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서정'의 논쟁은 문학의 끝없는 화두일지 모른다. 대립되는 것 같지만 순환되기도 하고 피터지게 싸우다가도 자연스레 소멸되는, 뭐 그런 거 말이다.
 
기형도가 세상을 등진 1989년 3월에 대학에 입학한 나는, 얼마 후 유고시집이 발간됐다는 소식과 함께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의 시는 곧 언쟁의 대상으로 번져갔다. 굴곡 많은 80년대를 살아냈지만 시대의 아픔에 대해 크게 공감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던 기형도는 참여와 서정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이전의 세상을 살아온 선배들은 더했겠지만, 나의 대학생활도 조용하지는 않았다. 내가 1학년이었던 그 해에 한국외대 학생이었던 임수경 현 국회의원이 방북을 했고, 전대협 의장 임종석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요즘으로 말하자면 아이돌 가수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릴 정도로 학생들의 사회 참여의식이 고조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기형도가 시를 쓰던 시기는 우리가 흔히 말하듯 서슬이 퍼렇던 세상이었고, 강의실에 조용히 앉아 시험공부만 하고 있기엔 견뎌내야 할 불편한 눈들이 많았을 때였을 것이다.
 
그의 시가 세상을 담아내려 했는지는 모르나, 그 시대의 우울을 보는 시선들은 따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정이 도마 위에 회를 치듯 난도질 당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뜻과 상관없이 참여와 서정의 논쟁을 들으며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때였다. 그 시절, 나는 당연히 혼돈스러웠을 것이다.
 
단 한 권의 유고시집으로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기형도는 술자리의 훌륭한 안줏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였고, 어린 청춘들에게 위안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의 성장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시에서 발견한 우울함은, 내게 의무적 고민거리였던 참여와 서정의 숙제를 스스로 풀게 해주는 답안지 역할이 되어주었다.
 
'입 속의 검은 잎' 전문이 수록된 <기형도 산문집>은 내가 그를 동경했던 만큼, 그가 책 속에서 언급했던 작가들을 궁금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던 것 같다.
 
그는 단명하였다. 그의 짧은 삶은, 사후에 사람들이 그의 시를 평가할 수는 있으나, 생을 평가할 수는 없는 자유로움을 지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나는 오랜 습관처럼 그의 시 '빈집'의 한 구절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를 주절주절대는 버릇이 있다. 단지 문장으로서의 그 구절이 너무 좋은 것이다.
 
잠깐 스치듯 살고 갔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시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준, 떠나간 기형도. 기자로서 시인으로서 그의 짧은 삶도 분명히 아름다웠으리라. 아니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Who >> 안재형
1970년 김해 출생. 동상동 시장통에서 컸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밥벌이를 위해 현재 폐기물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다. 사회봉사단체인 김해교육문화연구센터 행정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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