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된장찌개와 더불어 한국인의 밥상에 가장 자주 올라오는 찌개다. 아울러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MT나 캠핑 등을 가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이렇게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은 밥과는 더할 나위 없는 찰떡궁합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울푸드'다.

맛이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한국인 치고 김치찌개 못 끓인다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조리가 간편하기 때문이다.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잘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고 한소끔 끓여내기만 하면 된다. 왠지 맛이 좀 빈다 싶을 땐 화학조미료 조금 넣어주면 절묘하다 싶을 정도로 균형이 맞춰진다. 돼지고기가 여의치 않을 땐 꽁치나 참치통조림 또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렇게 쉽고, 흔하고, 대중적인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김치찌개 맛있게 하는 식당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정식집 혹은 백반집 치고 김치찌개가 메뉴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래, 이 맛이야!'라고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좀처럼 드물다. 김치가 맛이 없기 때문이다.
 
음식에 관한 글을 쓰는 직업적인 특성상 식당을 보는 남다른 기준 혹은 버릇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어느 식당을 가건 습관적으로 손님이 식사를 끝낸 식탁을 유심히 살핀다. 음식 그릇이 비워진 정도와 비워진 상태를 보면 식당의 수준이 대충 짐작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반찬이 김치다.
 
밥상에서 김치가 빠지면 그렇게들 섭섭해 하면서, 정작 김치맛에는 둔감하다. 김치가 빠져서 불평하는 사람은 봤어도 김치가 맛없어서 불평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이러니 우리네 대중음식점들의 김치가 엉망이다.
 
우선은 많은 식당들이 김치를 직접 담그기 보다는 사서 쓰는 경우가 많다. 그 대부분은 중국산 김치가 차지한다. 사실 공장에서 만든 김치는 중국산이건 국산이건 맛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김치는 숙성과정에서 유산발효를 통해 맛이 드는데, 이러면 비용이 많이 든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익은 김치의 신맛을 싫어한다. 그래서 공장김치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양념에 버무리자마자 곧장 출고한다. 이러니 맛이 빈다. 그 빈약함을 화학조미료와 사카린으로 채운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장김치는 화학조미료의 덜큰한 맛과 사카린의 단맛으로 먹는다. 이렇게 조합된 맛을 두고 국산이냐 중국산이냐를 분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가격은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원가에 민감한 식당 업주 입장에서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다.
 

▲ 곰삭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양껏 듬성듬성 썰어 넣은 김치찌개가 갓 지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만든다. 김치찌개와 함께 찰떡궁합인 달걀말이 또한 토박이식당의 대표 메뉴이다.
김치를 직접 담궈 쓰는 식당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요즘 식당에서 담그는 배추김치나 무김치는 유난히 달다. 소비자들이 이를 맛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치를 담글 때 설탕이나 물엿을 쓰지는 않는다. 당분이 첨가되면 과발효가 일어나 김치가 금방 물러진다. 대신 사카린을 비롯한 인공감미료를 첨가한다. 이는 단맛만 날 뿐 과발효가 되지 않아 아삭한 식감이 오래 유지된다. 단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잘못된 기호가 만들어낸 서글픈 현실이다.
 
몇 년 전부터는 묵은지를 이용한 김치찌개가 유행이다. 양념을 적게 해 6개월 이상 숙성시켜야 맛이 나는 묵은지가 봇물 터지듯 등장했다. 대체 그 많은 묵은지를 어떻게 공급할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온도가 높은 곳에서 숙성하면 단기간에도 묵은지는 만들어진다. 초산을 더하면 속성으로도 가능하다. 대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소금을 사용한다. 이런 김치로 찌개를 끓이면 신맛과 짠맛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설탕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는다. 이렇게 끓인 김치찌개는 뜨거울 때는 꽤 그럴듯한 맛을 내지만 식은 다음에 먹어보면 맨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마련이다.
 
김치가 처한 상황이 이러니 김치찌개 맛있게 하는 식당이 드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의 대표적인 소울푸드니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동네마다 나름 소문난 집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김해의 경우 봉황동의 토박이식당이 그렇다. 원래는 '토박이돼지곰탕'이라는 상호로 영업을 하다가 3년 전 확장 이전하면서 토박이식당으로 상호를 바꾸었다. 대표 음식이었던 돼지곰탕보다 김치찌개와 두루치기가 더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집 김치찌개는 제법 곰삭은 맛이 난다. 특별한 기교는 없어 보이지만 진한 육수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듬성듬성 쓸어 넣고 꽤 오래 끓여내기 때문이다. 한번에 많은 양을 끓여두고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데워서 내는 스타일이다. 이러니 제법 묵직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젓갈과 양념을 많이 사용하는 경상도식 김치로 끓이는 김치찌개의 특징이기도 하다. 개운한 맛은 부족하지만 오히려 약간 텁텁한 맛이 경상도 토박이들에겐 친근하다.
 
잘 끓여낸 김치찌개 한 사발이면 다른 반찬이 굳이 필요치 않지만 너댓개 정도 깔리는 반찬 역시 밥맛을 적절히 돋워준다. 특히 수더분하게 구워낸 달걀말이가 일품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김치찌개에는 달걀말이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김치찌개와 달걀말이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이 금새 비워진다.
 
어찌나 인심이 후한지 밥그릇을 비워도 찌개 사발에는 여전히 두툼한 돼지고기가 제법 남아 있다. 이 정도면 소주 한 병 정도는 거뜬할 것 같다. 김치찌개를 주문할 때 미리 국물을 넉넉히 잡고 간간하게 해달라고 하면 소주 안주로 더할 나위 없다. 점심에는 식사로, 저녁에는 반주 삼아 술 한 잔 하기 좋은 집이다. 진한 양념에 국물이 자작자작한 두루치기 역시 김치찌개 만큼이나 단골들의 인기 메뉴다. 물론 이집 역시 김치 자체는 그리 칭찬할만한 수준은 못된다. 그 내력을 시시콜콜 확인하고 밝히려다 이것이 현재 우리 밥상이 처한 현실이다 싶어 관뒀다. 그래도 김치찌개 맛은 충분히 기대 이상이다.
 
참고로 '찌개'와 '찌게'를 두고 헷갈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를 잘못 표기한 식당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찌개'는 '찌다'의 동사 어간 '찌'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개'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모음조화 현상이 엄격했던 과거에는 '개'와 '게'를 구분하기도 했지만, 현대국어에서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는 '개'만 있다. 때문에 이제 더이상 김치찌게와 된장찌게라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메뉴:김치찌개(6천 원), 두루치기(7천 원)
▶주소:김해시 봉황동 409-4
▶연락처:055)332-3702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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