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없으면 식물은 성장할 수 없다. 흙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물과 공기만큼 중요한 것이다.
 
흙은 인류가 촌락을 이루며 살기 시작한 1만 년 전부터 주거공간을 위한 주된 재료였다. 인류는 생활필수품인 그릇을 흙으로 만들었고, 염원과 기원을 담아 신과 인간의 형상을 한 토우도 빚었다. 흙으로 빚고 불로 구워낸 그릇과 토우, 지붕을 장식한 기와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해 준다. 또한 오늘날 도자예술의 기원이기도 하다. 흙을 통해 더 아름답게, 더 견고하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는 도자예술을 꽃피웠다. 진례면 송정리 358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이하 클레이아크). 이 이름에는 흙에 대한 순연한 마음이 담겨 있다. 클레이아크(clayarch)는 클레이(clay. 점토, 찰흙)와 아키텍처(architecture. 건축, 건축양식)의 합성어이다. 클레이아크는 도자예술품의 전시 공간이면서, 작가들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입주작가들의 작업공간이자 생활공간인 클레이아크 세라믹창작센터(이하 창작센터)를 찾아가 보았다.
 

▲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주차장 끝에서 왼편 언덕으로 올라가면 보이는 세라믹창작센터. 박정훈 객원기자 poonglyu@naver.com

클레이아크는 건축도자 전문미술관으로, 2006년 3월 24일 개관했다. 창작센터는 국내 유일의 세라믹 전문 창작스튜디오이다.
 
창작센터는 2006년, 연수관으로 문을 열었다. 매년 한 차례씩 작가들을 초청해 단기 워크숍을 개최하다가, 2010년부터 본격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건축, 도예, 회화, 조각 등 여러 분야의 시각 예술가에게 건축도자 또는 도예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정된 공간과 편리한 여건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매년 초, 심사를 거쳐 10명 내외의 입주작가를 선정한다. 입주 작가들은 창작센터에 1년 여 머물며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연말에 전시회를 가진다. 이 전시회 때 창작센터도 일반에 공개한다. '오픈 스튜디오'를 열어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보여주고, 작가 아트마켓도 연다.

▲ 여선구 작가의 작품.

2006년 연수관 문 열어 워크숍 진행
4년 뒤 본격 작가 상주 프로그램 운영
매년 참가자 10여명 선정해 전격 지원
국내 유일 세라믹 전문 창작스튜디오

■ 작품 완성을 위한 소성실 - 유약작업·굽기로 작품 태어나는 공간
창작센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소성실이 보인다. 창작센터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작가들이 흙으로 만든 조형물은 유약작업을 한 뒤, 가마에서 구워내야 비로소 작품으로서 완결성을 갖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저마다 사용하는 유약도 다르고 흙도 다르다. 그래서 작가들마다, 또 작품들마다 소성 온도가 다르고 소성 방법도 다양하다. 이처럼 창작센터는 작가들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이지만, 야외공간과 연결된 창작센터 2층 데크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1층의 소성실을 들여다볼 수 있다.
 
▲ (맨위)세라믹창작센터 2층 데크에서 바라본 소성실. (가운데)작가들의 숙소. (맨아래)작가들의 작업 공간.
227㎡의 공간에 가스가마 2대, 전기가마 3대, 시유용 스프레이부스(유약을 도포하는 작업시설), 개수대가 있다. 4루베(루베는 가마 안의 열판의 크기로 결정되는데, 숫자가 클수록 가마도 크다)·2루베 크기의 가스가마는 산화·환원 소성이 가능하고, 전기가마는 환원 소성만 된다.
 
산화 소성은 소성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산소를 충분히 공급해 사용 연료가 완전 연소될 수 있도록 하는 소성방법이다. 환원 소성은 가마 안의 산소공급이 불충분하도록 해 사용연료를 불완전 연소시키는 소성방법이다. 이 두 방법은 작품에 쓰이는 유약에 따라 구분해 사용한다. 백자를 환원 소성하면 우유 색의 작품이, 산화 소성을 하면 옅은 노랑에 가까운 색이 나온다.

