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설레고 마음 떨리는 순간은 언제일까.
가마에 불을 때기 시작할 때이다. 흙으로 빚어내고 유약을 발랐으니, 이제는 불이 할 일만 남았는데 가마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불을 땐다. 그 과정이 끝나면, 작품이 빨리 보고 싶어 서둘러 가마를 연다. 열기가 식고 난 뒤 작품을 끄집어내도 될 것을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그 뜨거운 걸 끄집어내기 위해 가마를 연다.
너무 빨리 열어서 작품이 깨어질 때도 있다. 기대 이상의 작품이 나올 때도 있지만, 기대에 못미쳐 실망할 때도 많다. 장인은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흙을 빚어 도자기를 만들고, 불을 땐다. 다시 실망하는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그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장인의 숙명이다.

▲ 길천도예원의 작업장. 도자기 그릇들과 유약이 한창 작업 중임을 말해준다. 이한길은 해가 뜨기 전부터 오후 6시까지 종일 작업에 열중한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버스에서 바라본 진례와 옹기점골
도예의 길을 걷던 내가 이끌렸죠
홀로 있어도 아름다워야 하고 가까이 두고 소중하게 쓰여야만 도자기의 가치가 극대화돼

장유에 사는 도예가 이한길(49)은 새벽에 일어나 진례면 청천리 898-6 '길천도예원'으로 출근한다.
 
길천도예원은 그의 작업장이자 전시장이다. 전시장은 그가 손님을 맞는 공간이기도 하다. 벽면이 온통 차 주전자의 뚜껑으로 장식돼 있다. 의자도 그가 구워낸 도자기다. 차를 달이는 차 도구도 당연히 그의 작품이다.
 
이한길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를 마치고 부산공예학교(현 부산 디자인고)에 입학하면서 도예의 길로 들어섰다. 열일곱 살 때 도자기를 만들었으니 삼십년이 넘었다. 아니 철들면서 스스로 도예를 선택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니 그의 삶 자체가 도예 인생이다.
 
"어릴 때부터 도자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모두 미술반에서 특별활동을 했어요. 내가 무언가를 창의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좋았지요. 우연이 겹쳤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와서 보니 필연이네요. 제가 도예를 선택한 건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하고, 저한테 잘 맞는 일입니다."
 
그는 공예학교 시절, 주말이나 방학 때 합천에서 부산으로 오가는 버스 안에서 진례를 보았다. 진례는 버스 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고장이었고,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 그러나 옹기점골이 있었던 진례는 도예의 길을 걷는 그를 이끌었다. 그는 공예학교를 졸업하고 진례에서 작은 창고를 빌려 도자기를 빚으며 터를 잡았다. 이후 지금까지 진례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한길은 1986년 길천도예원을 설립했다. '길천'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 "제 이름 이한길의 '길'과 고향 합천의 '천'을 붙여 길천이라고 했습니다. 길천도예원을 열었을 때 김해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 중, 제가 막내 격이었어요. 그때 김해의 선배들이나 어른들이 저를 부를 때 이름이 아니라, 길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자꾸 부르다보니, 자연스럽게 호가 됐습니다."
 
호를 따서 도예원 이름을 지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언젠가 유명하다는 작명가를 만났을 때 여쭤봤더니, '길천'이 좋은 이름이라고 말씀해주시더군요. 억지로 맞추지 않고, 우연히 만들었고, 불러 보니 느낌이 좋아 사용했는데, 저한테 잘 맞는 이름이 되어 주었죠."
 
이한길의 작업 방식은 한 가지 주제가 떠오르면 그것을 구체화하여 디자인 한 뒤, 반복 작업을 하며 난이도를 높여가는 식이다. "첫 작업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작품이 나오기는 힘들어요. 같은 것을 계속해 만들어 가다보면 처음 내가 생각했던 모양에 가까워집니다. 점점 완벽한 상태가 되어가는 거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트렌드에 맞춰 주제를 계속 바꾸는 것 보다, 한 가지 작업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다른 디자인과 다른 색을 접목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변주하는 방식으로 작업의 난이도를 높여갑니다."
 
그는 도자기가 일상생활과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자기는 저 홀로 놓여 있어도 당연히 보기에 아름다워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과도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손닿지 않는 곳에 먼지 쌓인 보물처럼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소중하게 쓰이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 길천도예원 전시장에는 이한길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벽면은 차 주전자 두껑들로 장식돼 있다.
그에게 있어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은 늘 고민이다. "요즘 도자기를 찾는 소비자들의 수준이 아주 높아요.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도자기를 보고 있습니다. 작가들도 거기에 따라가지 않으면 안돼요. 예전의 도자기 장인들이 배운대로만 해도 됐다면, 요즘 작가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조금이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얼마 전 끝난 '분청도자기축제'에서도 변화에 적응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관람객들의 주목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통적 도자기 작업을 계속 해나갈 것인가, 현대예술을 접목할 것인가, 소비자들이 찾는 상품성 있는 작품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은 비단 이한길 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작가들은 경제적 현실과 예술, 그 두 가지 길을 앞에 놓고 항상 고민한다.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도 있고 작업을 계속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만 만들고 싶은 마음도 크다. 이한길은 부인이 늘 작품의 수준을 높이는 것에 좀 더 몰입하기를 강조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한길은 새벽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해가 뜨기 전에 작업장에 도착한다. 혼자서 차를 마시며 신문도 보고 '나만의 시간'을 아주 잠시 즐긴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간에 작업에 열중한다. 아침에 같이 작업하는 동료이자 제자가 출근하면 종일 함께 일을 한다. 그리고 오후 여섯시 무렵이면 일을 마친다. 이를 두고 이한길은 "여섯시에서 단 십분도 더 못 한다"고 말한다. 종일 혼신의 힘을 다 했기에, 하루치의 열정을 소진했기에 더 작업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토요일은 그보다 더 빨리 마치고 일요일은 쉰다. 아니다, 일요일은 부인과 함께 갤러리투어를 다니며 그림을 본다.
 
일요일마다 갤러리투어를 다닌 지가 5~6년 정도 됐다. 멀리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가깝게는 경남과 부산의 각 갤러리까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갤러리도 있다. 그림을 보면서 아이디어도 얻고, 많이 생각하고, 오가는 길에서는 여행 기분도 느낀다. 비교적 일이 한가한 봄에는 장기간 여행도 다녀온다.
 
이한길은 지난해에는 김해도예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직을 맡느라 작품에 열중하지 못했다. "1년 가까이 작업을 제대로 못했어요. 곧 선거가 있는데 신임 이사장이 선출되면 제자리로 돌아와야죠. 해가 바뀌면 작품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싶어요. 또 다른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그는 성실하게 작업에 몰입할 때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 이한길
1986년 길천도예원 설립
2001년 개인전(개원 15주년 기념
     인사동 공화랑) 외 전시회 다수
1989년 한국현대미술인협회 최우수 작품상 2010년 전국공예품대전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상 등 각 예술기관 및 단체 수상
      다수
2011년 경남최고장인 선정(도자기 부분)
현 길천도예원 길천도예학교 운영
(사)김해도예협회 자문위원
한국도예협회 회원
예얼도예가협회 회원
경남공예협동조합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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