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원 부지 매각 무산 배경

불법의료행위와 수백억 원대의 보험사기 문제로 전국적인 파문을 불러일으킨 김해 J병원 사태로 인해 '김해에 대학병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계동 백병원 부지 활용 문제(김해뉴스 지난해 11월 21일자 1·3면 보도)가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됐다.

▲ 종합병원 설립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김해시와 인제대는 삼계동 백병원 부지 활용방안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삼계동 백병원 부지 전경.

인제대 "용도변경을 … 안되면 소송"
교육부 '9월 시한' 앞두고 대학 압박
시는 "대학측이 손해보지 않으려고만"
기존 백병원 건립 계획 추진 고집 속
모처럼 찾아온 해법 실마리 놓쳐

■ 대구한의대 한방병원 유치설
대구한의대가 한방병원을 건립하기 위해 삼계동 백병원 부지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은 몇 년 전부터 계속됐다. 그러나 설만 난무했을 뿐, '실체적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는데, <김해뉴스>가 김해시, 인제대, 대구한의대 관계자 등을 취재하고,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한 가야대의 입장을 확인한 결과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다.
 
대구한의대는 한방병원 건립을 위해 경남지역의 이곳 저곳을 알아보던 중 가야대 이상희 총장의 주선으로 삼계동 백병원 부지에 주목했다. 대구한의대는 몇 차례 김해시와 접촉해 부지를 142억 원에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이 가격은 인제대가 2003년 부지를 매입할 당시의 토지대금에 불과한 것이어서, 성사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인제대는 매각대금으로 200억 원대 후반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해시에서도 인제대에 대구한의대의 의사를 전달했지만, 인제대 측은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고, 결국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협상 테이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무산됐다.
 
이와 관련, 김해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시가 인제대와 대구대의 중간에서 적절한 절충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며 "만약 논의가 본격화 했더라면 부지 분할 매각 등 다양한 방안이 나와 백병원 부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 했다.
 
■ 인제대 '용도변경 안 되면 소송도…'
인제대는 이 문제와 관련해 '정확한 정보가 없었고 대구대 측의 직접적인 제안도 없었다'며 한발 물러나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동안 공청회 등을 통해 '매각시 차익이 발생하면 김해시민들에게 환원하겠다'고 공언해 온 터라서 인제대가 매각에는 손을 놓고 '용도변경'에만 급급해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인제대 관계자는 "학교와 재단에서 백병원 부지에 병원을 건립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만큼 최선의 해결책은 시가 용도를 변경하는 것"이라며 "삼계동 일대의 주민들도 병원이든 아파트든 어떻게든 해결되길 바라는 여론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교육과학기술부의 감사 결과, 백병원 부지를 오는 9월까지 매각하지 않으면 대학은 입학정원 축소와 정부 보조금 지급 중단 등 초유의 곤혹스런 사태를 맞게 된다"며 "최악의 경우, 학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김해시의 용도변경을 강제적으로 진행하는 절차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애초 설정된 병원부지를 다른 용도로 변경할 수는 없다. 이는 도시계획을 임의로 바꾸는 것이고,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온당하지 않다"며 "인제대는 금융비용 보전 등을 고집하며 전혀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고 있으며, 아파트 건설계획 등도 김해시에서 계획한 바는 없다. 인제대는 애초 김해시와 계약해 토지를 매입했던 그대로 백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인제대는 땅을 9월까지 처분해야 하고, 시는 현재로선 용도변경의 명분이 없기 때문에 이같은 대치 상황을 풀 해법은 없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해시 내부에서 '시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명분 없는 용도변경은 '특혜의혹'으로 비화할 수 있어서 시장으로서는 선뜻 나서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 시 매입 후 개발 의견도···주민들 '조속 개발' 촉구
전문가들은 백병원 부지가 애초 도입 취지는 좋았지만 중간에 인제대가 병원 건립 포기를 선언하면서 변질된 만큼 새로운 구도를 짜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를 위해 시와 인제대가 방관자적 입장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서울시가 '단군 이래 최대 공사'로 불린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 디폴트 사태가 발생하자 긴급 대책반을 꾸려 적극적으로 대처한 부분을 시와 대학이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시와 인제대가 백병원 부지 해법을 위한 공식적인 협의 채널조차 마련하지 않았고, 단 한 차례의 관련 용역도 실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양 측의 해결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백병원 부지 문제에 집중해 온 김해시의회 하선영 의원(새누리당·김해 가)은 "김해 J병원 사태로 인해 대학병원 유치를 희망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쇄도하고 있다"며 "삼계동 백병원 부지와 장유면 동아대병원 부지의 병원 건립이 사실상 무산된 것은 시의 서툰 행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 의원은 또 "김맹곤 시장이 대학을 설득해 병원을 짓든지 아니면 대학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부지를 환매해 다른 병원을 지을 수 있도록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만약 이 마저도 안 된다면 과거 시가 토지개발공사의 땅을 사들여 문화의전당을 지은 것처럼 시가 백병원 부지를 수용해, 시민이 원하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원 건립이 물 건너가고 매각 가능성마저 불투명해지면서 주민들의 인내도 한계에 다다랐다.
 
북부동백병원 부지대책위원회 오세호 위원장은 "백병원 부지 주변에 택지를 구입한 주민들은 17년간 금융이자를 내는 등 금전적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시는 인제대와 협상을 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주민들은 부지에 아파트가 들어오든, 병원이 들어오든 상관 없다. 용도변경을 하든지 해서 하루빨리 개발되길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문제가 장기화하면 주민들이 손해배상소송 등 법적대응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삼계동 백병원 부지
1996년 북부지구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 중이던 김해시가 인제대에 종합의료시설 용지로 3만 4천139㎡의 땅을 제공했다. 인제대는 2003년 부지를 매입했으나, 이후 병원 건립을 포기했다. 현재 시세는 3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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