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종이는 중국 후한시대(105년)에 채륜이 발명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는 고려와 조선의 종이를 더 높이 쳤다. 우리 민족이 만든 종이는 닥나무 껍질을 재료로 한 한지이다.  우리 선조들은 종이를 귀하게 여겼다. 쓰고 남은 종이 한 장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었다.
종이를 몇 번이고 되풀이 해 사용한 선조들의 검소한 생활, 그 지혜를 품은 채 지금까지 전승되어 내려오는 것이 있으니, 바로 한지공예이다.
하윤자(52) 씨는 김해에서 15년 넘게 한지공예에 몰입해 있는 사람이다.

하윤자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결혼을 하면서 김해로 옮겨 와 30여 년째 살고 있다.
 
부산~김해경전철 봉황동역사 옆, 전하동 3의 2 경인종합철물건재 1층 한쪽에 하윤자의 작업공간이 있다. '윤당공예방'이다. 그는 산업사회의 중요한 도구들을 취급하는 철물건재상을 운영하면서, 그 한쪽에 작은 공방을 마련해 한지공예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한지공예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잡념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라는 그의 말을 조금 더 파고들었다. 어렸을 때 미술을 좋아했고, 그림을 그려 상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 한 대목을 털어놓았다. "그 당시에는 꽃무늬가 화려하게 프린트된 접시와 그릇이 유행이었어요. 어린 마음에도 그 무늬가 예뻤던지, 하나를 들고 와 그걸 똑같이 그려보고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책을 툭 던지며 '공부나 하지, 그런 걸 왜 하고 앉아 있냐'고 나무랐어요. 그런데, 결국 지금 한지공예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제가 갈 길이 이 길이었던가 봐요."
 

▲ 하윤자 씨가 지금 제작 중인 작품 위에 문양을 펼쳐보이며 한지공예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있다. 박나래 skfoqkr@
그는 종이접기를 먼저 시작했다. 첫 아이가 여섯 살 무렵, 남편이 낚시에 취미를 붙였다. 알다시피 낚시는 사람의 온 마음을 빼앗아 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다. 그는 남편이 낚시터에 다녀오는 동안 홀로 집안을 서성이며 '나도 뭔가를 해야 할텐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신문 사이에 끼어 들어온 인제대학교 평생교육원 광고를 보았다. 이왕이면 자격증도 따고 개인적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과정을 밟고 싶었다.
 
하윤자가 신청하고 싶었던 과정은 수지침이었다. 그런데 인제대에 신청하러 갔더니, 수지침 과정은 이미 마감이 된 후였다. "발길을 돌려 나올려다 다시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언제 또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인원이 마감되지 않은 과정을 알아봤지요. 그게 종이접기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해서 종이접기와 인연을 맺었다. 종이접기 자격증을 따고 보니, 종이접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분야였다. 욕심이 더 났다. 그래서 눈을 둔 분야가 한지공예였다. 미술을 좋아했던 하윤자는 종이접기로 기본을 닦은 다음 한지공예를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한지를 다양한 색으로 물들이고 있지만, 하윤자가 입문했을 때 한지는 오방색(五方色)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오방색은 오행의 각 기운과 직결된 청(靑)·적(赤)·황(黃)·백(白)·흑(黑)의 다섯 가지 기본 색을 말한다. 음양오행설에서 풀어낸 다섯 가지 순수하고 섞임이 없는 기본색을 말한다. 청은 동방, 적은 남방, 황은 중앙, 백은 서방, 흑은 북방으로 오방이 주된 골격을 이루며, 양(陽)의 색이다.
 
"한지공예를 처음 접했을 때 물감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한지의 색감도 마음에 들었고, 마음도 편했어요. 작품 디자인을 하고, 문양을 파고, 풀칠을 해 붙이고, 색의 조화를 생각하고…. 한지공예의 섬세한 작업에 빠져들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릴 만큼 몰두하게 됩니다. 딴 생각이 안 들죠. 무엇보다 저하고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한지공예를 처음 배울 때는 먼저 접시부터 만든다. 하윤자는 접시와 상자 등 소품을 많이 만들었다. '작품'이라고 칭할 수 있는 최초의 것은 지금도 집에 보관하고 있는 '삼층장'이다. 높이만도 1m80㎝에 달하는 진짜 가구이다.
 
