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걸판지게 크고 화려한 행사를 하는 것, 작고 소박하지만 꾸준히 행사를 이어가는 것. 어느 게 더 문화적일까?
작고 소박하지만, 고향처럼 항상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열리는 행사가 보다 더 문화적이지 않을까?
예술창작공간인 생림면 도요리 245 도요창작스튜디오. 중앙 일변도로 진행되는 문화집중 현상 속에서 독특한 문화예술의 산실로 자리매김한 공간이다. 도요창작스튜디오의 한 구성체인 도서관 공간 '도요나루'는 지난해 12월까지 38회에 걸쳐 '맛있는 책읽기'란 행사를 감당했다. '도요가족극장'에 오르는 연극들은 지역주민들과 인근 도시민들의 화젯거리다. 도요창작스튜디오는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도요마을 강변축제'도 열었다. 2013년 첫 <공간&>에서는 도요창작스튜디오의 발자국을 따라가 본다.

▲ 도요창작스튜디오의 '도요가족극장'에서는 연희단거리패의 작품 초연작이 공연된다. 지역주민·학교와 연계된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옛 도요분교에 2009년 들어서
5000여권 장서 도서관과 창작스튜디오·가족극장을 무대로 문화·예술인 60여명 동고동락
지역주민·인근도시에도 큰 인기

도요창작스튜디오가 생림면 도요리 옛 도요분교 자리에 들어선 것은 2009년 봄이다. 연출가 이윤택이 이끄는 '연희단거리패' 단원들, 최영철 시인과 조명숙 소설가 부부 등 60여 명이 이곳에서 숙식하면서 각자의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도요창작스튜디오에는 5천여 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 '도요나루'가 있다. 이윤택이 가지고 있던 문학과 연극 관련 도서, 이원양 교수(한양대 독문과 명예교수·전 한국브레히트학회 회장)가 기증한 브레히트 관련 도서와 원서, 최영철 시인이 소장하고 있던 시집들이 도요나루의 서가에 빼곡하게 꽂혀 있다.
 
매달 작가와 독자들이 함께 하는
도요나루의 '맛있는 책 읽기'


'도요나루'는 2009년 3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맛있는 책읽기' 행사를 열어왔다. 작가를 초청, 독자들과 함께 작가의 세계관과 창작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작품 낭송과 토론도 함께 이루어진다. 그동안 소설가 김성종·윤후명, 시인 이하석·안도현·정일근·김백겸·임동확·이정록·김수우·성선경 등 한국문단의 원로에서부터 중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다녀갔다. 매월 15~40명의 독자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맛있는 책읽기'를 기획하는 최영철 시인은 "김해, 부산, 창원, 양산, 밀양, 진주 등지에서도 독자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시골마을에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문학행사를 하는 곳은 전국에서도 드물다"고 설명했다.
 
행사에 참여하는 독자들이 모두 관련 책을 읽고 오는 것은 아니다. 이름난 문인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 해당 문인의 이야기를 들은 뒤 책을 읽어보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도요나루의 책을 두 세권 빌려가서, 한 달 내내 읽고 다음 달 행사 때 반납하기도 한다. 편안하게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독자들은 이 작은 마을에 유명 작가들이 찾아온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반가워한다. 놀랍고 반갑기는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임동확 시인은 "이렇게 아름다운 문학행사는 처음이다. 김해의 도요마을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고, 이하석 시인은 행사가 끝난 뒤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하고 몇 번이나 도요마을을 뒤돌아보기도 했다.
 

▲ 생림초등학교는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의 연기지도를 받아, 지난해 12월 뮤지컬 '스크루지' 공연을 도요가족극장에서 선보였다.

연희단거리패의 '도요가족극장'
초연공연·예술교육 뮤지컬 제작

'도요가족극장'은 연희단거리패의 초연작이 공연되는 극장이다. 이윤택은 공연을 할 때면 늘 마을 어른들을 무료로 초청한다. 도요마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객석의 맨 앞에서 초연공연을 감상한다. 도요의 어른들은 '탈선 춘향전'을 볼 때는 추임새를 넣어가며 방자의 익살에 웃음을 보태고, 그림자극을 가미한 가족극 '자장가'를 볼 때는 모성을 되찾는 호랑이처녀의 한 맺힌 사연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까워하는 수준 높은 관객이다.
 
