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촌다슬기의 들깨탕. 다슬기와 들깨, 부추만으로 끓여내 심심하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먹을수록 구수함이 더해진다.
'다슬기'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뉴스 검색을 해보면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다슬기 축제', '다슬기 잡다가 익사', '다슬기 종패 방류'. 이 세 가지 뉴스가 해마다 예외 없이 반복된다. 사실 이 세 가지 뉴스가 사실은 꽤 깊은 관련이 있다.
 
우선 전국 각지에서 의외로 많은 다슬기 축제가 열린다. 축제의 테마로서 다슬기가 제격인 것은 관광객들에게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축제 참가자들은 '다슬기 수경'이라는 간단한 도구를 가지고 강바닥을 보며 다슬기를 잡는다. 허리를 굽히고 나름 집중을 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지만 '수렵과 채취'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인간이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아이들에게는 자연 관찰이라는 교육적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축제 기간 동안 안전이 확보된 장소에의 채취라면 문제가 없지만 인간은 때로 과욕을 부리기 마련이다. 물 밑 사정을 잘 모르는 초보자가 다슬기 채취에 집중하다 보면 웅덩이에 빠지거나 갑자기 빨라진 유속에 휩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야행성인 다슬기는 낮에는 강바닥에 웅크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바위나 자갈 위로 올라온다. 다슬기를 전문적으로 잡는 이들은 주로 밤에 작업을 한다. 깜깜한 밤에 랜턴 하나에 의지해 강과 계곡을 긁는 작업은 위험천만이다. 그래서 다슬기를 잡다가 익사 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해마다 듣게 된다.
 
▲ 들깨탕 차림 밥상. 2인 이상 주문 땐 볶은 양파를 곁들인 고등어 철판 구이가 별미로 나온다.
다슬기는 맑고 깨끗한 물에서 서식하는 지표생물이다. 하지만 생활하수와 농약 등에 의한 수질오염으로 서식지와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데 반해, 식용으로 축제의 체험용으로 수요는 증가하는 추세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해마다 많은 양의 다슬기 종패를 강과 계곡에 뿌린다. 다슬기는 1년에 몇 차례씩 한 번에 수 백 마리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종묘장에서 다량의 종패를 얻을 수 있다.
 
더 재미있는 점은 다슬기와 반딧불이의 관계다. 반딧불이는 물속에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유충 역시 물에서 성장한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먹이가 다슬기다. 반딧불이가 사라지는 것은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다슬기의 서식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슬기 축제뿐만 아니라 반딧불이 축제를 개최하는 지방자치단체 역시 다슬기 종패를 열심히 뿌리고 있다. 이렇듯 생태계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물이 오염되면 하나만 잃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잃는 꼴이 된다.
 
다슬기는 우리나라의 계곡과 강, 호수 어디든 서식하고 그래서 흔히 먹는 민물고동이다. 그래서 지역마다 명칭도 다르다. 오히려 다슬기란 말이 낯선 지경이다. 경남에서는 고둥, 경북에서는 고디,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강원도에서는 꼴팽이, 충청도에서는 올갱이라 부른다.
 
명칭뿐만 아니라 먹는 방식도 다르다. 국만 해도 전라도에서는 맑게 끓이고, 충청도에서는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칼칼하게 끓이고, 경북에서는 들깨가루와 쌀가루를 더해 묵직하게 끓인다.
 
▲ 된장에 조린 우거지.
이처럼 지역마다 명칭도 다르고 조리법도 다르지만 목적은 동일하다. 다슬기는 민물에서 나는 생물 가운데 해장용으로 으뜸이다. 다슬기의 살은 푸르다. 그 푸른 살에서 우러난 국물까지 푸르다. 전통의학에서 이렇게 푸른빛을 내는 것들은 간에 좋다고 한다. 굳이 의학적인 근거를 대지 않더라도 다슬기국 한 사발을 마시면 순식간에 속이 시원해지고 갈증이 확 가시는 느낌을 받는다. 허허로운 속을 다스리는 데 이만한 음식도 없을 것이다.
 
삼계체육공원 못 미친 곳에 있는 '하촌다슬기'는 김해에서 꽤 소문난 다슬기전문점이다. 아담한 단층 건물인 하촌다슬기는 우선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마당에는 각종 야생화가 조신하게 피어있고 크고 작은 화분에는 다육식물과 관엽식물 등이 다양하다. 가꾼 솜씨와 관리 상태로 보아 주인장의 성격이 여간 깔끔한 게 아닌 듯 보인다. 몇 발작 되지 않는 공간이지만 이를 활용할 줄 아는 꼼꼼함 덕분에 고객의 기분까지 각별해진다.
 