"겨우 겨우 한지공예의 기본을 배우고 난 뒤 겁도 없이 큰 작품을 만들었지요. 제작기간이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살림하고, 철물점 일을 보는 틈틈이 꾸준히 만들었어요. 완성되고 난 다음, 계속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완성했다는 성취감이 들더군요.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윤자는 한지공예의 장점으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꼽았다. 찻상, 티슈 곽, 옷장, 화장품 박스, 반닫이, 명함집, 손거울. 하윤자는 이 외에도 다양한 물건들을 한지공예로 만들어 집에서 실제로 사용한다. 가족과 친척들에게 선물도 한다.
 
▲ 대성동고분박물관 전경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정리함.
"한지공예품을 집에서 써보면 조상들의 지혜를 실감할 수 있어요. 20㎏들이 쌀통을 만들어 쓰고 있는데, 쌀벌레도 안생기고, 제가 써본 경험으로는 '타파웨어(1946년부터 미국에서 만들어진 생활용품 브랜드. <포춘>지가 선정한, 20세기 인류 역사를 바꿔 놓은 브랜드로 꼽힌다)' 쌀통보다 더 좋아요."
 
하윤자는 한지공예 옷장의 장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옷을 넣어두면 좀도 슬지 않고, 습기도 차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아요. 정말 마음에 드는 가구예요. 한지공예품을 직접 써보면, 우리 조상들이 왜 종이로 일상용품을 만들어 썼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를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예단함을 주문하러 지인이 다녀갔는데, 한지공예품을 써본 사람들은 그 진가를 안다고 한다.
 
이런 물건을 우리나라 사람들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하윤자는 딸이 호주에 잠깐 공부하러 갔을 때, 외국인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라며 휴대전화 고리와 손거울 등 작은 소품을 만들어 보냈다. 훗날 귀국한 딸은 "외국인 친구들이 너무 너무 좋아하더라. 엄마가 만든 물건이 우리나라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엄마가 얼마나 중요한 전통을 이어가는 예술가인지를 비로소 알게 됐다"며 한지공예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딸은 이제 엄마가 만든 작품들을 사진으로 촬영, 외국인들에게 홍보하는 한편 쇼핑몰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윤자는 외국인들을 통해 한지공예의 매력을 새삼 실감하기도 했다. 2011년 일본 후쿠오카 마린메세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였다. 한국문화홍보관에서 한지공예 체험강사를 맡은 그는 체험에 나선 일본인과 다른 외국인들의 뜨거운 반응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우리 문화를 홍보하는 데에는 한지공예가 최고"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한지공예를 하려면 무엇보다 전통문양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문양을 사용하면 작품이 차별화 되지 않기 때문에 아이디어와 응용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김해시의 후원을 받아 외국에 연수를 나가면, 김해의 공예인들은 그 유명한 관광지는 근처에도 못 가보고 그 나라의 공예품들을 살피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야 한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일본,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수공예품과 그림을 보고 온 경험은 하윤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다.
 
그는 우리 고유의 전통공예인 한지공예의 수준을 높이고, 후대에 전승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해서도 말했다. "우리가 힘들게 살았던 지난 시절에는 우리의 전통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지요. 이제 시작입니다. 전승은 옛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쓸 수 있도록 보완하고, 보완한 것을 세계에 알리는 겁니다. 그것이 한국문화와 세계가 소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한지공예에 매진하는 그를 눈여겨 본 김해의 서각인 곡산 이동신은 '연정(蓮汀)'이라는 호를 지어주기도 했다. '연정 하윤자'는 전승공예 기능보유자에 도전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으며, 그리고 언젠가는 '예술이 있는 철물점'을 열 생각을 품고 있다. 그는 오늘도 한지를 펼쳐놓은 채 문양을 파고, 풀칠을 한다. 그의 손끝에서 한지는 새로운 생명과 역할을 받아 사람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 하윤자
대한민국 공예대전 한국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상 수상 외 다수의 수상경력.
아시아 태평양 페스티벌 2011(일본 후쿠오카 마린메세) 참가. 김해공예협회 회장 역임. 한국미협·김해미협·경남도공예조합 회원.
경남 우수관광상품 인정업체 '윤당공예방' 운영.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