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법망 관리·감독 사각지대

#사례1=직장인 김 모(39) 씨는 지난 3일 밤 회사 동료와 함께 대리운전을 이용했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김해 장유면의 회사 주변에서 대리운전을 부른 김 씨는 동료의 집인 부산 남구 문현동을 경유해 자신의 집인 해운대구 우동 쪽으로 가자고 말했다. 요금은 2만 5천 원. 문현동에서 내릴 예정이었던 동료는 다른 연락을 받더니 김 씨의 집 근처에서 내렸다. 김 씨는 경유를 하지 않은 점을 들어 1만 8천 원을 대리운전비로 건넸다. 하지만 대리운전 기사는 "애초에 경유를 한다고 했으니 2만 5천 원을 내라"며 언성을 높였다. 김 씨와 기사는 10여 분 승강이를 벌였다. 김 씨가 대리운전업체 콜센터에 항의하겠다고 했지만, 대리운전 기사는 '할 테면 하라'며 역정을 냈다. 결국 김 씨는 7천 원을 더 준 뒤에야 기사를 돌려보낼 수 있었다.
 
#사례2=지난달 28일 회식 후 대리운전을 이용한 직장인 정 모(41) 씨는 대리운전 기사가 낸 사고 때문에 경찰서를 오가며 조사를 받고 있다. 정 씨는 어방동 일대에서 대리운전업체 여러 곳에 전화를 넣었지만, 연말이라 그런지 응답이 시원치 않았다. 때마침 주변에 있던 한 대리운전 기사가 선뜻 대리운전을 자청했고, 정 씨는 자동차 열쇠를 맡겼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대리운전 기사는 신호를 위반해 달리다 택시와 충돌했다. 지구대 경찰이 출동했고, 대리운전 기사의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보험에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다음날 정 씨는 대리운전업체에 항의했지만, 업체는 정 씨가 사전에 기사의 보험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정 씨는 "무보험 대리운전 기사인지를 사전에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며 "대리운전 기사가 낸 사고 탓에 보험료 할증과 경찰조사 등 경제적·정신적 피해가 막대하다"고 하소연했다.
 

▲ 대리운전은 전화번호를 얼마나 잘 알리느냐에 따라 매출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기사들은 저마다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무서 신고만 하면 업체 운영 가능
기사 자격도 면허증만 있으면 돼
부당행위·사고 보상회피 등 잇따라

'전국 7천 개의 대리운전 업체' '12만 명의 대리운전 기사' 시대를 맞으면서 대리운전과 관련된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하루 평균 40만 명이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의 음주운전 처벌강화, 음주단속 등으로 음주운전자들이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추세가 늘어나면서 이에 비례해 대리운전업체·기사와 관련된 민원도 늘고 있다.
 
이처럼 대리운전업이 성업 중이지만, 자유업으로 분류돼 있어서 세무서에 신고만 하면 업체를 운영할 수 있고,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누구나 대리운전 기사로 일할 수 있는 등 대리운전 관련 법망은 허술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러다 보니 대리운전에 따른 사고와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국민권익위가 2011년 9월~2012년 8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한 대리운전 관련 민원은 총 438건이었다. 이 중 불법허위광고가 91건으로 가장 많았고, 대리운전업체 부당행위가 74건, 사고처리와 보상회피가 28건, 요금 시비가 31건이었다. 아울러 최근 3년간 대리운전을 하다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830건으로, 이 중 17명이 사망하고, 1천382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리운전으로 말미암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권익위는 2011년 '대리운전 피해방지 제도개선' 권고안을 마련해 국토해양부에 입법을 촉구했다. 권고안에는 ▲대리운전기사 보험가입 의무화 ▲대리운전업체 등록제 도입, 대리운전 기사의 지위 향상을 위한 협회 설립 ▲대리운전업체·기사 처벌 기준 마련, 대리운전 기사 자격 요건 강화 ▲대리운전 약관 제정을 통한 분쟁 해소 등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 권고안은 국회에서 입법안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대리운전업의 경우 제도적으로 허점이 많아 영세 대리운전업체가 난립해 있으며, 대형업체들은 일방적인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대리운전 기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대리운전으로 인한 소비자 분쟁과 피해 사례는 늘고 있지만 제재 법안이 없어 대리운전은 사실상 '관리·감독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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