■ 공용스튜디오, 비슷하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업공간 - 작가별 개성과 작품 고민의 산실
작가들이 작업을 하는 공용스튜디오. 1층 328㎡ 공간은 7명의 장기 입주작가들이, 2층 107㎡ 공간은 단기 입주작가들이 사용한다. 1층 공용스튜디오를 사용하는 작가들은 각각 가로×세로 8m의 공간 안에서 작업을 한다. 벽 쪽의 공간, 창가 쪽의 공간 중 어디를 사용할지는 입주할 때 '제비뽑기로 공평하게' 결정한다. 면적도 같고, 작업대와 의자 등 기본시설이 같지만, 그 작은 면적은 작가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자그마한 공장 같은 작업장도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작업장도 있다. 작가의 개성이 은연 중 드러나는 것이다. 작가에게 주어진 공간면적은 국내의 다른 창작공간(레지던시 기관)에 비해 좁은 편이다. 그러나 시설과 기자재가 풍부해 사실상 가장 넓은 공간을 사용하는 셈이다. 국내는 물론 국외의 작가들에게 클레이아크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 목·철공실? - 재단기·절단기·드릴 … 별별 도구들
창작센터에는 목·철공실(66㎡)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여긴 어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작품에 따라 작가들이 목공이나 철공작업을 할 때가 있는데, 그 작업을 위해 별별 도구들이 다 준비돼 있다. 재단기, 각도절단기, 연마기, 에어건, 전기드릴, 이동식공기압축기, 사포, 톱, 줄자, 니퍼, 드라이버, 망치, 밴더쇼, 타카, 드릴 프레스…. 이름도 사용법도 낯선 기구들이 잘 분류되어 있다. 용접기와 용접마스크도 보인다. '닦고, 조이고'라는 구호만 안 붙어 있지, 실제로는 공장 같은 공간이다. 위험한 물건들이 많아 작가들이 이곳을 사용할 때는 창작센터의 테크니션 이병철 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 한 작가가 1층 공용스튜디오의 작업대에 앉아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 마술의 공간, 실험실 - 수천가지 유약 안료 제조 … 공동연구도
실험실(97㎡)은 작가들이 유약안료를 만들어내는 마술의 공간이다. 실험실에서는 작가들이 자기만의 유약이나 흙을 실험해 볼 수 있다.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 유약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합해 소량으로 제작하고 실험해 보는 공간이다. 소량 제작한 유약으로 초벌, 재벌 작업을 한 뒤 본 작업에 적용하는 것이다. 실험을 위한 전자저울, 진공토련기, 롤러분쇄기, 점토혼합기, 전기믹서기, 유발기 등이 있다. 이 작업 역시 위험하기 때문에 작가들은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다.
 
▲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돕고 있는 김승택 매니저(왼쪽)와 이병철 테크니션.
유약재료들의 이름을 잠깐 살펴보자. 산화당, 벤토나이트, 프리트, 산화티타늄…. 이름표가 부착된 크고 작은 용기들이 끝도 없다. 이 재료들을 배합해 작가들은 수천가지의 유약안료를 만들어낸다. 작가들의 연구결과에 따라 그 레시피가 다 다르다. 유약안료 레시피는 작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비밀 데이터이지만, 그 레시피를 공개하는 작가도 있다. 공개된 레시피는 다른 작가들과 공유할 수 있다. 공유를 통해 또 다른 결과를 도출하는 공동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창작센터에는 공개된 레시피 데이터들이 차곡차곡 축적되고 있다. 축적된 데이터 자체가 창작센터의 지적 재산이기도 하다. 이 데이터들은 국내 도자작가들을 지원·육성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1인·2인실 … 아이디어가 자라는 '쉼표'


