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인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런 고통을 처음 경험하는 시기는 4~5세쯤이 아닐까.

나는 어릴 때 집에서 약으로 조금 보관해 둔 설탕을 훔쳐 먹다 어머니께 매를 맞은 것이 그쯤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남의 도시락을 몰래 먹어버린 사건이 있어서 걸상을 들고 2시간쯤 학급 전체가 벌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도시락을 먹었거나 먹는 학생을 본 사람은 쪽지를 적어 내라는 담임선생님의 불호령에도 우린 누구도 이름을 써 내지 않았다. 나는 그 도시락을 먹은 학생을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 동네에 사는 친구였다. 걸상을 들고 있는 동안 담임선생님은 실내를 돌면서 얼굴을 살피셨고 그때마다 목덜미까지 번져오는 화끈함을 느끼면서도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들 사이의 의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충돌도 가끔 있지만 정직이 중요하고 정직이 무너지면 신뢰가 무너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일본에서 이미 사망한 노인을 신고하지 않고 지원금을 타먹었다는 뉴스나 정가 뇌물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늘 깨끗하고 정직하다고 알려진 일본 사람들도 별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난해 여름 프랑스 여행 때였다. 공항에서 파리 호텔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내 여행 가방이 운전수의 부주의로 손잡이가 부서져 버렸다. 호텔에 도착해서 버스의 화물칸에 실린 가방을 받았을 때 그런 상태를 발견했다. 여행 내내 말할 수 없는 불편을 겪었지만 가이드나 그 운전수나 여행사 대표의 특별한 대책은 물론이거니와 사과의 인사도 받지 못했다. 프랑스는 다를 것이라고 미화해서 상상해 온 나로서는 대단한 실망이었다. 여행 중 자신들의 실수로 기물이 파손되거나 어떤 유형의 손실이 발생하면 변상의 책임을 그들은 져야 한다. 그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만국의 룰이다. 그러나 그런 룰의 이행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예의마저 표하지 않았다.

그렇게 본다면 어느 시인이 경험한 제주도 일화는 '신용 한국', '관광 한국'의 오늘에 대해 자신을 가져도 좋을 만한 아름다운 얘기이다. 연초 제주도 여행을 갔다 오면서 제주공항 하나로마트 특산물 코너에서 한라봉 두 박스를 사온 것이다. 이튿날 집에서 먹어 보니 시어서 먹기가 난감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한 박스를 먹고 두 박스째 맛을 보다 역시 같은 맛이어서 별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주의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그 마트에 전화를 하고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이튿날 택배기사가 와서 먹고 있던 한라봉 박스를 가져가고 그 시인의 계좌로 두 박스 값이 들어왔다는 얘기이다. 품질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의 이행인 동시에 소비자를 속이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닌가.

이런 가화(佳話)를 듣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긍지를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직을 브랜드화하고 그 실천에 사운을 거는 기업도 생기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나 문화 수준에 비하면 공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처세는 아직도 걱정스럽다. 지난해 일이지만 공정했다는 어느 장관 딸의 특채 과정, 청문회에서 노출되는 공직 후보자의 어설픈 해명, 연예인의 도박 스캔들과 그 변명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짓말 잔치 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느 심리학자는 사람들은 10분 동안 3번 이상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많이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집단에 도움이 되는 이른바 하얀 거짓말(white lie)도 있고 사소하게 남을 속이는 거짓말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쉽게 해서는 안 된다. 국민에 대한 공직자의 태도가 특히 그렇다. 행동이든 말이든 진실을 보여주는 것만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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