깊이깊이 가라앉는 단풍들의 자지러짐. 제 속의 열정을 활활 불태우고 있다.
 
조금씩 길을 내려오다 보니 햇빛이 숲을 헤집고 들어온다. 단풍 든 숲을 더욱 활활 불질러대는 것이다. 그 불길 따라 산을 떠도는 나그네 하나 길을 내며 간다. 그림자가 길게 다시 급해지는 길. 온산에 까마귀 소리만 산의 적막을 깨고 있다.
 
해가 금세 이울자 숲이 깊어진다. 그 숲으로 모든 생명들이 잠자리에 들고, 귀소의 바람마저 잦아든다. 갑자기 큰골계곡의 물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나그네 가슴 속을 관통하는 물길 하나, 콸콸~ 가을로 시원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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