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민속박물관을 취재하면서 김해시와 김해문화원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 관계자는 "김해문화원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김해문화원 관계자는 "박물관을 운영할 인원과 예산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김해뉴스>는 김해민속박물관을 수 차례에 걸쳐 취재하며 시민과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김해민속박물관을 김해문화원에서 운영하기에는 벅차다. 박물관에 전문지식을 가진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시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김해민속박물관은 수로왕릉, 수릉원, 김해한옥체험관과 가까워 다양한 기획전시 등이 가능하지만 인력부족, 시설 미비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사진은 박물관 전경.

전문학예사 등 없어 박물관 미등록
소장자료 갖추고도 제역할 하지 못해

■ 박물관 아닌 박물관

수릉원 내에 위치한 김해민속박물관은 지역 민속유물을 보존하고 사라져가는 민속을 재발견하려는 목적으로 지난 2005년 10월 1일 개관했다. 연면적은 885㎡에 이르며, 소장자료 목록에 따르면 자료 1천288점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시설은 김해시 소유지만 김해문화원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사실 김해민속박물관에는 박물관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다. 등록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박물관으로 등록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과 그 시행령은 박물관 또는 미술관 등록요건을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전문박물관의 경우 자료를 100점 이상 보유해야 하고 학예사 1명 이상이 근무해야 한다. 100㎡ 이상 전시실이나 2천㎡ 이상 야외전시장, 그리고 수장고, 사무실 또는 연구실이 있어야 하고 자료실·도서실·강당 중 1개 시설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더해 화재·도난 방지시설, 온습도 조절장치를 갖추는 것도 필수조건이다. 제2종박물관의 경우는 다소 기준이 낮아 자료 60점 이상, 학예사 1명 이상에 82㎡ 이상 전시실과 수장고를 갖춰야 한다. 또 사무실이나 연구실·자료실·도서실·강당 중 1개 시설과 화재·도난 방지시설, 온습도 조절장치를 구비해야 한다.
 
눈치를 챘겠지만 박물관은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많은 자료를 가졌는지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유물과 소장자료를 얼마나 잘 보관하고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는지가 관건이다. 김해민속박물관의 경우 면적이나 소장자료는 요건을 갖췄고 화재 예방을 위한 스프링클러도 있지만 나머지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전문학예사가 없고 박물관으로 등록돼 있지 않은 탓에 적지 않은 소장자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공간 좁고 자료 분류 명확하지 않아
주제·시대별 전시 형태로 바꿔야

■ 부실한 소장자료 관리
김해민속박물관의 '민속자료전시실 목록'은 표지를 포함해 총 30장에 이른다. 지역 내 박물관 전문가는 이 목록을 보며 "부실하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름과 수량만 적혀 있는 목록으로는 자료를 관리도, 확인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목록에는 목수연장(문틀)이 7점 소장 중인 것으로 기재돼 있다. 사실 그 7점을 모두 사진으로 촬영해야 한다. 연장의 재질과 크기까지 기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해당자료를 확인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소장 목록으로는 주요 자료를 분실 혹은 도난당한 뒤에 비슷한 복제품으로 가져다 놔도 알 길이 없다"고 걱정스러워했다. 현재 김해민속박물관 내에는 도난 방지 기본시설인 CCTV도 없다.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집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찬 셈이다.

■ 보기에 불편한 전시

▲ 문법에 맞지 않은 글이 담긴 김해민속박물관 입구 동판은 박물관의 현실을 단적으로 대변해준다.
주말이면 전국 박물관을 찾아다닌다는 박물관 마니아 김문영(동상동·45) 씨는 "김해민속박물관은 생각보다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료를 전시하기에 공간이 너무 협소하고 자료의 분류가 명확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후기, 구한 말, 근대의 자료들이 시대나 주제 따라 뒤섞여 있다. 전시된 자료 사이 거리는 너무 좁아 좀 우습기도 하다. 무당의 신칼 옆에 마패를 놓아두는 건 어떤 시대·어떤 주제의 분류에 의해서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물관이 개관 한 뒤 3번이나 찾아갔다는 김 씨는 "처음에는 무척 신기해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고 이번이 3번째다. 소장 자료들이 수년 전 처음 봤던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며 실망했다. 다른 시민 박 모씨는 "자료마다 이름표를 달고 그 쓰임새를 설명해뒀으면 좋겠다. 40대인 나도 '저건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 하며 궁금한 자료가 있는데 젊은이들이나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알 수 있겠느냐"고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 씨는 "자료들을 촘촘히 진열하는 것보다 주제나 시대별로 전시를 바꾸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이에 대해 한 박물관 전문가는 "지금 인력 구조와 시설로는 꿈도 못 꿀 일"이라며 "수장고도 부족한데 전시하지 않는 소장 자료를 어디에 보관할 것이냐. 다른 박물관 관계자들이 와서 보면 승강기도 없이 자료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만 봐도 기겁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시 홈페이지 추천 관광지에서도 빠지고
내세울 프로그램도 없어 천덕꾸러기

■ 갈 만한 곳이 아니라고?
김해시 홈페이지에서 추천하고 있는 김해지역 '추천관광' 페이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부터 대성동고분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과 개인소유 한림민속박물관까지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김해민속박물관은 여기에서 빠져 있다. 박물관 마니아 김 씨는 "김해시가 김해민속박물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사례"라고 비꼬았다. 그는 김해민속박물관이 수로왕릉, 한옥체험관, 수릉원과 연결된 천혜의 박물관 요지에 서 있으면서도 더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 낄 곳 없는 왕따 박물관
이곳에는 민속놀이 체험 말고는 딱히 박물관 프로그램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인력부족으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상태로라면 다른 지역 박물관과 연계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기 힘들다. 박물관끼리 교환전시회를 열 때, 도난 방지시설이 없고 온습도 조절장치가 없는 시설에 자료를 보낼 박물관이 어디 있겠는가. 경남도는 올해를 '경남 민속문화의 해'로 선포했다. 경남도는 총 30억 원(국비 15억, 도비 15억 원) 예산을 들여 연말까지 33개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김해민속박물관이 이 사업에 낄 자리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시 - 문화원, 서로 책임 전가하기 바빠
전문인력 집단 운영체제 여론 높아져

■ 전문인력 집단에 맡겨야
<김해뉴스>와 함께 취재를 다닌 전문가와 시민들은 대부분 "김해문화원이 김해민속박물관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은 "문화는 많은 것을 품는 거대담론일 수도 있지만 박물관 운영은 다른 문제다. 집 지키는 역할을 맡는다면 몰라도 박물관을 활성화 하려면 전문인력 집단이 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박물관 시설과 운영 관리상 문제점이 많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소장 자료를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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