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주 김해 출신 저명 인사들을 발굴해 '출향인 탐방'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리저리 수소문하다 보면 김해의 문화적 저력이 만만찮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거나 풍미하고 있는 김해 출신 문화·예술인들의 숫자가 의외로 많음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상당수의 경우 이미 고인이 돼 아쉽게도 인터뷰를 할 수 없지만 "아, 그 분이 김해 출신이구나", "김해 출신 중에 그런 대단한 분이 있구나" 하는 '발견'의 즐거움은 꽤나 큽니다.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정신적 고향은 김해이고 조선후기 유명한 기생이자 시인이었던 지재당 강담운, 판소리 명창 김녹주(1896~1923), '코주부'를 그린 김용환(1912~98) 화백, '백색회화'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김홍석(1935~93) 화백 등이 김해 출신임을 알았습니다.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이력도 만만찮습니다. 당대 최고의 문학평론가 김윤식(75) 전 서울대 교수, 분단문학의 대표 작가 김원일(69), 대표적 보수 논객 송복(74) 연세대 명예교수 등도 김해의 물과 공기를 마시고 자랐습니다. 국민배우의 반열에 오른 송강호(44)와 떠오르는 스타 연기자 이민기도 김해가 고향임을 알게 됐습니다. 김해의 문화·예술적 토양이 웅숭깊음을 방증하는 사례들이 아니겠습니까.

하긴 김해가 어떤 도시입니까. 가야문명의 발상지로서 수로왕릉, 구지봉, 봉황동유적 등 수많은 문화유적과 매장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곳입니다. 특히 국립김해박물관, 김해문화의전당,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등 문화 인프라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김해는 당연히 '문화도시'라고 불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외부 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보면 김해를 문화도시라고 부르는 데 주저함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가야문명의 발상지' 정도만 인정할 뿐, 문화와 예술이 흘러넘치는 도시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외려 난개발과 중소기업의 난립 등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합니다. 김해시민들이 느끼는 문화적 자긍심이 높으냐 하면, 결코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문화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해가 문화도시로 자리매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무엇보다 김해다운 콘텐츠(알맹이) 부족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이치입니다. 문화의전당을 예를 들면, 주로 서울에서 기획·제작된 콘서트와 뮤티컬 등이 공연됩니다. 지역의 정체성이 빠지다 보니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 어려운 것입니다.

콘텐츠 부족은 관 주도의 시 문화정책에서 비롯됩니다. 김해시는 많은 예산을 들여 소설 '제4의 제국'이나 드라마 '김수로' '가야사 2단계 사업' 등 각종 문화 이벤트를 추진해오고 있으나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보여주기식·일방적 정책을 펼친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정책에서 실패하기 쉬운 원인 중의 하나는 조급성입니다. 선출직 단체장은 뭔가를 빨리 해치워 시민들에게 과시하고, 많은 외지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설이 거창하다고 해서 관광객이 몰려오는 것은 아님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가장 김해다운 정체성을 확보해 김해시민들부터 자부심과 관심을 가질 때, 관광시설로서의 매력도 발산할 수 있는 법입니다. 이 같은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 전문가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김해시는 앞장서 지원은 하되 되도록 몸은 숨기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마침 김해생활포럼이 오는 27일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문화도시 김해'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난상토론을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