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돼 있는 백학마을. 좋은 자연환경을 찾아 외지에서 이주해 오는 경우가 많다.

여차로 여덟막고개 넘어 여차마을 이웃
북 백운동·남 학운동 앞글자 따 '백학'
학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지기도
이주민·토박이 마을공동체 오순도순
폐교 위기 용산초등도 활기 되찾아

김해시내에서 생림 나전로를 따라 가다 여차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우회전을 하면 여차로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는 길이다. 여차로의 구불구불한 고개에는 '여덟막고개(여차고개)'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가을의 여덟막 고개에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어떤 사람이 좋은 묘자리를 찾기 위해 여덟 번을 옮겨다녔다는 전설이 있는데, 울긋불긋 단풍물이 곱게 든 여덟막 고개는 좌우로 펼쳐진 붉은 산들과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낸다.
 
고개를 다 지나면 여차마을이 나온다. 백학(白鶴)마을은 여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백학마을은 두 군데다. 남쪽은 학운동, 북쪽은 백운동이라 한다. 백운동과 학운동의 앞 글자를 따서 백학마을이라 이름지었다. 백학마을에는 예로부터 학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정말로 학이 많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을의 모든 대소사가 학을 위주로 해서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마다 꽹과리도 치고, 북도 치고 그랬죠. 그런데 유독 우리 마을에서는 풍물놀이를 안 하더라구요. 어릴 적에, 왜 풍물놀이를 안 하느냐고 어른들에게 여쭤보면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어요." 권혁균(51) 이장이 말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도 비교적 조용한 가운데 치러졌다. 학이 놀라 날아가기라도 하면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래 전부터 학을 놀래키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든 조용하고 차분하게 해온 백학마을 주민들. 주민들이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을만큼 선한 성품을 갖고 있는 게 이런 관습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게 권 이장의 생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가끔씩 학이 목격되고 있다.
 
백학마을에서는 주로 산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김해의 청정지역에서 키우는 산딸기이다. 산딸기는 씻어 먹기 어려우니 마음 놓고 바로 입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이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이곳 주민들은 갖고 있다.
 
백학마을에서는 공장을 보기 힘들고, 전원주택들이 많이 모여 있다. 마을 앞 도로는 차가 드물어 조용하고 한적한 편이다. 이 마을에는 75가구 150여 명이 살고 있다. 원주민 가구 25곳을 제외하면 거의 다 외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외지인들에게도 백학마을은 살기 좋아 보이는 모양이다.
 
"땅 팔아 자식 공부시켰던 시절에는 우리 마을의 땅 값이 너무 싸 공장 허가를 내달라고 시에 항의를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시한테 설득을 당했죠. 그때 공장이 들어섰으면 지금처럼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기 힘들었을 겁니다." 권 이장이 말했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마을의 가구 수는 점점 줄어들었는데, 전원주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원주민들과 이주해 온 사람들은 화합이 잘 된다고 한다. 특히 정월대보름날 쥐불놀이를 하고 달집을 태울 때면 마을 전체가 들썩인다고 한다.
 
▲ 주민들의 힘으로 지켜낸 용산초등학교.

가구 수가 늘다 보니 백학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용산초등학교도 활기를 띠고 있다. 이 학교는 한때 학생 수가 적어 폐교 위기에 처했다. 그때 마을 주민들 모두가 두 달 가까이 존치 노력을 했다. 도의원들을 설득했고, 총동창회에서는 원어민 강사를 영입했다. 교장을 공모해서 선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용산초등은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정한 전원학교의 모델이어서, 학부모들이 다투어 입학을 시키려는 학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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