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산 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늘바닥계곡물은 용곡마을 들판을 모두 적시고도 남았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태정산 세 골짜기 물 합쳐져 큰 계곡
삼곡리·용계리·용곡·중마을 등 불려
1급수 넓은 계곡엔 한때 피리 천국
세월 따라 마을도 변해 "철도소음 피해"

"물 좋기로 이름났고, 물레방아가 있었던 마을입니다."
 
'용곡마을'이라고 했을 때, 용( )이란 한자는 '물레방아' 혹은 '찧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마을이름에서 마을의 유래와 풍경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용곡마을은 태정산(가락국 시대에 왕의 태를 묻은 태봉에서 비롯된 이름)의 세 골짜기 물이 합쳐져 하나의 계곡을 이루는 마을이다. 예전에는 세 골짜기 물이 흐른다 해서 '삼곡리'로도 불렸다. 계곡물이 좋아 물레방아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이름은 다시 용계리로도 불렸는데, 1960년에 '용곡( 谷)'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마을의 옛 이름 중에는 '중마을'이란 것도 있다. 마을 위쪽 고리산(古理山)의 고갯길에 오랜 절터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용곡마을 이병문(72) 노인회 회장은 "우리 마을은 예전에는 중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해서 '중산골'로도 불렸는데, 내가 어렸을 때는 산에서 부처상 조각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이내 용곡마을의 물 자랑을 시작했다. "개울물이 어찌나 맑고 좋았던지 우리 마을 논을 적시고 적시고, 들판을 건너고 건너서 '돌고개(장유면 응달리에서 장유리로 들어가는 곳. 돌아간다 해서 돌고개라 부른다)'까지 흘러갔어."
 
마을에는 현재 32가구에 100명이 채 안 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지금도 벼농사를 주로 짓고 있는데, 그 들판에는 '고래뜰' '띠백이' 같은 이름들이 남아 있다. 고래등처럼 넓어서? 띠가 많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들 지명에서 어렴풋이나마 옛 모습을 추리해 볼 수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옛 추억을 듣고 있는 동안 흥미로운 단어는 계속 등장했다. 태정산 세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쳐지는 계곡을 마을 사람들은 '늘바다' 혹은 '늘바닥'이라 불렀다. 마을 어르신 이영길(72) 씨, 손효경(64) 새마을지도자, 손승수(54) 이장의 발음은 비슷하면서도 모두 달랐다. 아무튼, 계곡은 널찍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여름에는 물놀이 하기 좋았고, 얼음이 언 겨울에는 미끄럼 타기도 좋아서, 사시사철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다. 계곡 위쪽으로 올라가면 깊은 그늘이 있어 한여름 여인네들의 목욕탕도 되어주었다고 한다. 또한 이 계곡에는 1급수에서만 사는 피리가 많아 주전자를 들고 나서면 금새 한 주전자 가득 피리를 채우곤 했다고 한다. "지금은 물이 예전처럼 깨끗하지가 않은지 피리가 안보여." 마을 어르신들의 목소리에는 그러나 아쉬움이 가득했다.
 
▲ 용곡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마을표지석. 버스정류장도 회관 앞에 있다.

용곡마을 당산나무는 남해제2고속국도 지선이 생기면서 없어져 버렸다. 당산나무는 없어졌지만,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전통풍습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달집을 태우고, 줄다리기도 한다. 이 이야기 끝에 태정마을과 용곡마을 간에 벌어진 석전놀이에 얽힌 추억도 등장했다.
 
옛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마을회관으로 할머니들이 들어왔다. 한창 이야기 중이던 어르신들이 할머니들을 '안가모'라 불렀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안식구를 부를 때 쓰는 말이란다. 기자가 자연마을을 취재하면서 가끔 한 생각인데, 김해의 토박이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김해의 말'을 기록해 두는 일도 시급하다는 사실을 한 번 더 느끼는 순간이었다.
 
"철도 소음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달라." 손효경 새마을지도자와 손승수 이장이 신문에 꼭 실어달라며 주민들의 바람을 전했다. 용곡마을 뒤편으로 신항배후철도가 지나가면서 내는 소음이 금병산에 부딪쳐 메아리까지 울려댄다는 것이었다. 손 이장은 "이웃 마을들의 소·돼지 축사에는 방음벽을 설치했는데, 우리 마을에는 아무런 조치가 없다"며 "철도청에서 피해 대책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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