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으로 접하는 주변의 소소한 풍경에서 문득 자연의 에너지를 느낄 때가 있다. 여린 꽃 한송이, 풀 한 포기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습관적 표현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종의 깨우침을 말한다), 그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게 가능하다고 한다.
화가 조경옥이 그랬다.
조경옥은 어느날 온종일 낚싯대를 드리우던 못 기슭에서,
항상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문득 발 밑의 풀 한포기를 보았다.
무심히 밟고 다니던 풀이었는데 그 날의 풀 한 포기는 '생명'으로, '자연'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혹시 풀을 짓밟게 될까봐 앉은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는 조경옥.
그는 생각했다.
"자연을 그려야겠다."
조경옥은 '자연'을 화폭에 담는 서양화가이다.

▲ "자연은 그 자체가 완벽한 구성입니다." 화가 조경옥이 낚시터의 풀 한포기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최백호·이택림과 함께 노래하고 음악 틀던 음악다방 DJ시절 단골 화가가 내민 목탄 인연
나 자신도 몰랐던 그림의 재능 알게 돼
현재 홍대 지석철 교수 군에서 만나 화가의 길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 깨우치고 나서부터 보존해야 할 가치 화폭에 담기 시작

'내외문화의집'을 오른편에 두고 150m 쯤 걷다보면, 내외동 200의 15 건물 3층이 나온다. 여기에 조경옥의 작업실이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인근의 집에서 작업실로 출근한다. 문을 열고 작업실로 들어서니 소나무 세 그루를 담은 200호 크기의 캔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창 작업 중인 그림이었는데도, 140㎡(40여 평) 공간 안에 청량한 솔숲의 생기가 가득 차 있었다.
 
조경옥은 1952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했다. 조경옥은 고등학교시절부터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부산과 마산의 음악다방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은 DJ였다. 부산에서는 서면의 '대한다방', 광복동의 '향촌' 등이 그의 주 무대였다. '대한다방'은 젊은이들이 모여들던 서면의 랜드마크였고, '향촌'은 부산의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광복동의 랜드마크였다. '향촌'에는 MC 이택림(당시 부산 동아대에 재학 중)과 가수 최백호가 고정출연했는데, 조경옥은 그들과 함께 기타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고 음악을 틀었다.
 
조경옥이 미술과 인연을 맺은 건 '대한다방'의 조경옥 타임에 단골로 찾아온 한 화가 덕분이다. 어느날 화가는 조경옥을 자신의 미술학원에 초청했다. 그런데, 화가가 그림에 몰입하는 바람에 조경옥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단다. 손님을 불러 놓고 이게 무슨 결례인가 잠깐 화가 났지만, 이내 '그림이 뭐기에 저렇게 몰두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느날 화가는 조경옥에게 목탄을 내밀었다. 조경옥은 처음으로 소묘와 데생을 했다. 아무도 모르던,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재능이 처음으로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6개월 정도 그림을 그렸는데, 화가가 "DJ 그만두고 그림을 그려라"고 말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조경옥이 그려놓은 그림도 자꾸만 없어졌다. 화가가 학생들에게 교본으로 보여준다며 들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마산 창동의 '정원다방'에서 조경옥을 스카우트했다. '정원다방'에서는 마이크를 들고 실내를 돌며 음악 라이브쇼를 진행했다. 인기가 많았다. 몇 년 후 군에 입대할 때는, 경남 창원 39사단 앞에 팬들이 몰려들었다. 팬들은 '빨리 다녀오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펼쳤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위병들의 눈초리가 매서웠지만, 그는 팬들에게 "빨리 갔다 올게"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훈련복을 나눠 받기도 전, 한 장교가 "사회에서 그림 그려 본 사람 나와"라고 말했다. 그 옆에는 이등병이 한 명 서 있었는데, 그는 지석철(화가·홍익대 미대 교수)이었다. 이 자리에서 조경옥은 차출됐고, 제대할 때까지 그림만 그렸다.
 
"훈련? 한 번도 안 받았어요. 총? 한 번도 안 만져봤어요. 사격? 당연히 한 번도 안 해봤지요. 전 군대에 그림 그리러 갔습니다. 매일 그림만 그렸으니까요."
 
