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움은 몰두하는 데 있다. 무언가 가치 있는 사실을 배우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새롭게 발견할 때는 춤을 추고 싶어질 만큼 기쁨이 솟구친다. 내가 현대시보다 고대가요 연구에 열심인 것은 한국 고대가요가 나를 몰두하게 할 만큼의 어떤 매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화를 연희적으로 구성시킨 굿판을 현용준은 성극의례라 부르고 있는데, 필자는 한국고대가요 가운데 공후인, 황조가, 서동요, 해가, 헌화가, 처용가는 극적인 대사, 극적인 플롯, 극적인 등장인물(백수광부, 사냥꾼, 선화공주, 수로부인, 견우노옹, 처용)이 있다는 점에서 성극의례에서 부르던 노래로 보고 있다. 향가가 장송의례에서 부르던 노래인 것처럼 한국 고대가요는 시조추모의례나 치병의례 등의 의례에서 부르던 노래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 고대가요는 연극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데, 특히 '가?'는 한국의 전통적인 명절놀이가 연극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보여주는 말이다. 한가위의 가위는 '가?'에서 나온 말이며, 이 '가?'가 무대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마지막 향가(만가, 제사노래, 상여소리)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도이장가(후백제 군사와의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의 목숨을 구하고 숨진 김락과 신숭겸 두 장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고려 예종의 노래)를 해석하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는 8월 15일에 술과 음식을 장만하고 온갖 놀이를 하던 풍습을 '嘉俳(가배)'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말 '가?'를 표기할 우리 글자가 없었기 때문에 한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소리만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비록 '嘉俳'라는 한자에 가려 '가?'가 무슨 뜻인지 그 원래의 의미를 잃고 말았지만, 신라 때부터 쓰던 말 '가?'는 한가위란 말을 통해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향가를 연구하던 필자가 고려가요까지 연구하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는 김제철의 소설 때문이다. 그의 소설 '그리운 청산'은 청산별곡이란 고려가요를 소재로 했는데 그 소설의 내용에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청산별곡을 연구하게 되었고, 청산별곡은 낙원을 찾아가는 샤만의 편력의 노래라는 것을 밝히게 되었다.

고려가요를 계속 연구하다 보니 고려가요는 민요가 아니라 궁정의 무속의례인 별기은에서 국가와 왕실의 태평성대를 빌던 굿노래였으며, 이 고려 궁정의 굿노래를 궁정의 잔치노래에서도 부르게 되었다는 뜻밖의 사실에 연구자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필자는 고려가요를 고려궁정잔치노래라 부르고 있으며, 이것은 이윤택 극본, 남미정 연출의 '아름다운 남자'란 연극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처용이 역신을 물리치는 무서운 신이면서도 사람을 웃기는 어릿광대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필자의 견해를 받아들여 처용춤을 새롭게 만들었고, 동동이란 노래를 궁정의 잔치노래로 부르기도 한 이 연극은 많은 상을 받았으며, 남미정의 연출 노트는 석사학위 논문으로 나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지난 몇 달 간 필자는 도요림에 머물면서 연희단 거리패의 연극작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은 연습, 연습, 연습, 공연, 공연의 문제점을 다시 고쳐 공연하는 것이었고, 도요에서 밀양, 부산, 서울, 진도, 일본을 오가면서 그들이 펼치는 연극 작업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국고대가요를 연구하는 가운데 얻을 수 있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던 그들의 눈부신 작업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것은 아쉽다. 지난 25년 동안 한국연극사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긴 연희단 거리패가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하면서, 나는 한국시학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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