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영혼이다. 판소리의 깊고 아득한 경지를 향유해 보라. 들을 가치가 있는 음악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것이 최고'라고 무조건 우겨보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및 음악학 부교수로 재직 중인 헤더 A 윌로비 교수의 말이다.
북을 치는 고수와 소리꾼 단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공연. 북장단과 소리만으로 약 5시간 동안 이어지는 판소리 완창공연은, 이런 형식의 공연을 처음 보는 외국인들까지도 웃고 울게 한다.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는, 2003년 11월 7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돼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김해의 소리꾼 홍승자(50) 씨는 강산제 심청가 이수자이다. 삼계동 수리공원 앞 '홍승자 판소리 연구소 국악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홍승자는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열 살 무렵 부모의 고향인 전남 강진군 강진읍으로 이사했다. 이 때 처음으로 '소리'를 들었다. TV가 보급되기 전에 여러 고장을 다니면서 창극도 하고, 약도 팔던 악극단이 있었다. 영화 <서편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런 악극단 중 전남지역을 돌면서 공연을 하던 악극단이 강진에 왔을 때는, 홍승자의 옆집에 석 달씩 머물렀다. 악극단은 아침마다 공연을 알리는 풍악을 울려댔다.
 

▲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어릴 때 악극단 아쟁·징·배우들 소리에 왠지 눈물이 났고 무작정 빠져들었다가
국악인 이임례 선생님 만난 뒤로부터 동편제에서 강산제로 바꿔 배우며
심청가 이수자로 소리공부에 흠뻑 빠져
제자들과 함께 예술단 활동도 왕성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끌렸어요. 오전에 한 차례, 늦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또 한 차례 공연을 했는데, 그걸 보러 들어갈 수가 없어 애가 탔지요. 애들은 못 들어오게 했거든요. 아쟁소리, 징소리, 악극단 배우들의 소리를 들으면 왠지 눈물이 났고, 무작정 끌렸지요."
 
홍승자는 자신이 소리에 끌린 연유를 어린 시절의 꿈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여섯 살 때부터 3년간 같은 꿈을 꿨어요. 여수 선창가를 거닐다가 바다에 빠졌는데, 소가 나를 건져주었어요. 그리고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북 치고 장구 치면서, 나를 감싸고 도는 꿈을 계속 꾸었어요. 꿈에서 들었던 가락이 그 악극단에서 내는 가락들과 겹쳐지면서, 가슴이 아련해지고 찡해지는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선몽이었는지, 접신이었는지 여하튼 그러네요."
 
극장에 못 들어간 소녀 홍승자는 배우들이 묵고 있던 집 근처를 맴돌았다. 여배우들 중에는 간혹 갓난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는데, 홍승자는 그 아기를 데리고 놀았다. 그게 고마워 여배우들은 단가를 한 대목씩 가르쳐 주기도 했고, 급기야 자연스레 애보기가 된 홍승자는 극장을 무시로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이런 딸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던 어머니 때문에 여러 번 야단법석이 났다. "여배우들은 남의 딸 꼬셔내 광대를 만들 작정이냐고 어머니한테 혼이 났고, 저는 어머니한테 머리끄댕이도 여러 번 잡혔죠." 그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는 시대극 드라마의 한 대목 같았다.
 
"소리꾼의 운명을 받아들이겠다, 우리 소리를 지켜가겠다, 뭐 이런 사명감으로 소리를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이 길을 가게 된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냥 자연스럽게 끌려서…. 내 생각에는 전생에 내가 소리꾼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 판소리연구소 한 쪽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 북과 가야금.

동편제(명창 가왕 송흥록이 발전시키고 국창 송만갑이 완성시킨 판소리의 유파. 전남 북동부지역에서 성행했다) 소리를 하던 그가 강산제(조선 고종 때의 광대 박유전이 창시한 판소리의 유파. 다른 유파들에 비해 체계가 정연하면서도 범위가 넓다) 소리꾼이 된 것은 국악인 이임례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이임례는 강산제 심청가의 기능보유자로, 영화 <휘모리>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 창원시에서 시민들을 위해 국악공연을 열었다. 홍승자는 남도소리를, 이임례는 초청 국악인으로 판소리 공연을 했다. 이임례의 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끌린' 홍승자는 광주에 살고 있던 이임례를 찾아갔다. 그동안 익힌 동편제 소리를 모두 버리고, 강산제 소리를 다시 배웠다. "15년이 넘도록 광주를 오가며 선생님께 소리를 배웠어요. 2005년에 강산제 심청가의 이수자가 됐는데, 아직 전수조교 과정이 남아있어요." 홍승자는 지금도 김해와 광주를 오가며 계속 소리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1996년 김해로 와 살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경상도에서 소리를 가르치는 일이 쉽지는 않다고 고백했다. "말씨, 환경, 생활습관, 풍속이 다르다 보니 좋아하는 국악분야도 달라요. 경상도는 사물놀이와 춤에 관심이 많지요. 재미있고, 경쾌한 걸 좋아합니다. 반면에 전라도는 한이 바탕이 된 소리에 관심이 많구요. 20년 넘게 김해와 창원에서 소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 소리문화의 저변확대가 참 힘드네요." 그의 말 속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국악교육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2000년부터 김해지역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국악을 가르쳐 왔어요. '예술강사 파견제'였죠. 제도가 처음 시작됐을 때는 국악을 가르칠 수 있는 음악교사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제도가 시행된 지 14년째인 지금도 학교에는 국악을 전공한 음악교사가 드물어요. 전국적으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 되는 실정입니다."
 
