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빚은 만두를 익혀 식힌 다음 냉장보관했다가 주문과 동시에 튀겨 내는 군만두.
조선시대부터 낙동강의 3대 나루터였던 감동진(구포)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더불어 해상운송과 육상운송의 중심지가 된다. 남지, 밀양, 수산, 삼랑진, 원동 등에서 배와 기차로 실어 온 곡물이 강변 제방과 나루터에 가득했다. 심지어는 황해도 사리원에서 선적된 밀이 경의선과 경부선을 타고 오기도 했다. 역 주변에는 대형 정미소가 하나 둘 세워졌다. 곡물 거래를 위한 상인들이 몰리고 그와 함께 돈이 몰리니 여관과 기생집도 덩달아 늘었다.
 
1933년에는 김해군 대저면과 구포를 잇는 구포다리가 완공됐다. 이 다리는 당시 전국에서 가장 긴 다리로 '낙동장교(長橋)'라 불렸다. 1978년 대저면 일대가 부산시에 편입되기 전까지 구포다리는 김해와 부산의 경계였다. 지금은 국내 최대 규모의 삼각주인 부산 강서구 대저동과 강동동을 가로질러 김해교를 지나야 김해시 불암동에 닿는다.
 
어쨌거나 구포는 여전히 부산과 김해를 오가는 주요 거점이다. 부산지하철 3호선 구포역 1번 출구 앞 버스정류장의 노선버스는 대부분 김해행이다. 경전철이 개통된 이후에는 대저역에서 환승해 김해로 넘어 오거나 부산으로 넘어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김해와 부산을 오가며 취재를 하는 나로서는 일주일에 몇 번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두 도시를 생활권으로 두고 있는 많은 김해 시민 역시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랴'는 속담이 이 보다 잘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 싶다. 김해에서 부산으로 넘어가건 혹은 그 반대건 간에 항상 구포에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잠시 내릴까 말까'를 고민하게 된다. 40년 넘게 구포역 코앞에서 중국식 만두를 빚고 있는 '금용(金龍)' 때문이다. 음식과 음식점을 취재하고 소개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늘 어딜가나 먹을거리가 빠지지 않는 배부른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금용의 만두는 수시로 생각난다. 근 20년 가까이 드나들면서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 찬물에 반죽해 피를 얇게 빚어 부드러움을 살린 물만두.
한때는 부산에도 화교가 운영하는 제법 이름난 중국식 만두집이 적잖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라지거나 맛이 전만 못하거나 하면서 그 명성이 퇴색되어 갔다. 그나마 수십 년 전통과 이름값에 걸맞은 만두를 내는 곳은 이제 금용이 유일하다. 만두 맛만 놓고 보자면 김해 동상동의 만리향과 자웅을 겨룰만한 곳이다. 두 집의 만두를 모두 먹어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할 정도다.
 
하지만 역 앞에서 변함없이 40년 넘게 만두만 빚어 온 금용에는 금용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우선 수십 년 이상 된 오랜 단골들이다. 나이 지긋한 단골들은 부드러운 물만두를 안주 삼아 고량주나 소주를 마신다. 워낙에 오랜 경험이 쌓이다보니 그 모습이 그렇게 자연스럽고 여유로울 수 없다. 가끔은 군만두와 찐만두로 외도를 하기는 하지만 술은 항상 고량주 아니면 소주다. 다음은 몇 년 안 된 상대적으로 젊은 단골 혹은 소문 듣고 찾아온 뜨내기 손님이다. 이들은 어김없이 군만두와 찐만두를 주문한다. 특히 군만두의 비율이 높다. 술은 주로 맥주다. 마지막으로 기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이다. 떠나는 이들은 포장을 해가고, 도착하는 이들은 만두 한 접시를 앞에 놓고 느긋하게 여독을 푼다. 금용 만두 때문에 일부러 구포역에서 출발하거나 내리는 이들도 더러 있다. 이 모든 이들이 모여 '역전 만두집' 특유의 풍경을 연출한다. 시내 중심가나 동네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장사를 시작한 금용은 10여 년 전에 주인이 바뀌긴 했지만 같은 화교 출신이 물려받아 맛은 여전히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우선 중국식 만두답게 살코기 위주의 돼지고기를 아낌없이 쓰고 부추, 대파, 무, 배추, 생강 등을 곁들인다. 중국식 만두에서 마늘은 어지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맛은 주로 돼지고기와 부추의 조화가 결정짓는다. 당연히 돼지고기가 좋아야 한다. 그래야 잡냄새 대신 특유의 육향이 나고 육즙도 풍부하다. 기계로 만두를 빚거나 미리 빚어두고 냉동해서 사용해서도 안 된다. 금용은 그날 쓸 분량만큼 식당에서 직접 손으로 빚는다. 그것도 손님이 보는 앞에서 직접!
 
