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언론에 넘쳐나는 음식정보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뭐니 뭐니 해도 먹고 사는 일이 제일 중요하구나, 하는 것이다. TV화면에서 표준어를 쓰는 20대 초반의 리포터가 전라도에서 홍어회를 먹고 맛있다고 감탄하는 장면 같은 걸 보면, 처음 접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 맛을 어찌 제대로 알겠다는 건지 믿음이 안 가기도 하지만. 수많은 식당과 음식을 소개하면서 담백해요, 고소하네요, 얼큰합니다 등 하나마나 한 말들을 반복하다가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면 "바로 이 맛이에요"라고 얼버무리는 걸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음식 관련 책도 엄청나다. 포털사이트 검색 주제를 책으로 한정하고 '맛'이나 '음식'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보면 수천 건에 달하는 책 정보들이 우루루 쏟아진다. 블로그에도 맛집을 주제로 한 내용들이 넘쳐난다. 무엇부터 봐야 할지 고민될 정도이지만 그 정보들이 비슷비슷해서 식상하기도 하다. 그만그만한 음식 책들 중에서 김화성 씨의 '꽃밥'을 만났을 때, 눈이 번쩍 뜨였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책은 제철 음식을 계절별로 나누어 음식재료가 나는 지역을 찾아가 소개한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책들과 같지만, 각 음식을 문학작품과 함께 소개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음식을 이야기 한 문인들 중에는 백석 시인이 단연 최고일 것이다. 메밀국수를 좋아했던 시인은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구절을 남겼고, 자신의 시에 무려 110여종의 음식을 등장시키고 있다. 당시의 음식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 정도이다. 시인이 남긴 이 구절은 후대에 와서 메밀국수가 아닌 국수집을 소개할 때도 단골로 등장하는 문장이 되었다.
 
김화성 씨는 음식을 소개하면서 가장 적절한 문학작품 속의 대목을 찾아 실었다.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이 전국에 알린 전라도의 유명 특산물이 꼬막이라는 말이 있다. 이 책 속 겨울철 음식편의 꼬막과 함께 실린 조정래 작가의 글을 읽어보자.
 
"양념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제대로 꼬막맛을 갖추려면 고추장을 주로 한 갖은 양념의 무침을 거쳐야 한다. 이 단계에서 꼬막 맛이 제각기 달라지는 것이었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이 꼬막 맛도 제각각이었다."
 
책 제목 '꽃밥'은 눈치빠른 독자들은 이미 짐작했겠지만 비빔밥을 말한다. 꽃밥편에서는 고운기 시인의 시 '비빔밥'을 만나볼 수 있다.
 
"혼자일 때 먹을거리치고 비빔밥만 한 게 없다/ 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 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무려져/ 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러 간다/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줄 비빔밥 한 그릇/ 적막한 시간의 식사여/ 나 또한 어느 한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인 줄 안다/ 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 그대도 내가 반가운가"
 
시련을 겪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 한밤중에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 남은 반찬 몽땅 담아 비빔밥 만들어 볼이 미어터져라 먹는 까닭이 있었다. 아무런 대사 없이 밥만 먹는 그 주인공의 심정에 동조하며 문득 비빔밥 생각이 나던 까닭도 알겠다.
 
김기택 시인의 갈치, 정일근 시인의 전어, 함민복 시인의 낙지, 윤대녕 소설가의 과메기, 이정록 시인의 청국장 등, 우리 문학작품 속에 맛깔스럽게 때로는 눈물겹게 등장했던 음식들이 많았다는 걸 알려준다는 점이 이 책의 큰 매력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카아!)/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기억나는가. 양영문 시인의 '명태'중 한 구절이다.

▶김화성 지음/동아일보사/292p/14,800원




박현주 객원기자
북칼럼니스트,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