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부터 박상현 객원기자의 김해의 맛집을 대신해 '나와 맛집'을 연재합니다. 명사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단골 식당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남해에서 직접 재배한 쌀로 밥짓고
고이고이 묵혀온 간장·된장으로
직접 채취한 나물 10여 가지 무쳐내
묵은지와 토란국·찜국 번갈아 상차림
점심 때만 하루 50그릇 한도내 팔아
예약하지 않으면 맛 볼 생각 접어야

경남애니메이션고 김재호 교장은 김해의 맛집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단골 맛집을 하나만 소개해 달랬더니 주저 없이 전통 토속 음식점 '토란과 찜국'을 들었다. 외동 새마을금고 맞은편 골목 안에 있으며, 14년 정도 된 맛집이다.
 
김 교장은 이 맛집을 처음 찾았을 때 난처한 상황을 겪었다고 한다. 소개를 받고 점심시간에 어렵사리 찾아갔는데 허탕을 치고 만 것이었다. 하필이면 문을 닫았던 것이냐고?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여주인이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무작정 퇴짜를 놓더군요.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지만, 어쩌겠어요. 그랬는데,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예약을 한 다음 친구들과 한 번 더 찾아갔지요. 그러곤 밥과 반찬을 먹으면서 '내가 차~암 안 올라 캤는데 이 사람들 소개해 줄라꼬 왔어예' 했더니 주인 아지매가 '삐지고 가는 사람 많아예. 저 욕 많이 먹어예' 하더군요."
 
아닌 게 아니라, 이 맛집은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테이블이 4개, 방이 하나에 불과한데다 고정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도 점심시간에만 연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오후 2시다. 그날 준비한 식재료가 동이 나거나 찜국 50 그릇만 팔면 무조건 문을 닫아버린다. 식사 중에도 셔터를 내려버린다. 밥 먹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해 하는 손님들도 있다. 저녁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일요일에도 영업을 하지 않는다. 토요일은 산나물을 캐러 가는 날이 있기 때문에 어쩌다 영업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 김재호 경남애니메이션고 교장이 '토란과 찜국' 주인장 이다정 씨의 상 차림 설명을 자세히 듣고 있다. 사진/ 박나래skfoqkr@
허름해 보이는 식당 유리문에는 태극 문양의 그림과 글귀가 여럿 부착돼 있다. 그중 한 글귀가 인상적이다. '건강해지는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테이블마다에 식탁보가 놓여 있다. 반찬을 미리 깔아놓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주문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알아서 밥과 국이 나온다. 하루는 찜국, 하루는 토란국이다. 오늘은 찜국이다. 들깨가루와 토란, 곡물, 마, 새송이버섯 그리고 머귀 이파리와 대 등이 걸쭉한 국물 속에 숨어 있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어보니 구수하면서 담백하다.
 
식탁보를 걷어내자 10여 개의 앙증맞은 접시들이 반찬을 담은 채 도열해 있다. 주인 이다정 씨가 반찬의 종류를 설명한다. 산초, 미나리, 고사리, 고소, 지부초, 곤달비, 머귀, 명아주, 키다리, 취나물 중 참취, 그리고 김치… 크게는 말려서 볶은 묵나물과 파란나물의 조합이다.
 
화학조미료는 일절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물 반찬들은 저마다 특유의 향을 내고 있다. 소화불량 혹은 급성위염에 좋다는 산초를 입안에 넣어본다. 어제 술을 과하게 마신 터다. 새콤하다. 지친 위가 깜짝 놀라겠다.
 
김치는 묵은지다. 땅 속 10m 깊이에서 4~6년을 묵힌 것도 있다고 한다. 반찬을 더 먹고 싶다면 전부를 다 비워야 한다. 한 가지라도 남기면 개별 반찬은 추가로 제공하지 않는다. 전부 다 먹어야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다정 씨의 지론이자 음식 철학이다.
 
이다정 씨는 산골 마을인 경남 하동 절골이 고향인데, 주말이면 고향에 가서 나물을 채취해 온다고 한다.
 
쌀과 보리가 섞인 밥에 관심을 보였더니 "오늘은 일 끝나면 남해 가야 돼요. 모내기 해야 하니까. 우리 집은 남해서 직접 쌀농사를 지어서 손님상에 올려요"라고 한다. 그러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간장이 든 페트병과 된장이 든 플래스틱 통을 들고 와서는 한바탕 자랑을 한다. 흥미롭다.
 
"우리 집 음식은 두 시간 지나면 배가 고파져요. 간장과 된장이 좋아서 그래요. 5년 이상 되면 나트륨이 거의 제로가 돼요. 김치 한 번 잡숴 봐요. 젓국을 안 넣은 김치예요. 늙은 호박을 고은 간장으로 간을 한 김치예요. 전통방식이죠. 7년 된 간장인데, 한 번 맛보세요. 숟가락 내봐요. 간장인데 뒷맛은 달지요? 시중에선 이런 걸 볼 수가 없지요. 된장은 결명자된장이에요. 전통 콩이 얼마나 좋은지 한 번 잡숴 봐요. 냄새가 고소하지요? 짜기만 한 게 아니라 끝 맛이 틀려. 된장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효모가 살 수 없기 때문에 상해요. 된장이 10년쯤 묵으면 안 짜요. 우리는 결명자된장, 감초된장 하는 식으로 계절 따라 양념을 다르게 써요. 깻잎 같은 건 이 된장으로 조리를 하죠. 남들은 오전 장사만 한다고 핀잔을 주지만 매일 매일 반찬 다르게 만들고 나물 캐려면 열두 달 내내 바빠요. 난 편식하는 사람 싫어. 편식하다 나한테 3번 야단맞으면 그 다음부턴 밥 안 줘(손님으로 인정 안한다는 뜻)."
 
편식 혹은 음식 남기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이야기를 더 해보자. 이다정 씨는 더 먹는 건 열 그릇이든 스무 그릇이든 밥값을 안 받는다. 하지만 음식을 남기면 벌금을 받는다. 1천 원~6천 원이다. 그 돈은 모아서 진영의 고아원에 기탁한다. 그런 뜻에서 맞춤식으로 주문을 받기도 한다. 예약을 할 때 밥은 적게, 국은 많이, 나물은 많이, 장아찌 류는 없이… 하는 식이다. 이다정 씨가 유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김해시에서 저한테 표창장 줘야 해요. 음식물쓰레기가 거의 안 나오니까."
 
이 집의 단골손님들 중에서는 절반 이상이 매일 식사를 한다. 그래서 국과 밥, 반찬을 매일 바꾼다. 똑같으면 질리니까. 그래서 보기에는 색깔과 모양이 엇비슷하지만, 음식이 매일 매일 다 다르다.
 
'토란과 찜국'은 특이한 점이 적지 않은 곳인데, 결정적으로 특이한 점이 물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셀프도 아니다. 식사를 하기 전이나 하고 난 뒤 1시간 전후에 물을 마시면 위와 식도에 안 좋다고 해서 그러는 것이다. 이다정 씨는 대신 식후에 자신이 장만한 차를 제공한다. 오늘은 탱자를 말려서 질금에 발효시킨 발효차다. 시큼하고 달콤하다. 3년 이상 숙성된 차라야 손님상에 올린다고 한다.
 
술은 팔지 않는다. 반주를 즐기는 애주가들은 부디 실망하시기를.
 
▶토란국·찜국 정식 각 7천 원. 비빔밥 1만 원. 특별 주문을 하면 1만 2천 원짜리 상을 받을 수도 있다.
▶식당 앞에 널찍한 비포장 주차장이 있다. 주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외동 702-1. 055-3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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