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박호민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 시인은 말없이 수기로 쓴 시 한 편을 나에게 건넸다. 그 작품이 바로 시인의 처녀시집 <들개와 솔개> 제4부, 98페이지에 얹혀 있는 '답신'이다.
 
"봄나무들의 손길 바쁠 때/ 그 꽃그늘 아래 무식하게 앉아 보았어"로 시작돼 "참 캄캄하고 서러운 편지"로 끝내는 작품이다. 시 한 편을 손에 쥐어주는 시인의 수줍은 눈빛, 그러나 그 눈동자 뒤의 캄캄하고 서러운 굴곡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언제부터인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척박과 절박의 상징이 되어버린 58년 개띠해에 태어난 것도 고달프거니와, 80년 민주화 세대의 행동대원 역할을 자처하며 온몸으로 시대의 매질을 막아낸 선배들이 아니었다면 시인들은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고, 나 또한 386세대의 막차에 올라타지 못했을 것이다.
 
전남 고흥 출신, 58년 개띠의 이력을 지닌 시인이 30년 만에 시집을 갖게 되었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 <들개와 솔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서정을 오롯이 담아냈다. 생의 구석구석에서 부는 형상 없는 바람들, 그 바람이 영혼을 휩쓰는 태풍이거나 코끝을 간질이는 솔바람이거나 손부채로 일어나는 바람이거나, 시인은 슬픔을 포기하지 않는다. 눈물로 시작하여 눈물로 끝나는 시들을 읽다 보면 세상이 온통 들개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것만 같다. 시인은 "삶의 바이러스가 슬픔이라면 눈물이 백신이 되어줄 것"이라고 처연하게 독백을 내뱉는다. 행복조차 눈물이 주는 선물인 것처럼.
 
말 많은 시대에는 말이 돈을 벌어다 준다. 그러나 시가 많은 시대에는 시가 돈을 벌어다 주지 않는다. 시가 부족한 시대에도 여전히 시인은 가난했다. 시를 쓴다는 건 가난하게 살겠다는 선서이며, 영혼에 세워놓은 깃대이다. 바람이 불면 깃발 같은 시가 휘날릴 것이다.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축축하지만 음습하지 않다. 제목처럼 들개와 같은 형형한 눈으로 세상을 돌아다니지만, 가끔은 하늘을 보며 솔개를 눈여겨 보기도 한다. 긴 도회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에게 고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집 제 4부의 부제, '작은 마을에서'의 첫 작품 '별후'가 독자의 마음을 다독인다. "그대, 모든 해맬 길/ 서러움도 마른 뒤엔/ 살구꽃 피는 동구에서 만나리"(시 '별후' 전문)
 
생의 오의(奧義)는 눈물, 울어야 할 때 울어야 하고 울릴 수 있을 때 울려야 하는 슬픈 이가 시인이라는 걸, 시인은 너무 잘 안다. 가진 게 없어 시로 내몰린 운명에 순명하며 살기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도, 시인은 산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는 진부해졌다. 서정시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가 맞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낡았다. 초심은 없다. 태초에 기록이 있었고, 기록은 한 줄 시였다. 그 태초부터 흘러온 줄기가 시인에게도, 우리에게도 '들개와 솔개'가 될 것이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들길 너머 양지뜸에 움막 하나 짓고 똘똘한 삽살개 한 놈 데불고 싶다고 시인은 소망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곧 봄은 온다. 웃을 일이 없다면 한 바탕 크게 울어주는 것도 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혹시 아는가. 박호민 시인의 처녀시집 <들개와 솔개>를 손에 들고 빨래처럼 탈탈 털면 눈물 몇 방울이라도 떨어질지….


Who >> 김명훈
강원도 태백 출생, 2002년부터 김해에서 살고 있다. '벨라회' 소속 독서토론회 '글&즐'에서 활동 중이다. 틈틈이 시와 산문을 쓰는 것 외에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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