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면 장유리 모산마을에 살고 있는 최진영(55) 씨는 1급 중증장애인이다. 건축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그는 2000년 8월 땅이 무너지는 바람에 차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장마철이라 조상의 묘가 걱정돼 살펴본 뒤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병원에서 눈을 떠보니 목과 얼굴만 움직일 뿐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고로 인해 경추가 끊어진 것이었다.
 
장마철 땅 무너지며 자동차 전복 사고
경추 끊어져 13년간 침대생활 지속
"하늘을 참 많이 원망하며 지냈지만 생명력 끈질긴 질경이처럼 일어섰어요"
모산마을 '놀부' '인기남'으로 통하며 주민들에게 '희망의 불씨' 같은 존재


▲ 1급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최진영 씨.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도 귀감이 될 정도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제가 장애인이 될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안 움직이니까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더군요. 그땐 하늘을 참 많이 원망했죠."
 
최 씨는 침대 위에서 13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일도 그에겐 큰마음을 먹어야 할 정도로 쉽지 않았다. 요즘 그는 침대에 엎드린 상태에서 팔꿈치로 상반신을 지탱한 채 생활하고 있다. 꼬리뼈 부근에 욕창이 생겼기 때문이다. 혹시 욕창이 더 심해질까 싶어 그는 몇 년 째 엎드려 잠을 잔다.
 
체중을 팔꿈치에 계속 싣는 바람에 요즘엔 팔꿈치 연골마저 성치 않다. 몸이 불편하면 마음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 씨는 다른 장애인들은 물론 몸이 성한 사람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산다.
 
"질경이라는 식물을 아시나요? 생명력이 아주 끈질긴 녀석이죠. 차와 사람이 밟고 지나가도 다음날이면 다시 일어나 있습니다. 장애인이 된 이후 저는 질경이처럼 살고 있습니다. 몸은 불편할지라도 정신만큼은 누구보다 바르고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평생 누워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질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잘 참아왔으니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최 씨의 집 곳곳을 둘러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마당 정원에는 꽃이 가득 피어 있고, 정원 중앙의 작은 연못에는 비단잉어가 살고 있다. 그의 방에도 파릇파릇한 식물이 가득하다. 벽에 걸린 TV에서는 마당의 풍경이 나오고 있다. "카메라를 설치해서 방안에서도 TV를 통해 정원을 볼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몸이 불편한 제가 정원을 꾸밀 순 없죠. 우리 집 '앵무새'가 이렇게 꾸며놓은 것이랍니다."
 
그가 말하는 앵무새는 10년 동안 그를 돌보고 있는 장애인도우미 김미영(48·여·가명) 씨다. 최 씨 곁에서 손발이 되어 주고 있는 김 씨는 최 씨에게는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김 씨는 "애칭을 지어 부를 만큼 재미 있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최 씨가 좋아 오랫동안 그를 돌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최 씨를 '모산마을 놀부'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애칭이다.
 
▲ 잘 가꿔놓은 식물들이 가득한 최 씨의 정원.
최 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김 씨 뿐만이 아니다. 최 씨는 모산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남'으로 통한다. 매일 낮이면 그의 집은 마을회관이 된다. 최 씨를 만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방안이 북적일 때도 많습니다. 이웃주민들이 찾아오면 김 씨는 항상 따뜻한 차와 밥을 대접하고 저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죠. 저희 집을 찾는 손님들은 저와 이야기를 나누면 힘이 난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마을주민들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매일 저녁 같이 TV를 보자며 찾아오는 이웃 아주머니, 7년 동안 매일 방문하는 부부 등은 최 씨에겐 희망이며 재산이다. "제가 마음을 여니까 사람이 찾아오더군요. 집을 이렇게 꾸민 것도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보러 오시는 손님들 덕분에 잠시나마 장애를 잊습니다. 내일 찾아올 손님들이 기다려지네요. 많은 장애인들이 저처럼 마음을 열고 주변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창살 없는 감옥>

날개 잃은 철새 최 진 영

3평 남짓 어두컴컴한 방안
날개 잃은 철새가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구나
아무리 몸부림 쳐봐도 감옥문은 열릴 기척이 없네
간절히 무죄를 기다리는 죄인처럼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된 눈빛만이 허공을 헤엄치네
우루룩 우루룩 와다다다다다!
밤마다 천장의 쥐생원들의 축구경기 소리에 잠을 설치고
경련이 한 번씩 일어날 때마다 뱃가죽까지 땡기면
숨이 멎는 것 같은 고통이 따른다
아! 이래서 사람이 죽는가 보구나
째깍째깍!
공간을 메우는 시계소리에
내 심장은 더욱 쪼여 온다
독방 감옥살이 13년
속죄를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죽음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발버둥 칠 수록 죄의 무게는 더욱 늘어만 가고
단조로운 일상에 숨이 막힌다
자연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갈수록 그리워 지는건
사랑한다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나 보냈구나
이 못난 죄인 철 드니 효도할 길 없고
매일매일 혼돈속에 가족들의 얼굴이 더 더욱 그리워지네
내 아내 내 새끼들의 모습을 상상속에 그리며
5% 남짓 자유가 허락된 1평 침대에서
이승과 저승 경계선에 선 채
오들도 눈물 없는 눈물로 긴긴 하루를 보낸다
1년 365일 8760시간 525,600분 31,536,000초,,,

<하얀 목련>

날개 잃은 철새 최 진 영

살랑살랑 봄바람이 내 가슴에 집을 짓네
앞뜰에 핀 하이얀 목련이 나를 보고 미소지며
한겹 한겹 벗으며 백옥 같은 살결을 드러낸 채
우아한 손짓으로 유혹하네
내 마음 두근두근
옛 여인 순이가 그립구나
철없던 시절 내 사랑이 그대에겐 짐이 되어 미안하오
황혼녘에 비로소 님의 소중함을 알았네
목련꽃의 피고 짐이 우리의 모습과 참 닮았소
추억 속의 그대가
한 번 쯤 나를 기억해 주면 좋겠구려
먼 훗날 목련 꽃 피는 화창한 봄날에
활짝 웃는 님의 얼굴이
내 생의 마지막 장면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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