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쿠오카 하카타역 1층에 있는 카야노야의 식품전문매장.
한국의 밥상과 일본의 밥상은 세 가지가 닮았다. 첫째, 밥이 밥상의 주인이다. 둘째, 밥을 맛있게 먹고 영양을 고루 섭취하기 위해 다양한 반찬이 만들어졌다. 셋째, 된장·간장 등의 발효조미료로 간을 한다. 따라서 좋은 밥상, 혹은 인간에게 이로운 밥상을 위한 해답은 두 나라가 같다. 밥상의 주인인 밥을 제대로 대접하고, 발효음식을 복원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하면 된다. 사실 이런 해답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 나설 것이냐는 문제에 이르면 서로 뭉기적거린다. 생산자·음식점·소비자는 서로 남탓을 하기 바쁘다. 시장의 세 주체가 불신에 가득 차 있으니 답을 알고서도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먼저 달겠노라 자청한 음식점이 있으니,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에 있는 '카야노야(茅乃舍)'라는 레스토랑이다.

먼저 이 레스토랑을 알게된 사연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3년 전 지인으로부터 일본에서 사왔다는 '멸치다시팩'을 선물로 받았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먹을 것을 받아들면 요모조모 분석하고 따지는 버릇이 있다. 우선 재료가 놀라웠다. 5가지 재료 가운데 북해도산 다시마를 제외하고는 전부 규슈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나가사키현의 멸치와 날치, 가고시마현의 눈퉁멸, 구마모토현의 소금 등 하나같이 비싼 값에 팔리는 지역 명물들이었다. 이 다시팩으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맹물에 다시와 집된장을 풀고 약간의 채소만 썰어 넣었다. 놀라움을 넘어 그리운 맛이었다. 이는 좋은 재료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바로 이 다시팩을 제조·판매하는 곳이 카야노야였다. '대체 이렇게 훌륭한 다시팩을 만들어 판매하는 음식점의 음식은 어떤 맛일까?' 카야노야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80t의 억새를 사용해 지붕을 이은 '카야노야'의 건물은 서일본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전통의 맛을 지켜가겠다는 카야노야의 가치를 대변한다.
'카야노야'의 모기업은 후쿠오카현에서 1893년 창업한 '구바라쇼유'라는 간장 공장이다. 간장을 비롯한 다양한 발효 조미료를 개발해 자본을 축적한 구바라쇼유는 때마침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에 자극받았다. 전통의 맛과 식자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진짜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레스토랑을 열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에 건물을 짓고 레스토랑을 차린 것은 아니다. 구바라쇼유는 '어떤 레스토랑을 만들 것인가?'라는 기획에만 무려 4년을 투자했다.
 
우선 농업의 근간인 흙을 살리는 일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카야노야를 시작하기 1년 전에 레스토랑이 들어설 지역에 '비덴(美田)'이라는 농업생산법인을 설립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역주민과 공유함으로써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이었다. 고용 창출과 판로 확보를 통해 수익이 증대된다는 사실을 안 농민들은 카야노야가 추구하는 가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로써 카야노야와 지역민 간에는 가치를 공유하는 단단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다음으로 공간을 설계했다. 전통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건물 역시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울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본에서는 초가를 얹은 전통가옥을 카야부키(茅葺き)라고 한다. 카야노야는 990㎡(300평)의 대지에 목조건물을 세우고 약 80t의 억새를 사용해 초가지붕을 얹었다. 전국에서 모인 장인의 협업으로 완성된 높이 11.5m 폭 37.5m의 카야부키는 서일본 최대 규모로, 이 자체가 레스토랑의 상징이자 이름(카야노야=초가집)이 되었다.
 
▲ 무농약 재배한 쌀을 당일 아침에 도정해 도자기 솥에 지은 카야노야 레스토랑의 밥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80여 석 규모의 건물 내부 가장자리에는 뜻밖에도 부뚜막이 설치되어 있다. 이 또한 카야노야의 상징이자 기능적인 조형물이다. 카야노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식은 밥이다. 먼저 계약농가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쌀을 수확과 동시에 저온저장을 해둔다. 쌀은 도정 후 15일 정도가 지나면 산폐가 진행된다. 따라서 갓 도정한 쌀이 맛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 카야노야에서는 그날 사용할 쌀을 당일 아침에 도정한다. 이를 특수 제작한 도자기솥을 이용해 주문과 동시에 밥을 짓는다. 가끔은 장작불을 피워 부뚜막에 올려진 가마솥에서도 밥을 짓는다. 밥에 대한 카야노야의 고집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일 뿐만 아니라, 밥짓는 연기는 초가지붕을 그을려 방충 역할도 한다. 옛 일본의 전통가옥에서 행하던 방식 그대로다. 이러니 밥맛이 꿀맛이다. 밥상의 주인이 반듯하니 나머지 음식 역시 반듯할 수밖에 없다.
 
▲ 계약재배한 카야노야의 식재료들.
카야노야에는 총주방장을 비롯해 모두 8명의 조리사가 있다. 모든 요리는 코스로 이루어지고 매달 한 번씩 코스의 내용은 변경된다. 식재료는 거의 대부분 후쿠오카 주변 20여 곳의 계약 농가에서 공급받는다. 된장·간장을 비롯한 조미료는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판매도 한다. 일본 전통 조리법을 기본으로 하되 식재료 본연의 맛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면 서양식이든 중국식이든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스타일을 추구한다. 근본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지만 음식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개방성을 추구한다.
 
전통의 맛을 유지하고 알리는 일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매달 바뀌는 코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나가노 할머니의 일품요리'라는 메뉴가 있다. 후쿠오카 향토음식 연구가로 올해 83세인 나가노 미치요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사용해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만든 나가노 할머니의 요리는 특유의 '손맛' 때문에 고객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카야노야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매달 '나가노 할머니의 요리교실'을 개최해 고객들에게 전통의 비법을 전수한다.
 
2005년 문을 연 카야노야는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최근 3년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후쿠오카에서 자동차로 30분이나 떨어진 시골에 위치해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3년 전부터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왔다. 다들 기자와 마찬가지로 '대체 이렇게 훌륭한 다시팩을 만들어 판매하는 음식점의 음식은 어떤 맛일까?'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울러 동일본 대지진 이후 식재료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카야노야가 추구하는 가치가 새삼 주목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덕분에 지금은 평일이건 주말이건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낭패를 보기 일쑤다.
 
일본인들은 식사를 하기 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이타다키마스'라고 나지막히 읇조린다. 의역을 하면 '잘먹겠습니다' 정도가 되지만, 어원을 따져보면 '자연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히 받들겠습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음식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되새기는 과정이다. 카야노야의 팸플릿 표지에는 '생명 덕분에 생명입니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이는 카야노야가 추구하는 기본 철학이자, 음식에 담긴 가치이기도 하다.


>> 카야노야는 후쿠오카에서 자동차를 이용해야만 갈 수 있기 때문에 일반 관광객들의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대신 다시나 각종 조미료 등은 도쿄 하네다공항과 후쿠오카 하카타역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아울러 후쿠오카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하카타역 9층의 '쇼보안(椒房庵)'을 이용해 보는 것도 추천할만 하다. 카야노야의 계열 레스토랑으로, 식재료나 음식에 대한 철학은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카야노야 홈페이지 http://www.kayanoya.com
▶취재협조:규슈관광추진기구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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