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지역 한 축산농가의 살처분 매몰지 현장. 흙을 제대로 덮지 않아 살처분된 가축들의 사체가 그대로 노출돼 마을 일대에 악취를 발생시키고 있다.
13일 오후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는 폭풍이라도 쓸고 지나간 듯 적막했다. 평소 돼지 울음소리와 분뇨 냄새로 가득 찼던 마을은 유령도시를 방불케 했다. 축사는 텅 비었고, 마을에 있는 길이란 길은 모두 하얀 생석회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텅빈 축사와 11곳이나 되는 돼지 매몰지만이 한 때 이곳이 김해의 대표적 양돈지역이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마을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것은 곳곳에 만들어진 돼지 매몰지였다. 이전 밭과 산이었던 곳은 돼지를 묻고 난 후 충분한 성토를 마치지 못해 웅덩이처럼 움푹 패여 있었다. 돼지 사체가 썩으면서 발생하는 침출수가 지하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깔아놓은 비닐은 흙더미 위로 삐죽삐죽 솟아나와 있었다. 매몰지 주변은 마치 강력사건 현장이라도 되는 듯 '접근 금지' 선이 둘러쳐 있었다.
 
지난 1월 24일 마을의 한 농가에서 도내 첫 구제역이 발생한 후 한 달도 안 돼 마을이 쑥대밭이 돼버린 것이다. 그동안 원지리에서만 13개 농가에서 돼지 2만여 마리를 땅에 묻었다. 최초로 구제역이 발생한 한 농가 앞에서 만난 심모 씨는 "마을에 그 많던 돼지들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면서 "좋았던 마을 인심이 흉흉해졌는데 우리 마을에서 처음 구제역이 발생해 미안한 마음이다"며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같은 날 주촌면 선지리. 김해에서 구제역 한우가 처음 신고된 곳이다. 이 곳 역시 하얀 생석회로 뒤덮인 마을길을 오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당국의 이동 제한 조치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주민들이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집밖 출입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게 닫힌 대문 앞마다 세워진 '출입금지' 푯말이 박혀 있었다.
 
키우던 한우를 모두 살처분한 박모 씨는 "벌써 20여 일 넘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면서 "아이들 졸업식에도 못 가게 하고 주민들 발만 꽁꽁 묶어 놓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주민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제역이 언제 잠잠해질지 몰라 유일한 생계 수단인 축산 일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돼지 3천여 마리를 살처분한 전모 씨는 "자식 같던 돼지들을 다 죽이고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인데 언제 다시 입식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축산업을 그만두자니 할 일이 없고, 맨땅에 다시 시작하자니 또 이런 일을 겪을까 봐 불안하고 막막하기만 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주촌·한림면 지역 발생지 일대 매몰지
곳곳 사체 썩는 악취 진동, 해빙기 침출수 유출 오염 우려
"그 많던 돼지 한 마리도 안 남아" 축산농가 "그만둬야 하나" 불안

경남 최대 돼지 밀집 지역인 김해시 한림면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주촌면 보다 뒤늦게 구제역이 발생했지만 워낙 돼지 사육 농가가 밀집해 있어 당국의 방역 작업을 무색케 하며 구제역이 확산되고 있다.
 
한림면 안곡리로 들어서자 너비 5m가량의 하천과 하천을 따라 설치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돈농장 축사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이미 모든 가축을 살처분한 농가는 사람마저 떠나 정적만 감돌았고, 아직 가축을 키우는 농가는 분뇨를 처리하지 못해 악취가 코를 찔렀다.
 
구제역도 구제역이지만 주민들을 더욱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급하게 진행된 매몰 작업이다. 마을 들머리 하천변에는 김해시가 설치한 '상습침수지역 호우시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한 축산 농가는 돼지 1천여 마리를 하천과 맞닿은 농장 마당에 매몰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하천이 범람하면 침출수가 아니라 아예 파묻힌 돼지들이 한꺼번에 유출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를리 없다. 이곳 농장주 김모 씨는 "살처분한 가축을 멀리 옮겨서 파묻을 수도 없고 남의 땅에 묻을 수도 없어 하천변이지만 여기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돼지사육 농가는 농장 마당에 매몰지를 설치했다. 구덩이 바닥에 비닐을 깔고 돼지와 흙을 뒤섞어 파묻었다. 하지만 매몰한 뒤 비닐을 덮지 않아 폐사한 새끼돼지들이 보이기도 했다. 한 주민은 "물이 오염될 수도 있고 냄새도 걱정이지만 워낙 매몰이 급하게 진행돼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가올 봄이 두렵다"는 주촌면과 한림면 주민들은 가축을 잃은 상실감에 시달리면서 매몰 이후 2차 오염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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