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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붓 터치에 마음을 빼앗기다⑦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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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1.02.15 15:45
  • 호수 11
  • 12면
  • 윤봉한 김해 윤봉한치과 원장(report@gimhaenews.co.kr)

   
▲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침실'(Bedroom in Arles·1888)
곰브리치였던가? 반 고흐는 인쇄물이 아니라 직접 보아야만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 게 그랬다. 원작을 눈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꿈틀거리는 마음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재능과 열정, 도전의 역정이 담긴 고흐의 흔적들로부터 삶의 위로를 얻는다.


   
▲ '클리치의 거리'(Boulevard de Clichy·1887)
1990년 5월. 뉴욕. 맨해튼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한 점이 8천25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우리 돈의 현재 가치로 1천억 원이 넘는, 미술품 경매 사상 가장 높은 가격이었다. 고흐가 이 소식을 들었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평생 궁핍했던 그를 생각하면 자꾸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아무튼. 일본인 부호에게 8천250만 달러에 팔린 '가셰박사의 초상'은 크리스티의 경매가 있던 시간으로부터 정확하게 100년 전에 그린 그림이다. 어쩌면 가난 때문에 동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자살하기 불과 몇 주 전. 1890년 5월에.

아침 일찍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했다. 스위스 바젤에서 밤기차를 탔다. 나로서는 바젤에서의 밤기차가 처음이 아니다. 오래 전 바젤에서 파리 가는 밤기차를 탔었다. 금요일 저녁이라 주말 나들이 젊은이들로 가득 차, 출근길 지하철 같이 붐비던, 한 번도 앉지 못하고 바젤에서 파리까지 밤새 서서 갔던, 악몽 같은, 밤기차였다. 그해 1990년. 가을이었다. 나의 첫 유럽여행이었고, 빈센트 반 고흐를 파리에서 그때 처음 만났다. 오래 전부터 오르세 미술관에 가는 꿈을 꾸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어린 시절 동네 이발소에는 '만종'과 '이삭 줍는 사람들' 그림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밀레의 그림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직접 보고 싶었다. 마침 서울 올림픽 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고, 그림이 있다는 오르세 미술관에 갔다.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파 전후 그림의 최대 미술관이다. 거기서 밀레도 보고 고흐도 보았다. 밀레를 좋아했지만 사실 고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그의 생애 때문에 오히려 그림보다 과대 포장된 화가일 거란 편견이 있었다. 그리고 도록에서 본 좀(?) 그렇고 그래 보이는 반 고흐의 그림들도 그런 부정적 선입견에 한몫 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곰브리치였던가? 반 고흐는 인쇄물이 아니라 직접 보아야만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미세하게 붓 지나간 흔적들, 그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원작을 눈앞에 두었을 때 비로소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고. 그랬다. 나도. 밀레에겐 미안하지만. 막상 만나 보니 고흐가 더 좋아졌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전경
암스테르담도 파리 못지 않은 젊은이들의 도시다. 어쩌면 네덜란드 자체가 그럴지도 모른다. 알려졌 듯. 일부 마약이 합법적이고, 심지어 우리나라에선 생각도 못할 적극적 안락사까지 허용되고 있는 나라다. 아무튼. 빈센트가 늘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손꼽았던 렘브란트와 할스가 있는 국립미술관 근처. 반 고흐 미술관으로 갔다.

1890년 37세의 나이로 빈센트가 생을 마감하고, 그 후 6개월 뒤 후견인이었던 동생 테오도 세상을 떠났을 때. 빈센트의 그림은 테오의 부인 요한나를 거쳐 아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반 고흐에게는 조카가 되는, 그와
   
▲ '일본풍-오이란'(일본여인·Japonaiserie-Oiran·1887)
똑같은 이름을 가진 빈센트 반 고흐는 '빈센트 반 고흐 재단'을 설립한 뒤 모든 작품을 국가에 넘겼다. 1962년 일이다. 반 고흐의 유화 200여점, 데생 500여점. 그리고 반 고흐의 작품 외에도 반 고흐 형제가 소장하고 있던 고갱이나 툴루즈 로트렉 등의 작품, 일본 판화, 편지 700여통이 함께였다. 그리하여 네덜란드 건축가 게리트 리트벨트에 의해 설계된 반 고흐 미술관이 1973년 개관했다. 그 뒤 1999년 일본인 건축가 기쇼 구로가와가 설계한 특별전시동이 들어섰다. 이번엔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를 소유하고 있는 일본 기업 야스다 보험의 협찬이었다.

미술관이다. 2층. 슬픔의 우물처럼 깊고 어두운 초기의 그림 사이로 눈에 익은 작품. 밀레를 좋아했던 고흐가 밀레의 농부들을 생각하며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과 '성서가 있는 정물'이 보인다. '성서가 있는 정물' 옆에는 모델이 된 성서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쓰던 성서다. 파리에서 그린, 그러나 여전히 예전처럼 어두운 색이 남아 있는 '구두'(1886년작)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일본 말소리가 크게 들린다. '일본 여인'(에이센의 작품 모사)과 '빗속의 다리'(히로시게의 작품 모사) 앞이다. 파리에 오기 전부터 일본 판화(특히 우키요에)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을 했던 빈센트가 일본 판화를 보고 모사한 그림들이다. 반 고흐 미술관에는 빈센트가 그린 여러 점의 일본 판화 모사품이 전시되어 있고, 3층에는 아예 반 고흐 형제들이 모은 일본판화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일본인들이 유독 고흐를 좋아하고, 반 고흐미술관에 유독 일본인들이 많은 이유다.