■ 일상생활 공간
창작센터에 입주한 작가들은 직접 밥을 해먹는다. 식당 겸 주방 공간은 97㎡. 정수기, 식탁, 의자, 냉장고, 냉동고, 조리대, 전기밥솥, 개수대 등이 있다. 냉장고 안에는 작가의 이름표가 붙은 음식 용기들이 가지런히 들어 있다. 주방 한 쪽에는 평소 자주 쓰는 각자의 기본양념들이 역시 한 칸씩 자리를 차지했다. 섞일 염려는 없겠다. 당번을 정해 청소도 늘 깨끗이 하고 있다.
 
채소를 직접 길러먹는 작가도 있다. 상추, 부추, 토마토, 가지, 고추, 파프리카, 오이를 칸칸이 나누어 심은 상자는 마치 작은 농장 같다. 식물을 기르는 재미도 얻고, 식재료를 함께 얻겠다는 작가의 아이디어는 오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쏠쏠한 재미도 선사하고 있다.
 
1인실과 2인실로 나뉜 작가들의 숙소는 그야말로 사적 공간이라 문을 열고 들어가 볼 수가 없다. 대신 창작센터에서 초청한 단기작가 여선구(현재 미국 조지아대학교에 재직 중) 씨의 숙소를 살짝 엿본다. 여선구 작가는 대학이 강의 중이라 현재 창작센터에 없다. 침대, 옷장 등 기본적인 시설이 제공되는데, 간결하고 산뜻해 보인다.

■ 작가들의 휴식, 그리고 소통의 공간

▲ 세라믹창작센터 엘리베이터 안에 부착된 안내판.
창작센터 3층에 있는 휴게소는 작가들이 휴식을 취하고, 소통을 위해 모이기도 하는 공간이다. TV와 빔프로젝트가 있다. 영화도 보고 프레젠테이션도 한다. 벽에는 작가의 스케줄, 소성실과 실험실의 사용 일정, 미술관 전시 일정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일정표가 붙어 있다.

■ 개인 작업실에서는 불가능한 작업이 가능한 창작센터
창작센터의 전반적인 진행은 매니저 김승택 씨가, 작가들에 대한 작업 지원은 이병철 씨가 맡고 있다. 국내외 작가들이 새로운 공간과 환경, 낯선 사람들에게 적응하며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이병철 씨는 창작센터 안의 시설과 기자재를 작가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이 있어 창작센터에 입주한 작가들은 개인작업실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작업과 실험적 시도를 해볼 수 있다.
 
클레이아크로서도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중요하다. 국내외 주요작가의 전시회를 개최하려면 작품 운송비와 초청비 등 만만찮은 경비가 드는데, 창작센터에서 생산된 작품을 전시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또한 입주작가가 참여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다. 지역의 청소년들, 다문화가정과 저소득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물론 성인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역문화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 잠시 틈을 내 소성실 가스가마 앞에 모인 입주작가들.

>> 입주작가들이 말하는 창작센터
▶이윤희-무엇보다도 이곳은 온전히 작업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김영현-나와 다른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만나서 나의 작업세계관이 넓어졌다
▶박성극-시골이라 공기도 좋고 작업실 공간도 넓어서 작업하기에 좋은 곳이다.
▶정혜숙-다양한 장르의 작가들과의 교류는 새로운 에너지가 된다
▶윤영문-다양한 시설과 설비, 미술관의 전폭적인 지지로 자유로이 작업에만 집중 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인상적이다
▶양주희-잘 몰랐던 부분들도 경험할 수 있어 좋고 좋은 작가들과 만나게 되어 기쁘다
▶손진희-삶과 상상, 그리고 창작이 살아 숨 쉬는 곳
▶김남현-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과 클레이아크 측에 감사드린다.
▶임지혁-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창작의 공간이며, 여러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의 폭을 넓혀갈 수 있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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