전문점답게 다양한 다슬기 요리를 만날 수 있다. 국을 비롯해 전, 찜, 무침 등 선택의 폭이 넓다. 전날 과음으로 당장에 해갈이 필요한 경우라면 다슬기엑기스(5천 원) 한 사발부터 드시길 권한다. 눈치도 없이 마구 울렁거리던 속이 순식간에 진정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반응과 효과는 다를 수 있다.
 
좀 기다려도 상관없다면 들깨탕이나 맑은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시면 된다. 국과 밥을 내오기 전에 먼저 반찬 예닐곱 가지가 깔리는데, 그 모양새가 마당을 가꾼 성격만큼이나 야무지고 깔끔하다. 2인 이상일 경우 제법 큼직한 고등어 한 마리를 철판에 담아 준다. 양념에 볶은 양파를 곁들여 먹는데 이게 또 하촌다슬기의 별미다. 갈치속젓, 풀치(갈치새끼)조림, 오이무침 등등 어느 것 하나 대충 고르고 만든 것이 없다. 그러니 밥이 나오기도 전에 젓가락질이 분주하다. 특히 된장에 조린 우거지는 입맛 잃기 쉬운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별미다.
 
▲ 다슬기 맑은국.
맑은국에는 된장을 묽게 풀고 아욱과 부추를 썰어 넣었다. 특히 아욱을 넉넉하게 사용한 점이 돗보인다. 질감이 여리고 향이 강한 아욱은 된장과 궁합이 좋다. 다슬기도 제법 많다. 손톱만한 생물이지만 제 가진 것을 하염없이 쏟아내니 국빛은 푸르고 국맛은 진하다. 목을 타고 넘는 국물이 강과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것마냥 개운하다. 강바닥의 이끼 등을 먹고 사는 다슬기에서는 흙내 같기도 물비린내 같기도 한 묘한 향이 난다. 이 향이 또 아욱의 그것과 기막히게 어울린다. 취향에 따라서는 간이 좀 강한 느낌이 들 수도 있으니 미리 당부를 할 필요가 있다.
 
맑은국이 거북스러울 때는 들깨탕을 권한다. 재료라 해봐야 다슬기, 들깨, 부추 등이 전부다. 간은 소금 간 정도. 다슬기와 들깨는 어쩌면 이리도 잘 어울릴까 싶다. 심심하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강단이 있다. 들어간 재료가 뻔하니 채워지기 보다는 빈틈이 많은 음식이다. 그 틈을 말간 다슬기 국물의 은근한 향과 들깨의 구수한 향, 그리고 부추의 풋내가 비집고 들어앉았다. 섬세한 사람은 그 낱낱의 향을 즐길 것이고, 무심한 사람은 그냥 구수한 맛일 것이다. 하지만 숟가락으로 한 모금 한 모금 먹을 때마다 맛은 점점 선명해지고 고소함은 짙어진다. 그 재미에 빠져 정신없이 먹다보면 어느새 국사발은 바닥을 보인다.
 
▲ 각종 야생화와 각종 화분으로 꾸민 하촌다슬기 입구. 주인장의 깔끔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
그렇다고 들깨탕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은 금물이다. 밥내가 국내를 해치는 수가 있다. 밥은 그만큼 향이 강한 음식이다. 들깨에는 단백질, 칼슘, 칼륨, 지방의 함량이 높기 때문에 공복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애서 밥을 다 비울 필요는 없다. 따라서 해장뿐만 아니라 다이어트를 위해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싶을 때도 들깨탕은 괜찮은 선택이다.
 
대체 이 다슬기는 어느 강, 어느 계곡에서 왔나 싶어 주인아주머니께 물었다. 그랬더니 구례에서 오는 것이라 했다. 섬진강 하류 하동에서 출발해 화계장터를 지나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전라남도 구례군이다. 산을 끼고 도는 강과 그 강에 연결된 지천에는 말 그대로 다슬기가 지천이다. 그만큼 공기와 물이 깨끗한 동네다. 덕분에 섬진강을 끼고 사는 구례군에는 유명한 다슬기전문점이 많다. 이 계절에 꼭 한번 가볼만한 여행지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다슬기국 한 사발을 비우면 힐링이 그런 힐링도 없다.
 
만약에 그럴 형편이나 시간이 못되는 처지라면, 삼계동 하촌다슬기라도 한번 찾아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다. 공기야 구례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다슬기의 진한 맛은 구례 못지 않다.

▶메뉴:맑은국(8천 원), 들깨탕(8천 원)
▶위치:김해시 삼계동 1513-7
▶연락처:055-333-9888





박상현 객원기자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