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33년째를 맞는 제경록(왼쪽) 김해시의회 의장과 부인 정영민 씨가 사이좋게 심원산장에서 옻닭을 즐기고 있다.

속이 냉하거나 손발이 자주 저리고
위장 약한 사람들에게 좋다고 알려져
닭과 함께 옻 삶으면 독성도 중화

짙은 갈색 육질에 맑고 풍미 진한 국물
소금 없이 먹어도 싱겁다는 느낌 적어
닭죽 대신 면보자기에 찐 찰밥 이색
산초열무김치·묵은지는 입안 상큼하게
 


"거 참 입장 곤란하네."

김해시의회 제경록(58) 의장에게 '나의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대뜸 난처하다는 말부터 했다. 정치인이기 때문에 참 곤란하다는 이야기였다. 특정 식당을 소개할 경우 다른 식당 주인들로부터 오해를 사기 딱 좋다는 것이었다.

며칠 고민하던 그가 고른 음식은 옻닭이었다. 마침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고 있으니 보양음식인 닭백숙을 소개하는 게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해서 제 의장과 함께 찾아간 식당은 진영읍 좌곤리의 '심원산장'이었다.
 
세상이 좁다는 게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기자는 고향이 밀양이다. 지금은 대구-부산고속도로가 개통돼 고향에 갈 때는 그 길을 이용한다. 하지만 그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와서 진영IC(현재 동창원IC)에서 내렸다. 심원산장은 진영IC 바로 인근에 있었다. 고향 갈 때 늘 달리던 길옆에 이 식당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심원산장이 있는 줄도 몰랐다.
 
식당을 최종 선택하기 전 제 의장은 "남 국장, 옻닭 먹고 옻오르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시골 출신이 무슨 옻? 어릴 때 앞산이며 뒷산이며 뛰어다닐 때 늘 옻나무에 손 다리를 스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옻나무를 약재로 사용해왔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마른 옻은 어혈과 여인의 경맥불통 적취를 풀어주며, 장을 잘 통하게 하고 기생충을 죽이며, 피로를 다스린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옻은 소화를 돕고 살균 작용을 한다. 또 몸을 따뜻하게 해주며 신경통, 관절염, 위장병, 염증 질환 등에 좋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속이 냉하거나 손발이 저린 사람, 위장이 약한 사람들이 주로 옻닭을 많이 찾았다. 다만 옻은 독성이 강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게 문제다. 그런데 닭을 옻과 함께 넣어 삶으면 옻의 독성이 중화된다고 한다.
 
제 의장은 친구 모임이나 각종 행사를 할 때 심원산장을 즐겨 찾는다고 했다. 이날은 마침 부인인 정영민(55) 씨가 동행했다. 거기에 평소 점심을 살 일이 있었던 동네 친구, 후배와 김해시의회 사무국 직원들까지 합류했다. 이렇게 해서 모인 사람들은 20명 가까이나 됐다.
 
어느 백숙집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옻닭은 1~2시간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제때 먹을 수 있다. 우리 일행이 식당에 앉자마자 까만 뚝배기에 담긴 옻닭이 테이블마다 한 마리씩 놓였다.
 
심원산장에서 내놓은 닭은 직접 키우는 것도 있고, 시장에서 사오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일행 중 한 명이 심원산장 이기연(54) 사장더러 "전부 직접 키운 닭이라고 하라"고 하자, 이 사장이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먹어보면 다 알 텐데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검은 뚝배기에 담긴 옻닭은 보통 백숙에 비해 색깔이 짙은 갈색을 띤다. 이 사장은 "닭 국물은 남편이 밤새 한잠도 못자고 가마솥에서 고아낸다"고 말했다. 한 번 국물을 고면 다섯 말 정도가 나온다. 국물에 닭을 넣고 다시 1시간 이상 삶으면 옻닭이 완성된다. 옻 국물을 고아내다 남편이 깜빡 잠드는 바람에 가마솥을 태워 먹은 적도 여러 번이라고 한다. 제 의장은 "이 집 옻닭 국물은 맑다. 맛은 진하면서도 담백하다. 소금 없이 먹어도 싱겁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 맑은 국물에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심원산장 옻닭.
제 의장은 부인과 함께 심원산장을 더러 찾는다고 했다. 두 사람은 올해로 결혼 33년째다. 제 의장의 친구가 부인의 오빠였다. 제 의장은 이번 임기를 끝으로 정치 인생을 마감하려 한다. "아내가 얼마 전에 그러더군요. '이제 나를 위해 살아 달라'고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정치에서 손을 떼고 아내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기로 했죠."
 
