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도 마루에서 잡니다." 자연치유가 박정덕(70) 양신생활원 원장이 말했다.
춥지 않느냐고 물었다.
박 원장은 마루 아래 잔디밭을 가리켰다. "저 잔디도, 저 나무도 한겨울을 저 상태로 견딥니다."
순간, 뭔가로 정수리를 딱! 하고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박 원장은 또 말했다.
"심는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지요? 사람들은 땅에다 무언가를 심어서 수확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몸에 병이 드는 것은 자신의 몸에 아무 음식이나 함부로 집어넣은 결과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먹어왔던 거지?
박 원장이 최근 자연치유법을 다룬 책 <자연에서 길을 찾다> (해피북미디어 펴냄)를 출간했다.
그의 터전이자,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기도 한 '양신생활원'을 방문했다.

▲ 양신생활원 본채 앞에는 넓은 잔디밭이, 뒤편에는 영축산이 배경으로 펼쳐진다.

몸과 마음이 자연과 일치하는 삶 살면
원래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되찾고
병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

양신생활원은 영축산 자락인 경남 양산 상북면 내석리 내석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계곡 옆으로 난 좁다란 길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면 나온다. 내석마을에 들어선 뒤부터는 안내판이 나온다. 찾아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길이 좁아서 내려오는 차와 마주쳤을 때, 잠깐 비켜선 채 영축산 자락을 감상한다. 풍광이 아름답다. 어느새 초록이 짙어지기 시작했고, 계곡물은 맑고 깨끗했다.
 
양신생활원은 4천㎡(1천200여 평)의 터에 자리 잡고 있다. 본채, 살림채, 9박 10일 과정의 자연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교육생들이 묶는 숙소 등이 옹기종기 서 있다. 모두가 방금 청소를 끝낸 것처럼 정갈했다. 본채 앞의 넓은 잔디밭은 시야가 툭 트여서 마음까지 환해졌다. 박 원장은 살림채 뒤의 숲에서 버섯을 재배하고, 텃밭에서는 갖가지 채소를 기르고 있다. 굳이 자연식이나 단식을 하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한 이틀만 머무르면 몸과 마음에 자연의 에너지가 가득 찰 것 같았다.
 
"<김해뉴스>에서 왔다니 더 반갑네요." 박 원장과, 딸 김남경 씨가 취재팀을 반가이 맞았다.
 
박 원장의 고향은 경남 산청군 생초면이다. 지리산을 보고 자랐는데,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다닌 지 10년 만인 2004년에 이곳에 들어왔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절망의 시간
단식과 자연식 통한 자연치유로 회복
대화 통해 마음의 병도 함께 다스려요

박 원장은 교사 남편과 함께 김해에서 20여 년을 살았다. <김해뉴스>를 반가워 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김해성당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 한센씨병을 앓는 사람들의 집단 거주촌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고, 14년 정도 하숙을 치기도 했다. 그래서 김해에서의 추억이 무척 많다.

▲ 자연치유가 박정덕 원장이 자연요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poonglyu@naver.com

그런데 그는 1987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제겐 어린 시절 친척언니가 자궁암 수술을 받다 죽은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그래서 병원을 마다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해답은 제 몸에 있더군요. 원래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되찾고, 내 몸과 마음이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당시,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괴로워 죽고 싶을 정도였다는 그는, 자연요법을 통해 마침내 건강을 되찾았고, 이후 자연요법에 대한 이론과 실기 공부를 열심히 해 '자연치유가'로까지 성장했다. "많은 공부를 하고, 직접 실천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번에 낸 책 안에 그 이야기를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중요한 이야기들은 빼놓지 않고 수록했습니다."
 
박 원장은 책에서 사람들이 편리함을 찾느라 스스로 병을 부른다고 지적한다. "현대병의 근원은 우리 몸의 기관들을 게으르게 한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걷지 못하게 하는 자동차, 씹지 않고 삼키는 음식들, 몸이 푹 꺼지는 소파와 침대, 여름에는 시원하다 못해 추운 에어컨, 겨울에는 반바지만 입어도 되는 더운 난방…. 몸의 기관들이 그만 자기 할 일을 잊어버리니, 생생해야 할 몸의 기관들이 농땡이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게으른 생활은 온갖 병의 유혹에 내 몸을 열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요컨대, 건강한 삶에 관한 박 원장의 지론은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따르면서 내 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몸 속에 자연과 우주가 다 들어있다. 몸이 보내는 신호, 몸의 소리를 잘 들어보라. 속이 거북하다, 소화가 잘 안 된다, 머리가 띵 하다, 똥을 잘 누지 못한다, 자주 피곤하다…. 이쯤 되면 몸에 이상이 왔다는 신호이다. 몸이 보내는 이 신호를 무시하면 큰 병에 걸린다."
 
양신생활원의 자연요법 프로그램을 경험한 사람들의 체험담도 들을 만하다. 결혼 30주년을 맞아 아내와 함께 양신생활원에서 단식 프로그램에 참여한 농부시인 서정홍 씨는 단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음식의 고마움을 알았다고 한다. "나는 단식을 하면서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내 몸에서 나오는 땀과 똥에서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날 줄 몰랐습니다. 얼마나 몸에 해로운 음식을 함부로 먹고 살았으면…. 단식을 마치고 회복식을 하면서 음식을 보통 때보다 서너 배쯤 천천히 씹어 먹었습니다. 음식마다 지니고 있는 특유의 맛과 냄새를 맡으니, 먹는다는 게 '거룩한' 일이란 것을, 아니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여태 나를 살려준 음식을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아내와 나는 10일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찾아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선묵화의 대가로 알려진 벽천 하영상 화백은 단식체험에 대한 소회를 작품으로 남겼다. "찬 물 한 잔 쳐다보니 먼 산이 꼬르륵/ 비운 뱃속에 들리는 산새 울음이 생각마저 비워놓네." 벽천은 단식을 한 지 일주일 만에 뱃속에서 산새 울음을 들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본채에 걸려 있다.
 
▲ 박 원장의 밥상은 단촐하지만, 싱싱하고 건강한 자연의 풍미가 그득하다.
양신생활원을 찾는 사람들은 병원생활에 지친 환자, 자연요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 비만 때문에 단식을 하려는 사람,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 등 다양하다. 다만, 단식과 자연식을 통해 몸을 치유하는 한편, 박 원장의 강의를 듣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을 동시에 치유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효과를 보고 있다.
 
한편, 취재팀은 이날 박 원장이 차려낸 점심 상을 받았다. 직접 재배한 표고버섯을 넣은 된장국, 텃밭에서 키운 돌나물로 담은 물김치, 젓갈을 사용하지 않아 담백하고 슴슴한 김치, 한 접시에 깔끔하게 담아낸 깻잎·매실·돼지감자 장아찌…. 보기만 했는데도, 벌써 건강해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밥상이었다. 여기에 텃밭에서 금방 뽑아 온 민들레 잎이 더해졌다. 민들레 잎에 현미찹쌀밥을 한 숟갈 놓고 유기농 콩으로 담은 된장을 조금 넣어 한입 싸먹으니, 상큼한 느낌에 이어 민들레잎의 쌉쌀한 뒷맛이 무뎌진 미각을 깨우는 듯 했다. 천천히 음미하며 먹어야지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맛있고 행복한 밥상이었다. 

>> 양신생활원
경남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 967. 055-374-1874/홈페이지(yangs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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