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요예술창작촌에서 바라본 사명산.

도요고개 양지마을 들머리로 길을 잡아
녹음 뒤덮인 산길 구름에 달 가듯 걷다
사명재·도요 갈림길서 왼쪽 길 접어들면
수풀 사이 얼굴 내미는 무척지맥 종착지
발 아래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물결
길 배웅 야생 식물 뒤로 하고 날머리행
도요나루 입구엔 나무탁자 쉼터 반기고


만난다는 것은 길을 내고, 길을 트고, 길을 열어둔다는 것. 만난다는 것은 몸을 열고, 눈빛을 열고, 사랑을 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만난다는 것은 버려야 할 것 버리고, 내려야 할 것 내리며, 상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 그리하여 만남이 소통이 되고, 만남이 통섭이 되고, 급기야 만남이 오로지 만남 자체가 되는 것. 그리하여 하나가 되는 것, 함께 흘러가야만 하는 것.
 
이번 산행은 가락국의 진산, 무척산 줄기와 유장한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사명산'을 오른다. 무척산 지맥이 김해 북단으로 치달아, 1천 여리를 흘러온 낙동강과 함께 만나는 지점의 종착지가 사명산이다. 산과 강이 만나러 가는 자리에 사부작사부작 동행하는 느낌의 산행이다.
 
도요고개 양지마을에서 함안조씨 유택을 거쳐 사명산에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153m봉을 넘어 도요나루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하산한 후에는 도요마을에 있는 '도요창작스튜디오'에 들러 문화의 향기에 잠시 젖어도 볼 수 있는 코스이다.
 
도요고개를 지난다. 외길을 따르는데, 모든 것들은 녹음과 녹음뿐이다. 비릿한 밤꽃냄새가 등천을 하고, 차창 밖으로는 초여름의 왕성함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양지마을 버스정류소 채 못가서 도로 오른쪽 폐업한 식당 앞에 선다. 이곳이 사명산 들머리이다.
 
건물 사이로 돌계단 몇 개 있고, 그 위로 산길이 나 있다. 돌나물 노란 꽃이 양지 바른 곳에서 소담스럽다. 매실나무에는 작은 매실들이 조랑조랑 열렸는데, 사람 손이 가지 않아서인지 씨알도 작고 벌레도 많이 먹었다. 한창 야생의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산길 초입부터 개망초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이즈음이면 어디든 눈에 띄는 흔하디 흔한 풀꽃. 나라 망할 때 피는 꽃이라 이름조차 개망초꽃이다. 그러나 그의 꽃말은 '화해'이다. 하얗고 작은 꽃송이가 푸름 속에 반짝이면, 온산은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주고받는 것이다.
 

개망초꽃의 환대를 받으며 산을 오른다. 곳곳에 까치수영도 몽글몽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개옻나무가 웃자라 가끔씩 길을 가로막고, 청미래덩굴은 사람 발길 가는 데마다 붙잡고 치근댄다.
 
곧이어 공터에 무덤 2기. 나란히 앉은 것이 아니라, 격을 두고 앉았다. 어떤 사이인지 몰라도 서로 수줍은 듯,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이웃하고 있다. 서로 말이라도 섞고 지내는지 모를 일이다.
 
산을 더 오르자 곳곳에 산초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초 향 따라 길을 오르니 함안조씨 유택이 보인다. 봉분도 크게 올리고 석상과 석등도 갖추었다. 봉분 위에 삘기꽃들이 가득 얹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마치 고인의 말을 통역하듯 조곤거리고 있다. 잠시 오르니 다시 함안조씨 유택이 나온다. 이 주위가 모두 일가의 묘역인 듯하다.
 
봉분 위쪽으로 길을 잡는다. 지금부터 산길은 희미해져 길을 만들며 올라야 할 상황이다. 졸참나무를 넘고, 개옻나무를 헤치며 산을 오른다. 솔가지들이 어깨를 치고, 가시덤불들이 발목을 잡는다. 모자가 벗겨지고 신발 끈이 풀린다. 부러진 솔가지를 밟을 때마다 바삭바삭 투명한 비명을 지른다.
 
계속되는 오르막. 땀은 비 오듯 하고, 숨은 턱에까지 차오른다. 곳곳에는 멧돼지가 땅을 판 흔적들이 보이고, 고라니 똥도 얼핏 비친다. 서서히 마루금과 맞닿은 하늘이 비치기 시작한다. 큰 숨 한 번 쉬고 단번에 능선길에 올라선다. 오른쪽은 사명재로 해서 무척산으로 오르는 길이고, 왼쪽은 사명산과 낙동강변 도요마을로 향하는 길이다. 왼쪽 길을 따른다.
 
곧이어 사명산 정상팻말이 걸려 있는 나무 앞에 선다. 이곳이 사명산(169m) 정상이다. '준.희'의 정상팻말에는 '사명산 165m'로, 그 옆의 김명근 씨 리본에는 '사망산 163m'로 기록해 놓았다.
 
사명산은 산꾼들에게 '사망산'으로도 불리는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 따르면 사명산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산 이름과 산 높이가 아무러면 어떤가? 산의 이름이나 높이를 고집하려 산을 오르는 건 아닐진대 말이다.
 
