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주민 거의 다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는 소감마을. 대동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1960년대 이전엔 산 위쪽에 있던 마을
운하천 만들어지며 농지 생기자 이전
물 걱정 없이 농사 지으며 온동네 가족
산단 조성 소식에 "버스나 들여주지"

대동면 월촌리 소감마을. 농지 한가운데를 가르는 4㎞ 길이의 운하천 변에 바다를 메워 만든 마을이다.
 
소감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길게 늘어선 비닐하우스가 26만 4천400㎡(약 8만 평)의 밭을 가득 채우고 있고, 그 사이 사이로 다 자란 배추와 무 등이 마을을 뒤덮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소감마을은 마을 뒷산에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의 명당자리가 있어, 3대 후에 두 현인과 장수가 나올 것이란 말을 듣고 있다.
 
'작은 감내'라는 뜻의 소감마을에는 현재 38가구 85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주로 파, 당근, 부추, 상추, 고추, 토마토, 배추 등속의 농사를 짓고, 하우스 재배의 특성 상 1년 내내 쉬지 않고 일을 한다.
 
마을 어르신들에 따르면 1960년대 이전에는 마을이 산 위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비가 오면 물이 불어나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그러다가 박정희 정권 때 농어촌기반공사에서 육로 확보를 위해 바다를 메웠고, 그 과정에서 운하천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주변에 농지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지금의 소감마을은 항상 물이 풍부하다. 1960년 이전에는 강우량에 따라 농사의 흥망이 결정됐지만, 운하천이 생긴 이후부터는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짓고 있다.
 
밭에서 캐낸 무를 가지런히 늘어놓고, 큼지막한 배추를 이리저리 살피는 소감마을 주민들. 오랜 경륜을 증명이라도 하듯 흐트러짐 없이 바삐 그러나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탐스런 농작물은 맨주먹의 힘을 믿은 주민들의 노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여긴 농업이 90% 이상이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생활이 안되는 환경이죠."
 
▲ 텃밭에서 무를 캐고 있는 마을 주민 이정권(오른쪽) 씨. 그의 소원은 대중교통이 들어오는 것이다.
마을회관으로 쓰이는 소감회관 앞에서 만난 이정권(78) 씨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소감마을의 역사를 온 몸으로 지내왔다. 마을 주민 80여 명이 다 그러하듯, 쉬는 날도 한가한 날도 없이 이 씨는 비닐하우스에서 70여 년을 보냈다.
 
"여기 마을 근처까지 대중교통이 안 들어오는 게 좀 불편해서 그렇지, 마을이 따뜻하고 인심도 좋아서 살기 좋아요."
 
잠시 쉴 틈도 없이 바쁘다는 이 씨와 이 곳 주민들의 일과는 밭에서 시작되고 밭에서 끝난다. 하룻밤 사이에 '상전벽해'를 거듭하는 한국사회의 특성에서 철저히 비껴선 채 소감마을은 자연을 오롯이 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소감마을 사람들은 서로에게 가족 이상이었다.
 
"이 마을에 살다가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두 달에 한 번 향우회 모임을 통해 계속 연락을 하고 있어요." 20년 전에 향우회가 생겼는데, 회원들은 서로의 소식을 생생하게 알고 있었다. 같이 자라고 밭에서 함께 일해온 이웃의 이야기는 가족의 소식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차가 다니게 되면 좀 더 수월하게 농작물 유통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것만 기다리고 있어요. 거창한 산업단지 대신…." 이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은 농사 외에는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하면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했어요."
 
한편, 한 민간 컨소시엄 참여업체의 부도로 일시 중단된 대동첨단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재개되면, 이곳의 하우스 농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오늘도 '어제'처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소감마을의 아슬아슬한 농지는 여전히 그렇게 순수한 땀방울로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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