심원산장 옻닭 요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찰밥이다. 닭백숙을 주문하면 대개 고기에 이어 닭죽이 나온다. 그러나 심원산장에서는 죽 대신 찰밥을 준다. 닭을 삶을 때 찹쌀을 면 보자기에 싸서 함께 찐 것이다. 죽처럼 먹고 싶은 사람은 찰밥을 국물에 넣어 더 끓이면 된다. 밥이 좋은 사람은 그냥 찰밥을 먹는다.
 
왜 이렇게 주는 것일까? 사장의 설명은 이렇다. "닭죽은 먹기 편하지만 사실 양이 적어요. 그래서 먹고 나면 곧 배가 꺼지기도 하죠. 찰밥을 드리는 것은 양껏 드시라는 거죠. 게다가 죽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런 손님들을 위해서 찰밥을 드리는 겁니다."
 
옻닭과 함께 나오는 밑반찬은 몇 개 안 된다. 그중 입맛을 당기는 게 두 가지 있다. 산초열무김치와 2~3년 묵은 김치다. 제 의장은 "옻닭을 먹으면 아무래도 기름지니까 약간 느끼하다. 이때 열무김치와 묵은 김치를 먹으면 입안이 상큼해진다. 열무김치에는 경상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산초가 들어 있어 입안을 더 개운하게 해 준다"고 말했다.
 
산초는 심원산장 측이 식당 바로 옆의 밭에서 직접 키운다고 한다. 열무는 시장에서 사온다고 했다. 열무는 벌레가 많이 먹는 채소여서 집에서 키우려면 손이 너무 많이 가 힘들다고 한다.
 
▲ 닭죽 대신 손님에게 대접하는 찰밥. 밥은 면보자기에 싸서 닭을 삶을 때 함께 쪄 낸다.
설명을 듣고 잠시 밖에 나와 식당 주변을 둘러보니 앞뒤로 단감나무 밭이다. 알다시피 진영 단감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작물이 아니던가! 이 사장은 감나무 사이사이에 산초는 물론 상추, 고추, 파, 양파, 부추를 직접 키운다.
 
김치는 매년 겨울, 한 번에 1천~1천500포기를 담근다고 했다. 이렇게 만든 김치를 항아리에 넣어 식당 앞에 있는 창고에 넣어 보관한다. 2~3년 정도 김치가 익으면 손님에게 내놓는다. 지난해에는 배추 값이 너무 올라 김치를 담그지 않았단다. 김치를 보관 중인 창고에 들어가 봤다. 안이 서늘하다. 냉장 시설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항아리 여러 개에 익은 김치가 담겨 있다. 뚜껑을 하나 열어보니 냄새가 새콤 상큼하다.
 
옻닭을 다 먹을 즈음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워진데다 닭 국물이 따뜻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땀이다. 신문을 만들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곤해진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다음 주는 힘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차에 오른 제 의장이 웃으면서 말한다. "남 국장,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진영갈비 원조를 소개할게요."


▶심원산장에서는 옻닭 외에 닭 한방백숙과 옻 오리, 오리한방백숙도 취급한다. 가격은 똑같이 3만 5천 원이다. 이 사장은 "요즘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인지 닭보다는 오리를 찾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다. 닭과 오리의 판매비율은 1 대 10 정도라고 한다. 삼복더위 때도 사정은 비슷하다는 게 이 사장의 말이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좌곤리 310-1. 055-345-7672. 017-548-7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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