그는 기초군사훈련조차 생략한 채 지석철 이등병을 도와 그림을 그렸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입대한, 정통 미술교육을 받은 지석철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작업을 했다. 이들이 맡은 작업은 39사단 내 승공관 내부에 반공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얼마 후 다른 훈련병들이 자대 배치를 받을 때, 조경옥은 자충병력(자체 필요에 의해 수급된 병력)으로 39사단에 남았다. 그리고 제대할 때까지 39사단의 예하부대를 거의 다 돌면서 그림을 그렸다. 군대는 'DJ 조경옥'을 '화가'로 만들어 제대시켰다. "제대 후 예비군 훈련 때 처음 총을 만져보고 사격을 했는데, 너무 무서워 눈을 감고 쐈어요." 군 시절 이야기를 하던 그가 슬며시 웃음을 보였다.
 
▲ 긴 세월 함께 하는 동안 그의 손때가 묻은 붓들.
군에서 제대한 뒤 조경옥은 부산에서 미술학원을 내고, 미대입시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작업을 함께 했다. "미술잡지 등을 통해 화가로서 이름도 알려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쩐지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 가르치다 내 그림을 못 그리겠구나 싶어 미술학원을 접고 김해로 왔어요."
 
조경옥은 부모와 함께 1989년 4월 주촌으로 이사를 왔다. 그러나 1년 정도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마음 속에서 뭔가를 비워내고, 다시 뭔가를 채우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이른 아침마다 아버지와 함께 집 근처 못으로 낚시를 갔다.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어 물에 던져 놓고 종일 찌를 바라보았다. 부인이 아침과 점심 밥상을 낚시하는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날랐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종일 잡은 물고기를 다시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물안개가 가득한 못, 봄에 쭈뼛 고개를 내밀며 올라오는 어린 갈대가 여름날이면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 가을날 우수수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도 한 자리에 앉아 모두 지켜보았다.
 
그렇게 1년 여 시간 동안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낚싯대를 바라보았는데, 어느날, 발 밑의 풀 한 포기가 조경옥의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혹여 발을 잘못 디디면 풀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앉은 자리에서 발도 못 움직였고, 숨소리조차 잦아들었다. "자연이, 생명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주변을 돌아보았어요. 꽃이 지고 나면 열매를 맺지요. 모든 삼라만상이 자식을 키워내고 있었어요. 그렇게 생명이 이어져가는 자연을 느끼면서, 이것을 그려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리 주변의 자연풍광이 매일매일 사라져 가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조경옥은 어디를 가든 주변의 현장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고, 바로 카메라로 촬영을 한다. 현재 소나무를 그리고 있는 캔버스 아래에는 소나무를 찍은 사진이 수십 장 놓여 있다. "소나무 사진 한 장을 찍어 와, 그것을 보고 그리는 게 아닙니다. 여러 지역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다양한 형태와 모습을 보러 가고, 사진도 많이 찍어요. 나무둥치, 가지, 솔잎 하나 하나를 실제 그대로 표현해야 하니까요. 소나무들이 재선충 때문에 다 죽어가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한적한 시골마을은 웬만한 곳은 거의 다 다녀왔다고 한다. 그는 김해가 개발 과정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많이 잃어버린 것을 특히 마음 아파했다. "생림면의 마사리는 김해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이제는 그 모습이 온데 간데 없어요.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은 어떻게 하든 지켜야 합니다."
 
그는 주말이면 부인과 함께 경운산이나 무척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면 산이 우리의 체중을 고스란히 받아줍니다. 그래서 몸이 가볍지요. 아스팔트 길을 걸으면 우리의 체중을 받아주는 건 다리와 발입니다. 그래서 도시의 거리를 오래 걸으면 피곤하지요."
 
조경옥의 자연사랑은 깊다. 그 마음이 그를 자연을 그리는 화가로 이끌어 간다. 그는 계곡의 돌멩이 하나도 제자리에 이유가 있어서 놓여 있는 것이니 인공조형물로 그 완벽한 구성을 깨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은 우리가 보존하고 지키는 관리대상이 아닙니다. 자연을 안 건드리면 됩니다. 그대로 두는 것, 그대로 있는 것, 그것이 자연입니다."

>> 조경옥
1952년 경남 합천출생. 개인전 14회, 그 외 400여 회 전시회 개최. 1997년 동서미술상·경남미술인상 수상. 2001년 미국 뉴저지주 저지시티 공로상, 2009년 남도 미술상·김해미술인상 수상. 2012년 한국미술협회 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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