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방식에 따라 담그고 정성을 쏟아 만든 간장과 된장이라야 올곧은 밥상의 근본이 된다. 지난 12일 산정에서 열린 장 담그기 체험행사에서 숯을 장독에 넣고 있는 장면. 사진/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상식과 현실이 따로 놀고 당연한 것이 특별한 것으로 둔갑하는 요지경 세상이다.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발효식품인 된장은 콩으로 만든 메주에 소금물을 넣고 발효시킨 다음 간장을 뜨고 남은 메주를 묵힌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상식일 뿐더러, 삼국시대에서 시작해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러 정착된 전통된장의 본 모습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인이 먹는 대부분의 된장은 이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밀과 대두(콩에서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주원료로 각종 첨가물이 가세한다. 콩·소금·물로만 만들던 된장에 잡다한 재료가 사용되는 것은 제조단가를 낮추고 제조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함이다. 이를 흔히 '공장된장'이라 부른다. 본질이 왜곡되니 맛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음식맛은 장맛'이라 했다. 밥상의 근간인 장맛이 흔들리니 음식맛인들 온전할까? 그렇다고 당장에 된장을 담가 먹자거나, 모든 가정에서 공장된장을 몰아내자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적어도 전통된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도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통된장이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전에!
 
지난 12일 구산동의 한정식전문점 '산정'에서는 30여 명의 주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담그기 체험행사가 개최됐다. 이날은 정월 그믐 '손 없는 날'로 장담그기에 더없는 적기였다. 음력 정월은 메주와 소금의 비율이 가장 알맞고 장맛이 좋다 하여 예로부터 '정월장'을 으뜸으로 쳤다. '손 없는 날'을 택한 것은 부정을 타지 말라는 의미이고, 그믐에 장을 담그면 달이 밝아 벌레들의 활동이 뜸해 장맛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년 혹은 그 이상을 두고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이기에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세밀하게 살폈다.


▲ 전통된장 담그는 순서
▶메주쑤기
된장을 만드는 데 있어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과정은 콩 삶기다. 가을에 수확한 콩을 깨끗이 씻어 하룻동안 불린 다음, 쎈 불에 1시간 정도 삶고 약한 불로 4시간 정도 뜸을 들인다. 이 과정에 콩이 설익거나 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삶은 콩은 절구로 찧거나 발로 밟아 으깨 네모난 모양의 메주를 만든다.

▶메주 띄우기
완성된 메주는 새끼줄을 꿰어 겨울 햇살에 30~40일 정도 말린 다음, 따뜻한 아랫목이나 발효실에서 재운다. 이를 메주띄우기라 한다. 이 과정에서 곰팡이들이 모인다. 곰팡이 가운데는 사람에게 이로운 곰팡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잡균도 있다. 하얀 곰팡이와 노란 곰팡이가 좋은 것이다.

▶세척과 소독
메주가 완성되고 장을 담그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장담그기 2~3일 전에 메주를 깨끗이 씻어 먼지와 잡균을 제거하고 이를 다시 말린다. 장독은 청솔가지나 볏짚, 한지 등을 태워 내부를 소독한다.

▶장담그기
장독에 메주를 차곡차곡 쌓은 다음 소금물을 붓는다. 소금은 천일염을 최소한 한 해 이상 묵혀 간수를 뺀 것을 사용한다. 메주가 잠길 정도의 소금물을 부은 다음에는 참숯과 붉은고추를 넣는다. 이는 인간에게 유해한 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살균작용과 더불어 잡귀를 물리치는 주술적인 의미도 있다.

▶발효와 숙성
장담그기가 끝나면 사람의 역할은 얼추 마무리되는 셈이다. 이제부터는 자연의 몫이다. 청명한 바람을 맞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장은 익어간다. 그래서 좋은 된장은 인간과 자연의 동업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은 볕 좋은 날 장독 뚜껑을 열어 장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살피면 된다.

▶장가르기
대략 40~60일 정도가 지나면 발효가 충분히 진행되어 소금물에 메주맛이 우러나니 이를 '장물'이라 한다. 이때를 맞춰 장물과 메주를 분리한다. 걸러진 장물이 바로 조선간장이고 남은 메주가 곧 된장이다. 햇된장을 바로 먹어도 되지만 한 해 정도 묵혀야 맛이 좋아진다.

▶1년 묵은 된장
이것이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된장이다. 발효와 숙성이 잘된 된장에서는 소금의 짠맛, 메주의 전분질에서 우러난 단맛, 그리고 콩단백질이 분해되어 나는 구수한 감칠맛이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것을 우리는 '곰삭은 맛'이라 한다.


개업 초기부터 발효음식 연구에 매진해 온 산정은 6년이 흐른 올해 비로소 작은 결실을 맺었다. 그 결과가, 공개된 장담그기 행사였다. 콩과 메주는 청정지역인 경남 산청에서 재배하고 띄웠고, 소금은 3년 전부터 별도의 소금창고에 보관해 간수를 뺐고, 물은 김해시로부터 식수적합 판정을 받은 지하수를 길어 사용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으니 다음은 자연의 몫이다. 1년 후 과연 어떤 맛으로 태어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지난 12일 담근 된장은 오는 6월 18일 장가르기를 할 예정이다. 이 과정 역시 공개로 진행하고, 장가르기를 하고 난 된장을 일반인들에게 분양도 할 예정이다. 문의 055)324-6600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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