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를 든 여자아이는 논에서 일하는 아버지한테 새참을 갖다 드릴 참이다. 대나무 낚싯대를 든 두 개구쟁이는 마을 앞의 강을 향해 출동할 태세다. 호랑이를 피해 나무 위에 올라간 오라비와 누이동생은 얼마 후면 해님 달님이 될 테다. 책보를 둘러맨 남자아이는 황소 등에 올라탄 동무들을 만나 활짝 웃고 있다. 고운 옷 차려 입고 청사초롱을 든 귀여운 도련님과 애기씨는 어느 댁 귀한 자식일까.
한 세대 전만 해도 시골마을에서 늘 볼 수 있었던 정겨운 모습들이다. 그 그리운 시절이, 도자기 인형들을 통해 재현됐다. 웬만해서는 빛이 바래지 않을 것같다. 도예가 최경훈(48) 씨는 우리네 정서와 풍습을 담은 도자기 인형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의 작업장 '다듬공방'은 장유면 수가로 232에 있다.

다듬공방은 하얀 집이다. 하얀 집, 다듬공방에 들어서면 최경훈이 만든 정겨운 도자기 인형과 그릇들이 놓인 전시장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장 왼편이 작업공간이다. 최경훈은 이 집을 직접 설계했고, 인부들과 함께 집을 지었다. 다듬공방 자체가 그의 작품이다.
 

▲ 최경훈 도예가가 아들의 모습을 꼭 닮은 인형을 소개하고 있다

부산공예학교·동아대 조소과 졸업
직접 설계하고 만든 다듬공방
작가에겐 공간 자체가 작품

도자기 만드는 전체 과정
인형으로 만든 작품도
분청도자관에 전시


최경훈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누나와 형도 그림을 잘 그렸고, 사촌 누나는 화가이다. 그런 내림이 있어서였을까. 그는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넌 손재주가 있으니 공예과를 가는 게 좋겠다"고 누나들이 권했다고 한다.
 
누나들의 권유도 권유였지만, 최경훈은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을 생각해 부산공예학교 도자과로 진학했다. 1, 2학년 때는 도자기 작업을 열심히 했다. 그 시절 어머니가 몸이 아파 마음이 많이 쓰였는데, 도자기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이런저런 걱정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고 한다.
 

▲ 우물가에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한 인형.
그 시절에는 도자기로 인형을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3학년 선배 한 명이 "인형 잘 만드는데!"라며 최경훈의 도자기 인형에 관심을 보였다. 그 선배 역시 도자기 인형을 만들고 있던 터였다. 그 선배는 현재 김해에서 도자기 작업을 하고 있는 서만삼 씨다. 서만삼 씨는 2012년 대한민국공예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장인이다.
 
"선배님은 예전의 그 일을 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전 그때의 장면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최경훈은 그렇게 인형을 만들다가 3학년 때는 조소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전공은 도자였지만, 조소에 더 재미를 느꼈다.
 
부산공예학교를 마친 직후에는 군대를 다녀왔다. 대구에서 군생활을 하고 8월에 제대를 했는데, 그해에 동아대 조소과에 합격했다. 내신성적이 좋은 편이었고, 고교시절 내내 닦아둔 실기 솜씨가 한몫 단단히 했을 법한데, 그는 "다들 기적이라고 했어요"라며 쑥스러워 했다. 그는 "대학에서 조소를 하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조소는 철, 나무, 대리석… 안 다루는 소재가 거의 없으니까요."
 
대학 졸업 후 후배를 따라 한 공방에 놀러갔다가 그는 평생의 반려자이자 동료인 아내 윤혜숙(45) 씨를 만났다. 최경훈은 아내를 만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도자기 인형 역시 일반 도자기와 마찬가지로 흙이 중요하다. 어떤 흙을 쓰느냐에 따라 인형의 색, 정확히 말하면 피부색이 달라진다. 최경훈의 도자기 인형을 보면, 우리의 피부색과 똑같다. 이 색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적지 않은 세월을 바쳤다. 흙의 종류를 바꾸어 보고, 배합 비율을 달리하면서 수년간을 노력했다.
 
▲ 책보를 허리에 두른 아이들과 돼지 등에 올라탄 개구쟁이들의 모습이다.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색을 찾은 것은 김해에 와서였다. 2001년 풍유동에서 공방을 열었을 때였다. "흙의 종류나 배합비율에 따라 색이 어둡게 나오기도 하고, 밝게 나오기도 하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수년간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원하던 색을 찾았을 때의 기쁨,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그는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활짝 웃었다. 그는 그간의 노력 덕에 이제는 흙을 보기만 해도, 인형이 완성된 후 어떤 색으로 표현될지를 거의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거친 산청토(고온에서 변하지 않는, 내화도가 좋아서 특수한 용도의 조각 작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흙)를 사용해 인형을 만든다. 인형을 만들어 말린 다음 초벌구이를 한다. 부분적으로 유약을 바르고 재벌구이를 한 다음 채색을 한다. 인형은 그릇을 구울 때보다 더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1천280℃ 정도의 고온이다. 온도가 높지 않으면 인형이 덜 구워져 퍼석한 느낌이 든다.
 
