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1박2일'을 비롯해 몇몇 프로그램에서 시골마을을 가끔 볼 수 있기에 우리는 시골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착각에 가깝다. 가끔씩 흥미로 보는 화면, 그것도 편집되어 방송하는 그 장면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KTX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는 동안 '우리마을 이야기'를 연재하며 비로소 시골마을을 향한 진정한 발걸음을 내딛었다는 강신재 씨는 시골의 삶을 도시 위주 삶에 덧붙여진 부록처럼 바라보았던 자신의 시선을 부끄러워하며 책을 펴냈다.

몇 년 전 메밀꽃이 한창 필 무렵 강원도 봉평에서 열린 축제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꽃이 핀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는데, 지정된 '포토존'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는 현지 주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진 찍겠다고 여기저기 밟아대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미처 모르고 있으니 대놓고 야단을 칠 수도 없다. 그 기억이 떠올라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부끄러웠다.

시골마을은 여행지 혹은 무한정 인정이 넘쳐나기만 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현대문명의 편리함이 부족하기에 더 치열한 삶의 무대이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기에 끝없는 기다림으로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아야 하는 인내의 현장이기도 하다.

여행책자도 넘쳐나고 전국 각지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시골마을을 소개한 책도 많지만, 강신재 씨의 '시골기행'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저자는 인천에서 직선거리로 1㎞ 거리지만 하루에 한번 연락선이 겨우 다니고, 그나마 선착장이 애먼 곳에 위치해 40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세어도에 다녀온 경험을 들려준다.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했을 때 취재를 위해 준비해 간 녹음기를 충전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그 충전지를 자꾸 빼버리더라는 거다. 꽂으면 빼고, 꽂아두면 또 빼고. 알고 보
▲ 하동재첩마을
니 세어도에 하루 종일 전기가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년이더란다. 이전에는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만 전기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주민들은 전기제품을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저자는 전기 불빛이 없어 밤하늘이 더 가깝고 별이 더 빛났으리라는 식의 거짓 감정을 쓰지 않았다. "마을엔 불빛 하나 없는데 요 앞으로 내려다보이는 영종대교 아치엔 불이 어찌 환하던지. 정말 암흑세계에서 신세계 바라보는 기분이었어"라는 현지 주민의 말을 들려준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골마을의 불편함만을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으로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낚을 수 없으니, 하늘과 바다와 산과 강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과 오랜 세월 간직해 온 지혜를 아낌없이 펼쳐 보인다. 바다의 색과 남새만으로 고기를 품고 있는 장소를 아는, 평생 땅보다 바다를 더 오래 딛고 살아왔을 늙은 어부의 삶. 자기들의 마을에서 생산해내는 산물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 하늘 보고 땅 보며 세월을 짐작하고 하루 종일 일하면서도 다만 자연이 준 것을 거둘 뿐이라는 겸손함들이 책갈피마다 가득하다.

전국 20곳의 시골마을을 소개한 이 책에서 김해 대동의 화훼마을을 만났을 때는 반가운 마음이 밀려들었다. 그 페이지를 펼치면 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와 함께 아는 사람 얼굴이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자연과 더불어 묵묵히 살아가는 시골마을 사람들 속에 자신을 놓아두어 보라고 말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어르신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삶의 지혜였음을 깨닫게 되는데, 그 또한 책이 주는 고마운 선물이다.

강신재 지음/ 갤리온/ 303p/ 14,000원







박현주 객원기자
북칼럼니스트,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