▲ 쫄깃한 식감을 위해 익반죽으로 피를 만들어 쪄낸 찐만두. 윤기가 흐르는 모습이 입맛을 자극한다.
속만큼이나 이를 감싸는 피도 중요하다. 종류에 따라 피를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물만두는 찬물에 반죽해 얇게 빚어 부드러움을 살린다. 군만두와 찐만두는 쫄깃한 식감을 위해 뜨거운 물에 익반죽을 한다. 군만두의 경우 한 번의 과정을 더 거친다. 다 빚은 만두를 80% 정도 찐 다음 이를 식혀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튀긴다. 일종의 숙성과정인데, 이렇게 해서 튀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군만두가 된다.
 
대부분의 중국음식은 센 불에서 신속하게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듯 만두 역시 마찬가지다. 물만두는 팔팔 끓는 물에 3분간 삶고, 찐만두는 5분간 쪄내고, 군만두는 3분간 튀긴다. 사실 군만두는 그 조리법을 보면 '튀긴만두'가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대중의 언어습관은 때때로 본질보다 습관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만두라는 용어 자체에도 해당된다. 원래 금용에서 만드는 형태는 교자라고 한다. 만두(饅頭)와 교자(餃子)는 모두 중국에서 유래된 음식이다. 명칭의 유래를 거슬러 오르면 만두는 사람의 머리 모양과 닮았다 해서, 교자는 사람의 귀 모양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양은 달랐지만 다진 채소와 고기를 밀반죽으로 만든 피로 감싸는 구조는 비슷했다.
 
오늘날 한·중·일 3국에서 만두와 교자는 모양은 그대로 유지하되 명칭과 구조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원조인 중국에서 만터우(만두)는 속에 아무 것도 넣지 않고 둥근 모양의 밀반죽을 찐 것을 일컫는다. 속에 채소나 고기를 채운 것은 바오즈(包子)라 부른다. 일본에서는 고기와 채소로 속을 채운 것을 교자라 하는데, 만쥬(만두)에는 팥소를 채운다. 그래서 만쥬는 과자나 떡으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교자라는 말이 가끔 쓰이고는 있지만 구분 없이 만두로 통일해 버리는 대범함이 특징이다. 명칭은 각각 달라도 3국에서 오래전부터 각자의 형편에 맞게 발전해 온 전형적인 서민음식임에는 분명하다.
 
▲ 구포역을 오가는 이들에게 중국식 만두의 입맛과 추억을 선사하며 40년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금용만두.
금용은 겉으로 보면 영락없는 중국집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중국집에 반드시 있어야 할 짜장면과 짬뽕이 없다. 만두 하나로 승부를 걸겠다는 나름의 원칙 때문이다. 식사를 하러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손님이 하도 많아 몇 년 전부터는 볶음밥, 잡채밥, 짜장밥, 짬뽕밥 등의 식사 메뉴를 추가했다. 하지만 끝내 짜장면과 짬뽕은 들이지 않았다. 짜장밥과 짬뽕밥이 있으니 면만 삶으면 될 일을 끝까지 버틴다. 금용은 중국집이 아닌 만두집이기 때문이다.
 
이 고집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낙동강을 건너서 혹은 건너기 전에 구포에 내릴까 말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두고 '행복한 고민'이라고 하던가? <끝>

▶메뉴:군만두·찐만두·물만두(5천 원)
▶위치:부산시 북구 구포2동 1060-268
▶연락처:051-332-1261





박상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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