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동면 감노리에 있는 전통찻집 '남새밭'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범상치 않은 대추차라며 지인이 보여주는 사진 한장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대추 엑기스나 대추고에 꿀이나 설탕을 가미해서 묽게 녹인 흔히 접했던 대추차와는 그 색과 농도가 달랐다. '차'라기 보다는 흡사 '죽'에 가까웠다. 지인은 마시기 보다는 숟가락으로 떠먹는 게 더 어울릴 정도였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달더라고 했다. 사진만 봐도 여간 공들인 '물건'이 아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얼마나 달고 진할지 상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였다. 그 대추차 한 잔에 이끌려 멀리 상동면 감노리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대동면을 거쳐 덕산리와 매리를 지나니 한적하던 강변 마을은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낙동강정비사업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탓이다. 강줄기를 따라 오랜 세월 자연스레 형성된 옛 마을의 정취는 이제 기억 속에서나 존재할 따름이다. 자연마을이 사라진 자리에는 친수공간과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졌으며, 전망 좋은 언덕에는 '고급별장지'가 조성되고 있었다. 두어달 기른 머리만 잘라도 어색하기 마련인데, 수 십년 혹은 수 백년을 이어온 흔적을 지우고 그 자리를 대신한 '정비된 풍경'은 그저 생경할 따름이다. 이런 어색함은 조경수로 심어 놓은 마른 나무들이 그럭저럭 그늘을 만들어 줄 때까지는 적응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강은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삼랑진을 지나 무척산 끝자락 도요리에서 굽어진 강물은 기세등등하게 바다로 향했다. 그 도도한 물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도로변에 '남새밭'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너른 마당 한켠에 지은 지 얼마되어 보이지 않는 2층집이 자리 잡았다. 주인장 대신 마당을 거닐며 모이를 쪼아 먹는 닭 몇 마리가 손님을 맞는다. 한눈에 봐도 건강하고 날렵해 보이는 녀석들이다. 주인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닭장에는 집 나간 닭 대신 한 무리의 참새떼가 식객 노릇을 하고 있다. 그 한가로운 풍경이 겨울 햇살 마냥 푸근하다. 마당 너머로 펼쳐지는 강 건너 풍경은 눈맛이 시원하다. 서쪽으로는 양산시 원동면의 도곡산과 매봉산이, 동쪽으로는 물금읍의 오봉산이 한 폭의 산수화 마냥 아스라히 겹치고 이어진다. 전통찻집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입지다.
 

▲ 찻집 내부.
통나무와 황토로 마감한 실내를 가득 채운 차와 도자기를 보니 이 또한 영락없는 찻집이다. 일부러 먼 길을 달려 온 보람이 충분할 정도로 편안하고 여유로운 공간이다.
 
거두절미하고 대추차부터 한 잔 청했다. 뜨겁고 뽀얀 김을 연신 뱉아내는 대추차 한 잔이 앞에 놓였다.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은 갈색의 대추차 위에 편으로 썬 대추와 잣 몇 알이 동동 떠 있다. 짐작했던대로 맑은 차라기보다는 곱게 쑨 미음이나 팥을 뺀 단팥죽 같은 농도다. 마시기 보다는 작은 티스푼으로 한 술 떴다. 예상을 뛰어넘는 단맛이다. 예상치는 못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대추는 당도가 최고 30브릭스에 이를 정도로 단 열매다. 사과, 포도, 배, 밀감, 수박 등 흔히 달다고 생각하는 과일이 13~18브릭스 수준임을 감안하면 당도가 얼마나 높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남새밭의 주인장이 차선으로 말차요구르트를 만들고 있는 모습.
그렇다고 마냥 달기만 하면 이 대추차는 몇 모금 먹지 못하고 금새 질려버렸을 것이다. 헌데 신기하게도 아릴 정도로 달긴한데 뒷만은 또 그렇게 깔끔할 수 없다. 그러니 연거푸 떠먹고 마시다 결국엔 바닥까지 말끔하게 긁어 먹게 된다. 물론 설탕이나 감미료가 내는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고 대추가 가진 본연의 단맛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더 결정적인 이유는 향과 신맛 때문이다. 남새밭의 대추차는 단맛뿐만 아니라 향과 신맛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대추는 6~7월에 꽃이 피고 9월 하순부터 열매가 익는다. 처음에는 옅은 녹색이었다가 가을볕을 받으면서 적갈색으로 변한다. 녹색일 때는 신맛이 강하고 갈색으로 변하면서 당도가 높아진다. 요즘에는 단맛과 아삭한 식감을 두루 즐기기 위해 생과를 먹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는 보관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충북 보은, 경북 경산, 전북 임실 등 지역마다 이름난 대추 산지들이 있는데 경남은 밀양대추를 으뜸으로 친다. 남새밭에서는 밀양에서 생산된 대추만을 고집한다.
 