지난해 여름과 겨울에는 생림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연희단거리패는 생림초등학교와 예술교육협약을 해 뮤지컬을 함께 만들었다. 배우들이 직접 학교로 찾아가 아이들에게 연기와 노래 지도를 한 뒤 결과물을 도출했고, 이 결과물은 도요가족극장에서 공연됐다. 지난해 7월 14일에는 동요 뮤지컬 <푸른 하늘 은하수>가, 지난달 1일에는 뮤지컬 <스크루지> 공연과 생림초등 병설 유치원 학예발표회가 열렸다. 빈틈없이 들어찬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몸짓 하나와 노래 한 소절에 감동했고, 대사를 잊어버린 선생님 덕분에 마음껏 웃었다. 생림초등 어린이들을 위해 재능을 기부한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의 마음이 지역주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준 것이다.
 
지난해 8월 18, 19일 이틀 동안에는 도요창작스튜디오에서 제1회 '도요마을 강변축제'가 열렸다. 도요마을주민들은 물론, 생림면민과 인근 도시에서 찾아온 시민들이 300명 넘게 이 축제를 즐겼다. 평소에는 찾는 사람이 없어 전화번호 쪽지를 붙여둔 채 문을 잠가놓았던 매점은 때아닌 특수를 누렸다. 연극, 문학행사, 노래자랑, 체험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물론, '도요문화공원'으로 가는 산책길과 낙동강의 시원한 강바람이 도요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물들인 행사였다. 축제는 올해도 열린다. 올해에는 감자 수확기에 열릴 예정이어서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도요나루'는 매달 '맛있는 책읽기'가 열리는 독서·문학 공간이다. 작가들과 독자들이 매달 이곳에서 열띤 토론으로 문학을 꽃피운다.

인문학·예술도서 발간 도요출판사
인터넷 '웹진도요' 전국적 인기

인문학과 예술 전반의 도서를 발간하는 도요출판사도 이곳에 있다. 도요출판사는 도요상상총서, 도요예술총서, 도요문학무크 등 다양한 도서를 기획 출간한다. 시·소설을 중심으로 하는 반 년 간 문학지도 펴내고 있다. '웹진도요'는 매월 발행되며, 인터넷을 통해 전국의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도요마을에 도요창작스튜디오가 들어선 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이 작은 마을에서 이런 고마운 문화행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물론 이윤택, 최영철을 중심으로 한 도요식구들의 열정 덕일 것이다. 그 다음은 도요창작스튜디오를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일 터.
 
최영철 시인은 "도요마을은 김해시의 가장 북쪽에서 밀양과 양산을 마주보고 있다. 그래서 찾아가기 먼 길이라 생각하겠지만, 다시 말하면 김해 시내, 창원, 부산, 양산, 밀양 등지에서 한 시간이면 올 수 있는 곳이다"면서 "도요마을은 가족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먼 길이니 마음 먹고 가야지 하며 출발했는데, 낙동강 따라 마을로 들어오는 길도 좋고, 시골마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어 오하려 더 좋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요컨대,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책읽기'를 즐기고, 연극도 보고, 강바람도 쐬고 또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다 돌아간다는 얘기다."
 
최 시인은 도요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매월 지속적으로 행사를 하고 있고, 메일로 소식을 전하는데, 때가 되면 미리 문의를 하는 가족도 있다고 한다. 한 번 다녀갔다가 서너 달만에 다시 찾아오고, 또다시 찾아오고 하는 가족이 늘어난다는 것은 도요창작스튜디오의 문화행사가 '문화적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일 테다.
 
최영철 시인은 "문화는 크게 한 판 벌이는 것이 아니라, 오래 지속하는 것이다"면서 "지역의 공간, 지역의 사람은 늘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항상 그 자리에서 늘 하고 있는 것, 그래서 문득 그것이 그리워 찾아가는 것, 그것이 문화의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도요창작스튜디오 식구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발자국들이 이어져 길이 되는구나…. 김해시 생림면 도요마을에는 지금 '문화의 길'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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