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대학까지 김해서 나와
스타성 겸비…차세대 주자 부각

지난 4일 침체에 빠진 민속 씨름계가 흥분할 만한 사건이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졌다. 김해 출신 이슬기(24·현대삼호중공업) 선수가 2011 설날장사 백두급에서 이태현 선수를 3-1로 물리치며 생애 첫 백두급 정상에 오른 것이다.

씨름계가 이슬기의 등장에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슬기 선수는 그동안 거구들이 지배했던 백두급에서 스피드와 기술로 정상에 올라 씨름 부흥에 견인차 역할을 할 적임자로 보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이태현 일인천하이던 모래판에 강력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함으로써 흥행 요소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기자와 만난 이슬기 선수는 생애 첫 타이틀을 거머쥔 그 때의 감흥에 젖어 있었다. 이 선수는 "최근 보기 드물게 많은 7천 여명의 관중이 오셨는데 그 앞에서 모래판 일인자 이태현 선수를 뉘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면서 "마지막 판을 꼭 기술로 이겨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돼서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이슬기와 이태현의 신구 맞대결은 말 그대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제한시간을 넘겨 승부를 가리지 못한 첫 판에서 500g의 차이로 이슬기가 환호했다. 138.9㎏의 이슬기가 139.4㎏의 이태현보다 몸무게가

500g 적게 나가 기선을 제압했다. 2-1로 앞선 마지막 판을 팽팽한 힘 싸움 끝에 안다리 기술로 이태현을 제압한 이슬기는 모래판에 앉은 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선수는 "이태현 선수는 신장이 크고 뛰어난 운동능력을 갖춘 데다 경험까지 풍부한 정말 훌륭한 선수다"면서 "진 줄 알았던 첫 판을 이기고 나자 이태현 장사가 당황하는 것 같았고 이내 서두르기 시작해 이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실업 5년차인 이슬기 선수는 어렸을 때부터 '제2의 이만기'로 불렸던 기대주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씨름을 시작한 이슬기는 신어중, 장유고 시절뿐 아니라 인제대학에서도 장사 타이틀을 싹쓸이하며 한국씨름의 미래로 주목 받았다. 특히 그는 장유고 3년 때 8개 전국대회에서 전관왕을 차지하는 등 최강자로 이름을 날렸다.

이슬기 장사는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졸업한 김해는 내가 씨름을 시작하고 또 씨름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마음의 고향이다"면서 "이번 백두장사 타이틀 획득에도 고향 분들의 성원이 큰 힘이 됐다"고 감사했다.

그러나 2007년 프로무대에 진출한 이슬기 선수는 힘든 적응기를 보냈다. 이슬기 선수는 "민속씨름 첫 해에는 팀이 유일한 프로구단이라 대한씨름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고 이듬해에는 오른 무릎 후방십자인대 파열로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슬기 선수가 다시 씨름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 소속이 실업팀으로 바뀌면서 대회에 자주 출전하면서 조금씩 경기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태현 선수는 번번히 그에게 걸림돌이 됐다. 이슬기 선수는 "지난해 문경장사 대회 4강에서 한 번 패했고 추석장사대회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지만 역시 이태현 선수에게 패하고 말았다"면서 "이태현 선수는 나를 채찍질 할 수 있는 좋은 자극제였고 언젠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이번 대회서 드디어 그를 꺾었다"고 말했다.

첫 백두장사를 획득한 이슬기 선수는 씨름계 부흥을 위한 각오와 주관도 뚜렸했다. 그는 "경기를 할 때 지는 한이 있더라도 시간을 끌어 관객을 지루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느슨한 경기보다는 팬들이 원하는 빠르고 다양한 기술로 승부를 걸어 씨름의 인기 부활에 앞장서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민속씨름계는 백두급임에도 빠르고 다양한 기술씨름을 선보이는 이슬기 선수가 이만기를 이을 '대스타'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특히 대한씨름협회가 올해부터 몸무게 160㎏ 상한제를 도입해 그의 기술씨름은 더욱 꽃 피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뷰 말미에 스스로 생각하는 약점에 대해 묻자 이슬기 장사는 "힘이 약하다"고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백두장사가 힘이 약하다니, 기자는 잠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