▲ 사명산 날머리 부근의 낙동강. 무척산 줄기와 유장한 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사명산. 무척지맥의 마지막 종착지. 수풀 사이로 나뭇잎들이 '솨솨~' 낙동강의 무른 물결로 흐른다. 이 나무 물결 따라 김해 최북단의 산줄기와 낙동강이 오랜 여정의 끝자락에서 서로 만나는 것이다.
 
왼쪽 능선을 따라 길을 진행한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낙동강, 그 푸른 물길이 나올 터이다. 햇빛에 글썽이며 천천히 그 유장한 몸짓 꿈틀대며 바다로 향하는 강물. 그 강을 보기 위해 산줄기는 한 발 한 발 강에게로 낮아지고 있다.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숲은 짙을 대로 짙었다. 칡넝쿨이 나그네에게 슬쩍 한 손을 내민다. 능선은 계속 편한 걸음으로 길을 뻗는다. 그 길 위에 부부 유택 하나, 금슬 좋게 앉아있다. 나그네의 길마중 하듯 온화하다.
 
유택을 지나자 작은 봉우리 하나 사람을 맞이한다. 그 봉우리에 오르자 나뭇가지 끝에 걸어둔 '준?희' 리본이 '153m봉'임을 알려준다. 근처에 파묘의 흔적이 있고, 길이 두 개로 갈라진다. 오른쪽 길을 택한다.
 
급격히 떨어지는 길에 나무숲마저 짙다. 조심해서 길을 내린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서자 직박구리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낙동강의 서늘한 바람이 몸을 식혀준다. 멀리서 기차가 경전선 철교를 건너는지 요란스럽게 덜컹거린다.
 
작은 봉우리 한 개를 더 넘어서니 능선이 끝나고 본격적인 하산길로 접어든다. 강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산줄기이기에 내리는 길이 깊은 골의 비탈 수준이다. 그나마 길도 희미하여 애를 먹는다. 곳곳에 널브러진 나무 밑동과 가시덤불로 가는 길이 난망하다. 바로 눈앞에 낙동강이 넘실거리는데 말이다.
 
한참을 덤불을 헤치며 길을 찾아 내리자, 이윽고 작은 골 하나 보이고, 그 골을 넘으니 멀리 전원주택 한 채 반가이 맞이한다. 주택으로 가는 길을 따라 내리자 이윽고 산의 날머리, 도요나루 입구에 도착한다.
 
날머리의 나무탁자 쉼터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른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처마 끝에 30~40여 개의 산악회 리본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펄럭이고 있다. 무척지맥의 마지막 종착지의 홀가분한 기분이 울긋불긋 리본으로 흩날리는 것이다.
 
날머리의 강아지 한 마리와 칠면조 한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울어쌓고, 먹자두, 보리수, 매실, 사과가 한창 열매를 맺느라 여념이 없다. 팝콘 터지듯 감꽃이 떨어지고, 주홍색 석류꽃이 화르르 제 몸을 다 태울 기세로 햇살과 내통하고 있다. 모두 다 왕성한 생명력들이다.
 
도요나루 앞 제방에 선다. 큰 키의 나무 몇 그루들이 강바람에 여유롭게 흔들리고, 맞은 편 양산의 깊은 산들이 첩첩으로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다. 그 아래로 낙동강은 말없이 끝 길에 잠시 쉬고 있는데, 애꿎은 나뭇잎만 소소하게 제 살 부비는 소리만 낼 뿐, 모든 삼라만상들이 적막, 고요한 적막으로 한창 이르고 있음이다.


▶도요마을 가는 길
적요하고 거리낌 없는 편안함

도요마을로 접어드니 한가롭기 짝이 없다. 부녀 부장이 운영하는 마을구판장에는 점심 추렴을 하러 갔는지 문이 잠긴 채다. 도요창작스튜디오에 들어서니 개 4마리가 반갑다고 꼬리를 졸래졸래 흔든다. 새들이 푸른 나무 잎사귀 사이로 자유롭게 지저귄다.
 
낮의 도요는 적요로우면서도 편안하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곳이다. 스튜디오 옆 도서관에서 최영철 시인을 기다린다. 도시생활 청산하고 도요에 아주 눌러앉은 사람. 30여 년을 지인으로 지낸 문단 선배의 얼굴을 보려고 기다리는 것이다. 행복한 기다림이다.
 
도서관 책장마다 삼라만상을 읽어내는 문장들이 적막 속에 잠들어 있다. 넉넉하다. 이렇게 넉넉한 터에 사람이 모인다. 사람이 모여 연극도 올리고, 좋은 책도 만들고, '맛있는 책읽기'도 한다. 이 작은 강변 마을이 문화의 큰 마당이 되는 것이다. 넉넉한 강줄기를 끼고, 가락국의 무척산을 업은 곳에서 문화의 넉넉함이 오래도록 머무는 것이다.
 
얼마나 됐을까? 삼랑진을 다녀온 최영철 시인이 사람 좋은 미소로 걸어온다. 그의 손에는 시원한 맥주 몇 병과 산딸기 한 박스가 들려 있다. 산을 내려온 후배의 갈증을 풀어줄 요량이다. 참 넉넉함이 이를 데 없는 사람… 그가 그림자 넉넉하게 끌고 걸어온다. 그의 웃음 속에 강물이 담긴다. 그윽한 산줄기가 잡힌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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