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윤영무 씨가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명진출판사·2004)를 펴냈을 때, 산문집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독자층이었던 중년남성들이 그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쉽게 드러내 보일 수 없었던 자신들의 속내를 책을 통해 들여다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책에 이어 또 한 권의 책이 중년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버릴 기세이다. 대중문화평론가이며 칼럼니스트인 정덕현 씨가 '대한민국 남자들의 숨은 마흔 찾기'를 펴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라던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30대를 보내고 이제 마흔 둘이 된 저자가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중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어느새 마흔에 접어든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책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공포영화보다 더 두려운 건강검진과,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의 술잔을 채워놓고 "너도 한 잔해!" 추억하는 고등학교 동창과의 모임, 존 레논의 <이매진>을 들으며 20대에 꾸었던 꿈들에서 조금씩 멀어진 현재의 삶, 군대의 추억과 프로야구 등 일상의 모습과 지나온 청춘들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도 군대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나이에 상관없이 남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까닭을 저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군대의 경험이 하나의 트라우마로서 자리할 만큼 충격을 주었기에 이것을 하나의 프라이드로 바꾸기 위해 이야기를, 조금은 과장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끼리 그 공통의 기억을 매만져주며 상호인증해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어떤 모임에 참가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다 읽을 무렵이면, 저자 친구들의 이름과 직업은 물론이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중년의 심리학이니, 노후대책이니 하는 지루한 이론 같은 걸 늘어놓는 책이 아니다. 그들의 추억은 같은 나이의 남성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고단함이 서로 어깨를 두드리게 하는 따뜻한 책이다.

젊고 혈기 넘치고 좌충우돌 무모했던 시절을 지나온 40대. 그들은 사실 얼마나 근사한 사람들인가. 어르신들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통을 책임질 수 있는 세대, 이해력과 추진력을 함께 갖춘 세대,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세월의 지혜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 품격을 가진 세대인 중년남성. 그들이 가정과 사회를 이끌어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이니, 드러내어 뽐내지 않아도 충분히 뿜어져 나오는 '미친 존재감'을 들려준다. 열심히 살아온 그들의 삶이 귀하고 멋진 것이었으니, 앞으로 이어질 삶 역시 창창하고 값질 것이라고 굳은 악수를 건넨다.

참 열심히 살아왔지만 왠지 허전해진다면,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던 발걸음 잠깐 멈추어 서서 숨을 가다듬어 보라고 하는 저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중년을 넘어서면서 우리의 걱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살 날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너무나 바빠 일 년은 정신없이 훅훅 지나가는데 뭐 해놓은 것은 없고, 이렇게 지내다가 노년을 맞이해 그 긴긴 날들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지나온 시간보다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많으니, 시간개념에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아 그 미션을 수행해보자고. 이 책에 둘러진 띠지의 광고문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마흔, 잔치는 시작됐다!"
정덕현 지음/엘도라도/299p/13,800원






박현주 객원기자
북칼럼니스트,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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