도자기로 인형을 만들어내려면 조각, 회화, 도자기에 대한 지식과 실력을 겸비해야 한다. 이 세 분야가 접목이 되어야 제대로 작품이 만들어지는데, 오랜 경험을 통해 형성된 노하우는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2주에 한 번 꼴로 가마에 인형을 넣는데, 98%가 넘은 성공률을 보인다. 거의 실패작이 없다는 말이다.
 
오래된 가족사진첩 속 추억의 모습처럼
희미해져가는 옛 기억들이 '까르르~'
이 빼고 책보따리 허리 두른 아이들
돼지 등에 탄 개구쟁이들과 어머니 …
흙으로 빚고 불로 불어넣은 잔잔한 감동


그의 인형은, 오래된 가족사진첩에서 1960년대나 1970년대의 사진 한 장을 꺼내든 것처럼, 누군가를 닮았다. 중년세대라면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인형들 속에서 옛 친구를 찾아낼 수도 있고,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기도 하고, 희미해져가는 고향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그래 그때는 이랬었지. 새총으로 참새를 잡고, 여름이면 멱감으러 다니고, 논일 하는 어른들한테 막걸리 갖다 드리면서 홀짝거리기도 하고…"라며 저마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게 만드는 인형들이다.
 
▲ '이 빼기' 인형
그의 인형은 경기도 이천, 여주의 도자기 전문상가를 통해 전국으로 또 외국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몇 년 전 최경훈의 아버지가 치료를 위해 서울의 한 치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병원에 들어서던 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시고 간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치과에 최경훈의 인형이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이 첫눈에 단박 "경훈이 인형이다!"하고 알아본 그 인형은 '이 빼기' 시리즈였다. 명주실을 동생의 이에 걸어 당기고 있는 형, 울상을 짓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다. 치과에서 어떻게 이 인형을 구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참으로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 앉아 있는 셈이었다. 이 일은 최경훈의 가족을 한바탕 웃게도 만들었지만, 뿌듯하게도 했다. 이 치과에 들어서는 어린이들은 이 빼기 인형을 보면서 '치과공포증 그까짓 거' 하면서 용감하게 치료실로 들어설 것 같다. '이 빼기' 시리즈는 도자기 전문상가에서 주문이 많은 인기작이기도 하다.
 
▲ 아들의 모습을 닮은 인형.
인형을 만들 때 모델로 삼은 인물이 있느냐는 질문에 최경훈은 웃음부터 지었다. "모델로 삼은 인물은 없지만, 아이 인형을 만들고 있으면 자꾸 아들녀석 얼굴 모습이 나와요. 저 인형의 통통한 볼이, 딱 제 아들이에요. 어른 인형을 만들고 있으면 아버지 얼굴 모습이 나오구요."
 
그는 농악대가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농자천하지대본'으로 경남공예품대전에서 은상을 받았다. 크라운 해태제과에서 주최한 인형전에서는 '부라보콘'을 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12시에 만나요'로 은상을, 아이스바 '메로나'를 한 입 베어먹는 소년의 익살맞은 표정을 살려낸 작품으로 동상을 각각 받았다.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 또 하나 있다. 진례면 김해분청도자관에 가면, 도자기를 만드는 전 과정을 도자기 인형으로 만든 그의 디오라마 작품이 있다. "몇 년 전에 만든 작품이라, 현재 만들어내는 인형의 수준에 비하면 조금 미흡하다"고 그는 말하지만, 그래도 김해분청도자관의 여러 전시작품과 안내물들 중에서 이 디오라마는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
 
최경훈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인형들은, 가마에 들어가 차례대로 줄지어 선 채로 1천280℃ 불꽃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인형들을 통해 지난 시절의 풍경을 보여주는 다듬공방은 천천히 돌아볼수록 재미가 배가 된다. 금방이라도 남자아이 인형과 여자아이 인형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그래, 어쩌면 최경훈이 공방에서 퇴근을 하고 나면, 인형들은 살아 움직일지도 모른다. 소년들은 낚시하러 강으로 달려가고, 소녀는 아버지한테 참을 갖다드리고, 어린 오누이는 마침내 해님 달님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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