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원 외단계마을을 등진 채 서천마을회관을 오른쪽으로 두고 바라본 서천마을 입구의 풍경.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니가 일로 한 발짝 더 와서 말해 바라." "머라 하노, 니가 이짝으로 온나."
 
길에서 마주 선 두 꼬마 남자 애들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서로 자기 쪽으로 오라며 버티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자. 한 명은 김해 아이, 다른 한 명은 창원 아이다.
 
진영읍 우동리 서천마을은 진영에서 가장 끝까지 들어가야 하는 마을인데,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단계리 외단계마을과 붙어 있다. 이러니 바로 옆 마을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끼리 자존심을 내세우며 "니가 우리 마을로 오라"고 버티기 놀이를 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래 봤자 한 발짝 거리였다. 하지만 이 마을 어르신들은 그런 기억 한 대목쯤은 누구든 가지고 있단다.

창원 의창구 동읍 외단계마을과 이웃
옛날부터 '마을 자존심' 버티기 놀이 해
저수지 생기면서 마을 통째로 옮겨
물 맑고 인심 좋아 이웃사촌 오순도순
세월 지나 낙후돼 "강원도 산골 같아"


서천마을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들도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서 이 마을을 창밖으로는 많이 봤을 게다. 창원→부산 방향의 진영휴게소에서 산 쪽으로 들어간 곳에 서천마을이 있다.
 
"우동리 서쪽에 있다 해서 서천이라 했지. 원래는 마을 뒤 저수지 안쪽에 마을이 있었다는데, 저수지가 생기면서 마을이 이사를 했어. '서천저수지'인데 저수지 가운데가 김해와 창원의 경계야. 광복 이전에 마을이 이사를 했어. 지금 이 마을 어르신들은 대부분 여기에서 태어났고." 주지용(61) 새마을지도자와 노인회 이창영(71) 회장이 마을의 내력을 들려주었다.
 
서천저수지가 이 일대의 논을 적시는 젖줄이라면, 서천마을의 앞산 뒷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이 일대의 땔감이었다. 산에서 베어낸 나무장작을 땔감으로 쓰던 시절, 인근 마을에서는 죄다 서천마을의 산에서 땔감을 해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마을이 인근 마을들을 먹여 살린 셈이네." 마을 어르신들이 잠시 웃음꽃을 피웠다.
 
마을 뒷산에는 지금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다. 칡넝쿨이나 새끼를 꼬아 만든 동아줄로 그네를 만들어 놀았던 나무들이다. 한 번 구르면 하늘까지 올라가는 그네는 사철 놀이였고, 한겨울에는 논바닥에서 썰매를 지치기도 했단다.
 
서천마을은 물도 맑고 좋았다. "깽빈에 나가면 붕어, 미꾸라지가 지천이었지." 마을 어르신들의 추억이다. '깽빈'은 마을을 흐르는 개천인데, 이들은 이렇게 불렀다. '강변'을 세게 발음한 게 아닐까? 아무튼 깽빈에서는 낚시를 할 필요도 없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책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손으로 물고기를 집어 올려' 빈 책가방을 가득 채웠다. 책은 한 손에 들고, '물고기 가방'을 들고 집에 가서는 회로 먹고 지져서도 먹었다.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었지. 인심도 좋았고. 지금 세상하고 그때 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어." 주지용 새마을지도자가 회상했다.
 
▲ 마을 뒤편 둑에 올라서면 서천저수지가 보인다.

한때는 다른 마을 부럽지 않을 만큼 많은 주민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24가구 50명도 안 되는 주민들만 남아 있다. 그마저도 집들이 떨어져 있어, 마을 소식 한 번 전하려면 신연일(61) 이장은 집집마다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도 따로 보내야 한다. 농사를 짓는 집은 대대로 벼농사를 짓고 있고, 나이가 들어 농사일을 못하는 노인가구는 자식들이 보내오는 용돈에 의지해 살아간다.
 
"서천마을은 예전에도 힘들었고,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는 마을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어." 마을 주민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 마을은 김해에서 제일 끝에 있어서 그런지, 가장 낙후돼 있어. 우동마을까지는 길이 넓은데,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너무 좁아. 강원도 산골마을도 이렇게 길이 좁지는 않을 거다." 한 주민이 한탄을 했다.
 
마을 주민들은 "그린벨트 지역이라 수십년 째 재산권 행사도 못하고, 작은 보수공사조차 신고를 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는데 세금 혜택도 없고, 농가부채와 보험금마저 개인자산으로 분류돼 1년에 고작 60만원 지급되는 그린벨트 지역 주민 지원금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며 현실적인 농촌 행정을 간절히 희망했다. 주민들은 도시가스 시설을 할 때 개인부담금도 줄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니, 마을이 존속되길 바라는 건 당연하겠지요. 그러자면 마을이 조금이라도 살기 편하게 바뀌어야 할 텐데…. 시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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