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시 대동면 덕산리 고암마을 강가에서 바라본 황산강. 낙동강이 밀양강과 만나 삼랑진을 지나고 원동과 물금을 지나 삼차강 위에까지 이르는 구역이 황산강이다. 고암마을은 강 건너 양산시 물금읍과 마주하고 있다.
황산강(黃山江)은 낙동강이 밀양강과 만나 세 개의 물줄기를 이룬 삼랑진을 지나고 원동과 물금을 지나가는 곳으로부터 다시 세 갈래로 갈려지는 김해 대동과 부산시 화명동 부근의 삼차강(三叉江) 위까지의 낙동강을 말한다. 이 부근에는 조선조 때 황산역(黃山驛)이 있었고, 신라 최치원(857~?)의 추억이 깃든 임경대(臨鏡臺)가 있으며, 건너편은 김해시 상동면과 대동면이다. 이긍익(李肯翊:1736~1806)의 <연려실기술>을 읽어보면 이 흐름을 더욱 상세히 알 수 있으니, 참고 삼아 읽어보자. '밀양 남쪽 30리, 김해 북쪽 50리 경계에 이르러서 뇌진(磊津)이 되는데, 이곳은 해양강(海陽江)이라고도 한다. 청도와 밀양의 물은 응천(凝川)이 되어서 영남루 남쪽을 돌아 합쳐진다. 또 동쪽으로는 삼랑창(三浪倉)이 있고 남쪽으로 흘러 옥지연(玉池淵) 황산강이 된다. 다시 남쪽으로 양산의 동원진(東院津)이 되며, 남쪽으로는 삼차강이 되었다가 김해부 남쪽 취량(鷲梁)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옥지연은 가야진(伽倻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데,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나루터다. 마을의 이름대로 세종대왕 때 황룡(黃龍)이 물속에 나타났으며, 가뭄에 비를 빌면 그때마다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원진은 부산도시철도 율리역과 금곡역 사이이며, 건너편은 김해시 대동면이다.
 
▲ 칠점산(七點山) 주변. 칠점산을 그린 대저도(大渚島) 안에 양산지(梁山地)라고 적혀 있어, 행정상 이곳은 양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은 동래계(東萊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지리서들에서 황산강은 양산에 속한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앞서 보았던 칠점산 또한 양산의 땅(梁山地)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칠점산은 거등왕과 참시선인, 초선대와 함께 가락국의 대표적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황산강 또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가락국의 경계는 동쪽으로 황산강, 서남쪽으로는 푸른 바다, 서북쪽으로는 지리산, 동북쪽으로는 가야산, 남쪽으로는 나라의 끝이다'라고 하였듯이 가락국의 동쪽 기슭을 감싸안고 2천 년을 흘렀다. 따라서 기왕 김해를 다루는 이 글에서는 황산강을 가락국의 추억 속에 편입시키고자 한다. 이제 시를 통해 황산강의 정서를 읽어보자. 처음 감상할 것은 최치원의 시다.


안개 낀 봉우리 옹긋쫑긋 강물은 넘실넘실
인가가 산을 마주하고 거울 속에 잠겼어라
바람 잔뜩 외로운 돛배 어드메로 가시는고
새 날아가듯 순식간에 자취 없이 사라졌네
 

煙巒簇簇水溶溶(연만족족수용용)
鏡裏人家對碧峯(경리인가대벽봉)
何處孤帆飽風去(하처고범포풍거)
瞥然飛鳥杳無蹤(별연비조묘무종)
 

   
<최치원, 황산강 임경대(黃山江臨鏡臺)>  


작중 화자의 위치를 보면 이 시는 임경대에서 황산강 주변으로 시각을 옮기면서 읊은 것이다. 마치 신선의 세계인 양 아른아른 안개 사이로 비치는 봉우리 아래로 강물이 넘실거린다. 저 앞으로 보이는 강물 속에는 인가 몇 채가 강물에 비치고, 그 위로 세찬 바람을 받은 돛단배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임경대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여러가지 추측들이 있다. 사실을 밝힌다면 좋은 일이겠으나, 지금도 물금에서 원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위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황산강과 그 주변을 바라보면, 1천년 전 최치원이 황산강을 왜 이렇게 읊었는지 분명히 알게 될 터이니 이로 만족한다 해도 그리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은 최치원보다 약 300년 뒤인 고려 명종(明宗:1170~1197 재위) 때의 대문호 김극기(金克己:?~?)가 노래한 황산강이다.


여관에서 새벽 밥 먹고 강을 건너니
강물은 아득하고 하늘은 검푸르다
검은 바람 사방에 일어 흰 물결 일으키니
배가 황산강과 서로 다투듯 오르락내리락
나루터 사람은 마치 내가 평지 밟듯
노 저으며 뱃노래 소리 짧았다 길어졌다
죽다 살아나 언덕에 이르니
느티나무 버드나무 그늘 속 촌길 거칠구나
 

起餐傳舍曉度江(기찬전사효도강)
江水渺漫天蒼茫(강수묘만천창망)
黑風四起立白浪(흑풍사기립백랑)
舟與黃山爭低昴(주여황산쟁저묘)
津人似我履平地(진인사아리평지)
一棹漁歌聲短長(일도어가성단장)
十生九死到前岸(십생구사도전안)
槐柳陰中村徑荒(괴류음중촌경황)
 

   
<김극기, 황산강(黃山江)>  


황산강은 낙동강의 하류로서 엄청나게 넓다. 넓기는 하여도 평소에는 호수처럼 잔잔하며 대단히 느리게 흘러간다. 그런데 김극기가 이 강을 건너던 당시는 시에서 보듯 검푸른 하늘에 모래 먼지를 안은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으니, 배가 아래 위로 요동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그 동네 사람들과 뱃사공은 워낙 배를 자주 타고 이런 일을 많이 당한 터라, 평지에 서있듯 자연스럽게 뱃노래가 흥겨우니 감탄스러우면서도 얄밉기 그지없다. 겨우 배에서 내린 시인 앞에 맞닥뜨린 것은 편안한 길이 아닌 숲이 깊고 거친 시골 길이다. 시에서 보면 당시 김극기가 겪었던 공포감과 고통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다음은 같은 시대를 살았고 결코 김극기에게 '문호'의 자리를 양보할 수 없었던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시다.


