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마을회관 앞. 저 멀리 신항만 배후도로가 보인다. 박나래 skfoqkr@

서낙동강 북섬이 분동…화훼농사 중심
집과 길 제외하면 온통 비닐하우스
40~50대 많아 젊은 농촌으로 통하기도
주민들 "버스 한 대 안다니니 불편 커"

"우리 마을 사람들, 전부 논밭 옆에서 자랐을 끼라."
 
대동면 예안리 신명마을 경로당의 할머니 방에 모인 어르신들이 한 마디씩 하면서 웃었다. 할머니들은 이재순(48) 이장을 바라보며 "이장은 토마토 밭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토마토 밭에서 자란 이 이장은 현재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신명마을은 장미를 중심으로 한 화훼와, 토마토·수박·참외·배추 농사를 주로 짓는 마을이다. 할머니들은 "젊었을 때 집안일에 농사일까지 하느라고, 큰 대바구니 안에 포대기 깔고, 얼라를 눕혀 밭고랑 옆에 놔뒀다"며 "아 우는 소리가 들리면 가서 바구니를 두어 번 흔들어주고 다시 일을 했다"고 추억했다.
 
'신명'은 1970년대의 경지정리 이후에 생겨난 이름이다. 당시 서낙동강 북쪽 편에 있던 '북섬'의 북섬 1구가 신안마을로, 북섬 2구가 신명마을로 분동이 됐다. 처음에는 벼농사를 지었으나, 차츰 화훼 농사 중심의 마을이 됐다. 현재 60가구 2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화훼 농사는 힘 쓰는 일이 많고, 또 손이 많이 가는 농사이다. 그래서 학교를 마친 자녀들이 큰 도시에 나가려는 걸 부모들이 주저앉혀 계속 농사를 짓게 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조용석(72) 노인회장이 전했다. 그 덕분인지 이 마을에는 40~50대가 많다. "50대가 많지요. 요즘 시골마을에서는 50대면 청년입니다." 이 이장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마을 끝에 서낙동강이 있는데, 옛날에는 배가 드나들던 나루터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루터를 '홈깨나루'라 불렀다. 홈깨나루에서 떠나는 배는 강 건너 대저에 닿았다. 이 배로 김해와 부산을 오가는 마을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저 사람들은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타고 왔다. 대저사람들은 원동마을의 산에서 땔감을 해갔다. 마을 어르신들은 "한겨울에는 얼어붙은 서낙동강 위로 나무더미를 밀고 가던 장면을 어렸을 때 많이 보았다"고 추억했다.
 
▲ 요즘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서낙동강은 이 마을에서 자란 소년들에게는 좋은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어릴 때 여름이면 늘 강에 가서 멱감고 놀았죠. 새우, 참게, 대치, 재첩, 고둥도 많이 잡혔습니다. 밤에 하는 은어잡이는 특별한 재미였구요." 이 이장도 어릴 적 추억을 더듬었다. '대치'는 강에서 자라는 큰 조개이다. 학명은 '귀이빨대칭이'로 우리나라에서는 낙동강에서 주로 서식했는데, 수질 환경이 나빠지면서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다. 우리나라는 2012년 5월 31일부터 대치를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했다.
 
신명마을에 들어서면 집과 길을 제외하고는 온통 비닐하우스이다. 특별히 문패가 붙어 있지 않은, 이 끝도 없는 비닐하우스의 주인들을 외지인이 구분하기란 참 힘든 일이겠다. 주민들이야 손바닥 보듯 훤하겠지만 말이다. 한창 농사일이 바쁠 때는 중국집에서 참을 시켜먹을 때가 있는데, 신명마을을 관리하는(?) 중국집에 가면 벽면에 '비닐하우스 지도'가 붙어 있단다. 이 지도에는 비닐하우스마다 꼼꼼하게 주인의 이름을 적어 두어 음식 배달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돼 있다고 한다.
 
신명마을 청년들은 정월대보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쪄 와서 달집을 지을 계획이다. 마을 사람들은 떠오르는 달 앞에 한 마음으로 모여 주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한다. 주민들은 그 상에 돈도 놓고, 술도 따르고, 달집불에 가족의 이름과 소원을 적은 소지도 불사른다.
 
이야기를 마칠 즈음 할머니들이 신문에 꼭 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붙잡았다. "마을에 버스 좀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답답한 하소연이 쏟아졌다. "버스 한 번 타려면 한참 걸어가야 해. 하루에 버스가 두 번만 들어오면 소원이 없겠네." "두 번까지 안 와도 된다. 한 번만 와도 덜 답답하겠다." "어데, 큰 버스 안 와도 된다. 쪼깬한 버스 있다 아이가. 그거 하루에 한 번만 들어오게 해 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심지어 "기사 제목을 '버스 한 대 안 다니는 신명마을' 하면 어떠냐"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 마을 회관 앞에 서면 신항만배후도로가 코 앞에 보이고 차도 씽씽 달리는데, 정작 신명마을의 교통 사정은 좋지 않다. 소형 버스라도, 하루에 한 대만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마을 어르신들의 소망, 올해는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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