좋은 재료가 가진 맛과 향을 오롯이 뽑아내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남새밭은 말린 대추를 뭉근한 불에서 오랜 시간을 고은다. 향과 맛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더불어 좋은 대추는 오래 고을수록 단맛이 강해진다. 곤죽이 될 정도로 물러진 대추는 고운 채에 걸러 씨와 껍질을 분리한다. 이렇게 즙과 과육만 분리한 것이 '대추고'다. 보통의 대추차라면 이런 대추고에 설탕이나 꿀을 첨가해 물을 넉넉히 붓고 맑은 차로 내기 마련인데, 남새밭에서는 농도를 조절할 정도의 물만 섞기 때문에 대추 본연의 맛과 향이 온전히 살아있다. 그래서 이 대추차는 달고 맛있는 음료이기도 하거니와 차라리 한 사발의 보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대추차 / 말차요구르트
대추차와 더불어 남새밭에서 빠트리면 섭섭한 또 하나의 메뉴는 '말차요구르트'다. 찻잎을 쪄서 말린 다음 맷돌에 아주 곱게 간 말차는 색이 곱고 향이 은은해 녹차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특히 아주 미세한 분말을 찻사발에 담고 '차선'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물과 분말이 섞이도록 심하게 저어주면 녹색의 고운 거품이 생기는 데, 바로 이 거품이 말차의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얼핏 투박해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은근한 매력이 느껴지는 찻사발과 녹색의 고운 거품이 그렇게 조화롭게 보일 수 없다.
 
하지만 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차는 왠지 밍숭맹숭하고 텁텁해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데 또 말차가 들어간 가공식품은 매우 인기가 높다. 녹차아이스크림, 녹차라떼, 녹차케이크 등에는 모두 말차가 사용된다. 그것도 조리용으로 만들어진 아주 질 낮은 가루녹차가.
 
남새밭에서는 이 점에 착안해 말차요구르트를 선보이고 있다. 품질 좋은 말차에 물 대신 요구르트를 붓고 차선으로 저어 주니 물을 사용했을 때와 거의 차이가 없는 곱고 은은한 녹색의 거품이 일었다. 비록 물을 사용했을 때만큼 섬세하지는 않지만, 그와 진배없는 맛과 향이 나면서 요구르트 특유의 단맛과 신맛까지 곁들여지니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만한 맛있는 음료가 만들어졌다. 소박하면서도 은근한 찻사발에 이렇게 맛있는 음료를 담아 먹자니 미안할 정도로 이색적이다. 굳이 정통을 고집하기 보다는 이런 노력을 통해 말차의 매력을 알게 된다면 그것 또한 의미있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말차의 품질 자체가 다르다 보니, 시중에서 판매하는 녹차라떼를 비롯한 가공음료에 비해서는 확실히 한 수 위의 맛이다.
 
▲ 찻집 외부.
녹차와 발효차 등 정통차와 더불어 대추차와 말차요구르트 등 맛도 효능도 뛰어난 차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 남새밭은 가족이 함께 방문하기에 안성맞춤인 전통찻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후죽순 생겨나 이제는 차별화라는 말조차 식상한 커피전문점보다는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강변을 끼고 달리는 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일 뿐더러, 요즘 낙동강변에는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메뉴:대추차(7천 원), 말차요구르트(7천 원)
▶위치:김해시 상동면 감노리 4의 5
▶연락처:055)337-9285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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