   
▲ '해바라기'(Sunflowers·1888)
1888년 2월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작은 마을 아를로 향한 빈센트는 초인적인 열정과 집중력으로 200여점의 유화와 100여점의 스케치와 수채화를 그려낸다. '노란 집'은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하던 그의 소망이 담긴 듯 따뜻한, '해바라기'를 그리며 고갱과 함께 지낸 집이기도 하다. 그리고 '침실'. 그 노란집의 빈센트 방이다. "이번에는 내 침실을 그리기로 했다. 색을 단순화시켜 명암과 그림자는 없애버리고 일본 판화처럼 자유롭고 평평하게 색을 칠하려고 한다. 색채로 휴식 또는 수면을 암시할 수 있을 거야."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그런데 '침실' 그림이 낯익다. 그렇다. 오래전 파리에서 보았다. 오르세 미술관에도 같은 그림이 있다.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시절 테오의 부탁으로 노란 집에서의 행복했던 시절을 상기시켜주는 '침실'을 같은 구도로 2점 더 그린 탓이다. 이제. 자살하기 직전의 마지막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본다. 노란 밀밭과 그 사이로 난 오솔길. 먹구름이 몰려오듯 어두운 하늘. 그리고 불길해 보이는 까마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오히려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미 그의 죽음을 알고 있는 관람객들에게 그림 속 풍경들은 비극적 죽음의 이미지로 읽힌다. 아닌 줄 알면서도 37세의 나이로 자신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빈센트의 리볼버 권총의 날카로운 총성이 울린 곳을 저도 모르게 밀밭 이곳저곳에서 찾게 된다.

   
▲ 고흐를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최초의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Potato Eaters·1885)
반 고흐 미술관의 관람객 수는 연간 1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단일 화가의 미술관으로는 세계 최대 수준이다.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피카소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파리 피카소 미술관이 매년 50만 명 정도인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미술관을 나왔다. 이제 젊은 여행자들은 맥아향을 따라 하이네켄 박물관을 찾거나, 호기심에 마리화나를 피우는 커피숍을 둘러보거나, 중앙역 근처의 홍등가를 일 없이 어슬렁거
   
▲ '성경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Bible·1885)
릴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들 대부분은 피카소처럼 타고난 천재가 아니다. 피카소가 그가 가진 천재성으로 쉽게 예술적 정점에 도달했다면 고흐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걸음 한걸음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갔다. 차이가 분명하다. 그 분명한 차이가 어쩌면 고흐를 고흐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재능을 인정받지 못해도, 몰이해와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줄 모르고 도전적이고 열정적이었던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이 위로를 준다. 피카소의 그림과 달리,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유다.

아참! 1990년 일본인 사이토가 천문학적인 돈으로 경매 받은 '가셰박사의 초상'은 개인의 깊은 수장고에 들어가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일반인이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흐가 직접 복제해 가셰에게 선물했던 또 다른 '가셰박사의 초상'이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파리에 가면 누구나 볼 수 있다. 정말 다행이다.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
네덜란드 출신의 후기 인상파 화가. 강렬한 색채와 힘 있는 필치의 독특한 표현 기법은 20세기 초의 야수파 화가들에게 새로운 지표가 되었다. 40여점의 자화상 외에도 '감자 먹는 사람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노란 집' 등 많은 유명 작품이 있다.




   
 
■ 반고흐미술관 (Van Gogh Museum) ─────
·주소:Paulus Potterstraat 7 Amsterdam
·전화:+31 (0)20 570 5200
·팩스:+31 (0)20 570 5222
·가는 방법:미술관 광장(Museumplein) 국립미술관과 시립 미술관 사이에 있다.
·특징:유럽 전체 미술관들 중 가장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미술관 중 하나.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미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고흐의 사망 이후에 동생인 테오도르 반 고흐가 소장하고 있던 고흐의 그림을 기증받아 개관되었다. 고흐의 회화 200여 점, 데생 500여 점뿐만이 아니라 고흐의 자필 편지들, 그리고 동시대 화가들의 작품 600점들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감자 먹는 사람들' '자화상' '침실' '해바라기' 등이 있다.
http://www.vangoghmuseum.nl/vgm/index.jsp?lang=nl


■ 여행팁 - 세계적 명품 수변도시 암스테르담 ─────
오래된 무역항으로 밝고 개방적인 도시다. 시의 중심은 여러 개의 운하로 둘러싸인 부채꼴 모양.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의 집과 렘브란트(1639∼1658 거주)의 집이 보존돼 있으며 미술관으로는 반 고흐미술관 외, 국립미술관과 시립미술관이 유명하다. 암스테르담은 특히 젊은 관광객이 넘쳐나는 도시. 일부 마약이 합법인 관계로 시내 도처에서 약에 취해 약간 맛이 간 친구들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치안이 좋고 사고가 없어 저녁 외출에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윤봉한 김해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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