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아구찜, 충무 김밥, 밀양 돼지국밥, 언양 불고기, 포천 이동갈비, 의정부 부대찌개, 장충동 족발, 신당동 떡볶이, 강릉 초당두부….

소위 지역의 향토음식이라 일컬어지는 이런 음식들은 언제부터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게 되었을까? 국내 최초의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의 분석을 한번 살펴보자. "현재 한 지역에서 타운을 형성한 음식이 조선시대부터 수백 년간 그 지역에서 흔히 먹던 음식인 경우는 거의 없다. 혹 수백 년 전부터 그 지역에 있던 음식이라 해도 그 지역 이름과 음식 이름이 결합하여 고유명사처럼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길어야 20~30년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외식 산업은 국민소득이 3천 달러 이상일 때부터 성장기를 맞는다. 한국 역시 산업화, 도시화가 완료되고 국민소득이 1천500 달러에서 4천 달러로 증가하던 1980대에 외식 산업은 본격적으로 정착했다. 이 시기에 맞춰 TV와 신문에서는 향토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기사가 쏟아졌고,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먼 거리를 이동해 음식을 먹는 외식 문화 또한 확산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 출발점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향토 음식은 1980년대 이후부터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게 되었다.

춘천 닭갈비 역시 비슷한 역사를 가진다. 1960년대부터 춘천에는 닭을 키우는 양계장과 닭을 잡는 도계장이 많았다. 이런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닭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초기에는 선술집 등지에서 뼈가 붙은 채로 포를 떠서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워 먹는 형태였다. 이름도 '닭갈비'가 아닌 '닭불고기'였다. 돼지고기보다 싼 값에, 연기를 피워 고개 냄새를 맡아가며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70년대부터는 춘천시 명동을 중심으로 닭갈빗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학과 군부대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닭갈비는 특히 대학생과 군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춘천에서 서울로 건너간 닭갈비가 유독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매스컴을 타며 닭갈비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한때는 춘천 시내에만 닭갈빗집이 400여 개에 이를 정도였다. 그 후 조류독감 등의 한파로 150곳 정도가 문을 닫았으나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와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뼈를 그대로 붙인 채 포를 떠서 숯불에 구워 먹는 닭갈비의 원형은 이제는 춘천에서 조차 몇 집 찾아 보기 힘들다. 대신 1970년대 후반 부터 등장한 철판에 뼈를 제거하고 양념을 바른 닭다리살과 양배추, 깻잎, 고구마, 가래떡 등을 넣고 볶는 형태가 대세를 이루었다. '닭불고기' 대신 '닭갈비'라는 이름 또한 이 때부터 역전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형태는 바뀌었지만 적어도 춘천 닭갈비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선는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바로 닭다리살 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십수년 전 쯤 서울에서 이런 닭갈비를 먹은 이후로는 제대로된 닭갈비 맛을 본 기억이 없다. 프렌차이즈 등으로 인한 대중화는 때때로 원형의 훼손이라는 부작용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김해에도 춘천 못지 않은 닭갈빗집이 성업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호기심이 발동해 당장 맛을 보러 갔다. 김해시 내동에 위치한 <춘천 명물 닭갈비>. 입구 한켠에는 강원지방경찰청장이 발행한 운전면허증이 확대되어 붙어 있다. 주인장이 춘천 출신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닭갈비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뭔 이런 퍼포먼스까지...' 싶다가도 '원조'에 집착하는 세태에 비추어 보면 이정도는 애교로 봐 줄만 하다.
 
테이블 열 개 정도로 크지 않은 규모. 오후 5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는데, 6시가 되자 테이블이 차고 7시가 되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팀이 하나 둘 늘어 날 정도로 성황이다. 1인분 320g에 9천 원. 닭갈비 치고는 좀 비싸다 생각되지만 닭의 무게만 320g임을 감안하면 결코 과하지 않은 가격이다. 이집의 가장 큰 미덕은 닭갈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닭에 있다. 1.5~1.6kg 정도되는 16호 닭의 다리만 사용한다. 헌데 닭다리에서 뼈를 제거하고 포를 떠야하는데 이 작업이 만만찮다. 수요가 없다보니 인근에서는 이렇게 가공해주는 업체가 없다. 그래서 춘천에서 직접 공급을 받는다. 춘천에서 공수된 닭다리살에 밑간을 하고 하루를 숙성시킨 다음 사용한다.