▲ 홍승자와 제자들이 마주보고 앉아 소리 연습을 하는 자리.
그런 현실 속에서 국악에 관심을 가진 공무원들이나 지역 유지들을 만나면 큰 힘이 된다. 그는 고마운 사람으로 현 김해문화의전당 이종숙 사장을 먼저 꼽았다. "이종숙 사장님이 경제진흥 과장으로 근무할 때, 류치원(현 상공회의소 사무국장) 문화관광국장님께 저를 추천해 2005년 가락문화제에서 폐막 공연을 했어요. 김해 시민들에게 제 이름을 알리는 큰 공연을 하게 된 거죠. 1시간 동안 민요와 사물 공연도 하고, 시민들에게 단가도 한 대목 가르치고…. 잊지 못할 공연이었죠." 후에 알고 보니, 류 전 국장은 밀양 표충사 계곡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산공부(여름철에 계곡 물소리에 맞서 소리목을 틔우며 공부하는 과정)를 하는 홍승자를 먼 발치에서 본 적이 있던 터였다고 한다.
 
홍승자는 제자들을 이끌고 수년간 '홍승자 국악예술단'이라는 이름으로 공연활동을 해오다가 2008년 '가야가락예술단'을 설립했다. 그동안 김해, 창원, 부산 등 경남 일원에서 다양한 공연을 했다. '가야가락예술단'은 올해 초 일본 규슈에서 열린 '제2회 한일청소년음악교류회'에 초청공연도 다녀왔다. 2011년 일본의 중학생들을 인솔해 김해한옥체험관을 다녀간 시마다 기요시(한일교류연결회 회장) 씨가, 일본 학생들에게 아리랑과 도라지타령을 가르치는 홍승자 씨를 보고 감동을 받아 예술단을 초청했던 것이다. 시마다 기요시 씨는 "올해 여름 산공부에 꼭 불러달라. 짧은 노래라도 하나 배우고 싶다"며 특별한 부탁을 했다고 한다.
 
홍승자는 오늘도 끝없는 소리 공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는 그럴듯한 사명감이나 목표를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소리를 하는 이유는 "그저 자연스럽게 끌려서"이다. 똑같은 이유로 그를 찾아오는 제자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소리에 끌려서'이다.

▲ 홍승자가 그러했듯 제자들도 '소리에 끌려서' 스승 홍승자를 찾아왔다. 왼쪽부터 정호성, 이현지, 정영자, 박희숙, 홍승자.

>> 홍승자에게 소리를 배우는 제자들의 한마디

△이현지(김해가야고·3년)
주촌초등 때 선생님을 만났다. 중학교 때 잠깐 쉬었다가 다시 소리를 배우고 있다. 부모님들도 나를 믿어주시고 응원해 주신다. 대학에서도 국악을 전공할 계획이다. 이 길을 계속 가겠다고 마음을 다지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정영자(39·여·마산 내서읍)
연극배우로 첫 무대에 섰을 때 소리꾼 역할을 맡아 배우러 온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한 달 동안 '사철가'를 배우고 연극무대로 돌아갔다. 이후 전업주부로 살다가 선생님을 다시 찾아와 예술단에 입단해 활동하고 있다. 단원들에게 연기지도도 하고 있다.

△박희숙(51·여·장유 율하)
진례 녹차축제에서 공연 중인 홍승자를 보았는데, 알고 보니 고향친구였다. 나도 남도 출신이라 소리에 자연스레 끌린다. "그냥 어디 가서 한 곡조 근사하게 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배우고 있다. 힘들지만 재미있다.

△정호성(44·여·삼계동)
한국무용 강사로 활동 중이라 민요를 배울 필요가 있어 선생님을 찾았다가 소리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민족의 정한이 배어 있는 가사가 너무 좋다. 판소리가 하고 싶어, 내가 가르치는 수업을 조절해 선생님께 개인지도를 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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