푸른 강 맑디맑고 물결도 잔잔한데
가벼이 난주 띄워 거울 속 지나가네
미인 보내 놓고 내심 후회되리니
예서 노래라도 한 곡 들어야하리
 

碧江澄淨不生波(벽강징정부생파)
輕漾蘭舟鏡裏過(경양난주경리과)
訶遣紅裙君心悔(가견홍군군심회)
此間宜聽一聲歌(차간의청일성가)
 

   
<이규보, 동박시어장향양주 범주황산강구점(同朴侍御將向梁州 泛舟黃山江口占)>  


시에는 '밀성(密城)의 기녀가 따라오려는 것을 공이 꾸짖어 보냈기 때문에 일컫는 말이다'라는 주가 달려 있어 이 시의 내용을 더욱 잘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박시어(朴侍御)는 당시 보문각시어(寶文閣侍御)를 지낸 박순(朴純)으로 보이는데, 이규보는 박순과 함께 배를 타고 밀양에서 양산으로 가며 황산강을 지나고 있다. 맑고 아름다운 강을 지나면서 풍경에 도취한 그들에게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풍경에 어울리는 기생의 노래다. 그러나 박순이 따라오려는 기생을 쫓아버렸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제 조선조의 시인들을 만나보자. 다음은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1556~1618)과의 우정과 장난으로 우리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준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의 시다.


아름다운 곳 풀만 그득 싸움터로 변하니
다시 온 요동학이 상처만 품었구나
강산은 인간의 한은 생각지 않고
옥거울 아미산에 노을이 지네
 

草滿名區變戰場(초만명구변전장)
重來遼鶴獨含傷(중래요학독함상)
江山不管人間恨(강산불관인간한)
玉鏡蛾眉伴夕陽(옥경아미반석양)
 

   
<이덕형, 황산강유감(黃山江有感)>  


 

이덕형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 사신 겐소와 단 둘이 배를 타고 교섭을 하는가 하면, 왕을 모시고 피난을 가기도 하였다. 그 혼란 중에 부인 한산(韓山) 이씨(李氏)는 왜적을 피하려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결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인 1601년 경상·전라·충청·강원도의 4도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된 그는 전쟁 후의 민심 수습과 군대 정비에 애를 썼으니, 이 시는 이때 썼던 것으로 보인다. '요학(遼鶴)'은 중국 전설 속의 도사 정영위(丁令威)가 도술을 배워 학으로 변한 뒤 천 년 만에 고향 요동(遼東) 땅에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전쟁은 아름다운 황산강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곳을 다시 찾은 시인의 마음에는 상처만 가득하다. 시인의 가슴에 가득한 한 따위야 아랑곳 없이 오늘도 아름다운 황산강에 놀이 진다. 이제 마지막으로 조선조 중기 유계(兪棨:1607~1664)와 김익희(金益熙:1610~1656)가 서로 운을 주고받은 차운시(次韻詩)를 보자.

서로 만나 손을 잡고 고깃배에 오르니
바람은 자고 물결은 잔잔히 십리를 흐른다
바람에 날리는 한 개 돛 석양에 기대었고
술 취하니 시흥이 푸른 강물에 가득해지네
 

相逢携手上漁舟(상봉휴수상어주)
風定波殘十里流(풍정파잔십리류)
一棹飄然倚斜日(일도표연의사일)
醉來詩興滿滄洲(취래시흥만창주)
 

   
<유계, 황산강상 동김중문 익희범주구호(黃山江上 同金仲文益熙泛舟口呼)>  


맑은 술 항아리 아름다운 촛불 켠 작은 배
비단 닻줄 천천히 끌어 푸른 물결 거슬러간다
노을을 마주하고 앉으니 강 위로 달이 뜨고
한 소리 우는 기러기 강물 아래로 날아간다
 

淸樽華燭木蘭舟(청준화촉목란주)
錦纜徐牽泝碧流(금람서견소벽류)
坐待黃昏江月上(좌대황혼강월상)
一聲鳴雁下汀洲(일성명안하정주)
 

   
<김익희, 여유무중범주황산강 지야심 무중유절구 차기운(與兪武仲泛舟黃山江 至夜深 武仲有絕句 次其韻)>  


두 사람은 놀이 질녘부터 황산강에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다가 밤이 깊어지자 촛불을 켠다. 취흥이 도도해지자 유계는 먼저 칠언절구를 읊었고 김익희가 '주(舟)', '류(流)', '주(洲)'의 '우(尤)'자 운을 빌어 답하였다. 고요한 물결과 붉게 물든 노을에 비치던 서로의 얼굴이, 밤이 되자 촛불과 달빛에 비친다. 달빛과 촛불에 비쳐 황산강에 그림자 진 배와, 술을 마셔 불콰해진 얼굴로 시를 읊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생생히 떠오른다.
 
황산강을 읊은 시는 여기에 소개한 것보다 훨씬 많다. 여기에 소개한 것은 황산강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한 것이긴 하여도 시대를 안배하였고, 독특한 상황의 것들을 주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혹 독자들께서 다른 시들도 참으로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연락주시면 소개해 드릴 의향이 있다.






엄경흠 부산 신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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