양념 비법은 춘천서 닭갈빗집을 운영하고 있는 친척과 친구로부터 전수 받았다. 18가지 재료가 들어갔다는 양념은 기본 재료를 제외하고는 극구 공개를 꺼린다. 하긴, 그걸 시시콜콜 안다고 해서 음식 맛이 달라질까? 하지만 볶기 전에 양념을 슬쩍 찍어 먹어 봤더니 텁텁하지 않고, 개운하면서도 칼칼한 매운 맛이 돈다. 굳이 닭이 아니라 뭘 볶아도 맛있을 것 같다. 두께가 두꺼워 잘 눌러 붙지 않고 온도 변화가 적은 주철판 역시 춘천서
주문 제작한 것이다. 함께 볶는 재료는 양배추, 깻잎, 고구마, 가래떡 등이다. 수분이 많아 닭과 함께 볶아도 쉽게 무르거나 타지 않는 양배추는 단맛이 있어 매운 닭갈비와의 궁합이 좋다. 센 불에서 중간 불로, 중간 불에서 다시 센불로 온도 조절을 하며 볶아 내는 솜씨 또한 만만찮은 관록이다. 마무리로 신선한 깻잎 한 움큼을 넣고 향을 살리는 센스 또한 잊지 않는다.
 
볶아지는 동안 냄새로 이미 짐작을 했고, 벌겋게 물든 고기의 양에서 확신을 가졌지만 고기는 뭐니뭐니해도 먹어봐야 맛을 안다. 우선 두툼하고 쫄깃한 육질이 돋보인다. 야들야들한 껍질이 붙어 있어 더욱 풍부한 맛을 낸다. 숙성이 잘된 탓에 씹을 수록 누린내는 커녕 구수함이 우러난다. 적당히 매우면서도 개운한 양념은 젓가락질을 자꾸만 거든다. 단맛이 나는 양배추와 닭다리살의 궁합을 느껴 보기도 하고, 상추에 마늘을 얹어 한 입 가득 쑤셔 넣어도 본다. 취재라는 본분은 이미 망각한채 십수년 만에 맛보는 '제대로된' 닭갈비 맛에 어느새 빠져들고 있었다.

닭갈비에 빠져서는 안될 조연은 사리다. 춘천명물닭갈비는 끝까지 오리지널리티를 고집한다. 사리조차도 닭갈비 전용으로 춘천에서만 생산되는 우동 사리를 사용한다. 이 사리는 일반적인 우동면과는 달리 탄력이 전혀 없다. 어찌보면 좀 맥빠진 느낌이 드는데, 그 맥빠진 특성 때문에 양념을 잘 흡수하고 닭의 육질과 조화를 이룬다. 양념이 눌러 붙어 식어도 맛이 있다. 닭갈비의 원조인 동네에서 경험을 통해 개량되고 특화된 사리인 셈이다.
 
▲ 춘천명물닭갈비 최석규 사장
사리까지 먹으면 이미 충분히 배가 부르다. 하지만 닭갈비를 먹기로 작정한 이상 화룡점정을 해야 한다. 닭갈비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역시 볶음밥이다.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닭갈비 양념과 함께 볶은 밥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사실 기자가 춘천명물닭갈비에서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점은 바로 볶음밥에 사용하는 밥이다. 우리네 밥상의 중심은 뭐니뭐니해도 밥이고, 스시에서도 밥이 기본이다. 마찬가지로 볶음밥 역시 밥이 관건이다. 춘천명물닭갈비에서는 물기가 적고 고슬고슬한 밥을 따로 지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세심한 배려다. 기본이 바로 서 있으니 이 볶음밥,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흠잡을 것 없는 음식점이다. 춘천명물닭갈비의 최석규 대표는 고향의 명물 음식을 김해에 정착시키기 위해 치밀한 사전 준비와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진심이 통한 덕분인지 1년 남짓한 시간 만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음식점의 '맛'은 단단한 구조와 섬세한 디테일로 완성된다. 고객이 부지불식간에 맛있다고 느끼고, 발길이 이어지는 음식점을 찬찬히 살펴보면 구조와 디테일이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닭갈비라는 음식에 있어 구조는 닭의 육질, 양념, 야채의 신선도, 조리방식 등이다. 춘천명물닭갈비는 이 구조를 단단히 세운 다음 철판, 사리 등을 춘천서 가져와 오리지널리티를 살리고 밥을 짓는데 까지 신경을 쓴다. 춘천서 배운 양념을 고집하는 대신 김해 시민들의 입맞에 맞춰 조금씩 개량하는 노력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다. 단단한 구조에 작지만 의미있는 디테일이 살아 있으니 음식의 완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 완성도는 결국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맛있는 닭갈비로 구체화되고 있다. 앞으로 닭갈비 생각이 자주 날 것 같다.
 
▶주소 : 김해시 내동 1145-2 노블레스빌딩 1층
▶연락처 : 326-8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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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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