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民畵)는 조선 후기에 발달한 그림이다. 대체로 민화를 그린 화가들이 밝혀지지 않은 점으로 미뤄 무명화가들이나 서민들이 그린 그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민화는 예술적인 감상보다는 생활공간을 장식하는 그림이었다.
따라서 민화에는 민중의 미적 감각과 소박한 정서가 배어 있다. 민중들이 복을 기원하는 마음과 미의식도 함께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서민층의 성장과 더불어 나타난 민화는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통예술의 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강경란(44) 씨는 김해에서 민화를 그리고 있다. 그는 민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한편, 한지공예와 민화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 "민화와 한지공예를 접목해 일상생활에서도 민화를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의 작업계획을 설명하는 강경란 씨. 다정공예방의 벽면에는 그의 민화 작품들이 걸려 있다. 박나래 skfoqkr@

강김해문화의전당 한켠 작업공방에서
민화·북아트·한지공예·골판지공예 등
다양한 분야 가르치며 작업활동 왕성

경란의 작업공방은 김해문화의전당에 있다. 윤슬미술관 입구 못 미친 공간에 그의 작업공방인 '다정공예방'이 있다. 민화·한지공예·북 아트·골판지공예 등 여러 부문의 공예를 가르치는 한편, 그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다정공예방은 그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한지로 만든 장식장, 약장, 소반 등 갖가지 작품들이 있고, 그 너머 벽에 민화가 걸려있다.
 
그는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서 나고 자랐다. 결혼을 하고 1995년에 김해로 이사를 왔다. "사실은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에요. 친정아버지의 고향이 한림면 퇴래리이고, 그곳에서는 아직도 아재들이 살고 계시거든요." 그는 김해로 온 까닭을 시원스럽게 털어놓았다. "18년 전, 당시에는 김해의 집값이 좀 쌌죠. 그리고 공기도 너무 좋았구요. 5세, 3세 된 두 아이들을 위해 김해로 왔어요. 두 아이들이 잘 자라 지금은 인제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 꿩과 매화를 소재로 한 '화조도'에 채색을 하는 강경란의 손길이 섬세하다.
21세에 결혼한 그는 벌써 대학생 아들을 두고 있다. "직장생활 한 번 안하고, 결혼을 일찍 했더니 20대 후반에 벌써 아이들이 훌쩍 자라 있더라구요. 잔손이 안 가도 될 만큼 자란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언제까지나 살림과 육아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0대, 40대가 되어서도 계속 밥하고, 살림하고… 그건 좀 아니다 싶었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좀 무료하기도 했구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일단 컴퓨터부터 배웠지요."
 
종이접기에서 시작해 한지·색지공예 등
관련 자격증만 모두 11개 따며 '열성'


5년 전부터 서울 오가며 민화 세계 심취
원하는 색채 위해 물감작업 수없이 반복
김해공예협회전에 '일월오봉도' 선보여
관람객·관계자들 호평으로 실력 인정


그는 6개월 과정의 컴퓨터 교육, 1년 과정의 보육교사 과정 등을 거쳤고, 운전면허를 땄다. 이 세 가지를 1년 안에 모두 달성한 후에는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했다. 보육교사로 일할 때 종이접기를 배웠다.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한 교구교재를 직접 만드는 경우가 많기에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종이접기를 하다 그만 푹 빠져버린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도 좋았지만, 종이접기를 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성취감을 맛보는 기쁨이 더 컸어요."
 
그는 진해에서 활동 중인 김경애(한국수공예협회 경남본부장) 선생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을 오가며 고지공예(한지공예가 색을 물들인 한지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고지공예는 탈색한 한지를 사용한다)도 배웠다. 한지공예, 색지공예 등 관련 자격증만 11개를 취득했다. 그는 이처럼 배우러 다니던 시기를 일러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았던 시기"라고 고백했다.
 
그가 민화를 배운 건 5년 전부터다. 그가 활동하고 있던 (재)종이문화재단의 교육과정에 민화 분과가 생긴 것이 계기였다. 서울을 오가며 엄미금(민화작가) 작가에게 민화를 배웠다. 엄 작가는 2003년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전시 '잃어버린 색깔을 찾아서'전 이후 현대적인 감각의 민화를 꾸준히 선보이며, 새로운 민화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작가이다. 현재 국민대학교·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 전통민화지도자 강사, (재)종이문화 한국민화협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2012 김해공예협회전에 출품했던 강경란의 민화작품 '화조도'.
민화 자격증을 딴 이후에도 강경란은 엄 작가에게서 계속 가르침을 받았다. 이번에는 민화의 세계에 빠진 것이다. 엄 작가의 특강을 받으면서 강경란의 민화 사랑은 점점 깊어갔다.
 
"시작한 지 5년 정도라 이렇게 나서기도 쑥스럽네요"라면서도 그의 민화 이야기는 계속 됐다. 그가 민화에 쓰이는 물감인 분채와 석채를 들고 나왔다. 분채는 작은 알갱이 형태인데, 이것을 물과 아교에 개어야 한다. "엄 선생님은 항상 분채를 손가락으로 개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저도 항상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물과 아교의 함량에 따라 농도가 달라진다는 걸 손가락으로 직접 느끼고 익히라는 의미이지요."
 
그림 한 장을 그리려면 손가락으로 분채를 얼마나 개어야 하는 걸까.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석채는 작은 먹의 형태이다. 붓글씨를 쓸 때 먹을 가는 것처럼 갈아야 한다. 이 또한 예삿일이 아닌 듯 싶었다.
 
"손가락으로 분채를 개고, 석채를 갈아 만든 색을 한지에 올리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면 한지에 올리기 전의 색과는 좀 달라져요.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서는 수없이 물감을 개고, 갈고, 칠하고, 기다리고 해보아야 합니다.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혼자서 하면서 익혀야 하는 과정이지요."
 
전해져오는 민화의 소재는 주로 호랑이·산신·용·까치·오리·꽃·나비 그리고 십장생이다. 현재의 민화는 전통민화의 본을 떠 한지에 올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강경란은 야생화를 민화로 그리고 싶다고 고백했다. "본이 없는, 저만의 민화를 그리고 싶어요. 그 작업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색채가 화려하지만, 보면 볼수록 은은한 매력도 있습니다."
 
강경란이 그린 그림 중에는 '일월오봉도'가 있다. 일월오봉도란 말 그대로 달과 해 앞의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이다. 다른 명칭으로는 '일월도' '곤륜도'라고도 한다. 이 그림이 놓이는 위치는 주로 임금이 앉는 용상 뒤였다. 왕권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제작된 그림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조선 왕실의 일월오봉도가 보관돼 있다.
 
강경란은 3년 전 일월오봉도를 김해공예협회전에서 선보였다. 그림을 그리는 데 걸린 기간은 6개월 정도. 전시장에 온 많은 이들이 이 그림을 탐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다정공예방의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인다.
 
그는 작업을 하는 틈틈이 장애인을 위한 봉사, 지역의 마을벽화 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공방으로 찾아오는 성인을 가르치기도 한다. 한지공예·민화·종이접기·종이조각·한지그림·골판지공예·클레이아트·북 아트·냅킨아트·쿠키클레이 등 그가 가르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나의 직업이기도 하니 정말 행복합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민화와 한지공예를 접목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벽에 걸린 민화가 아니라, 한지로 만든 장롱과 소반 같은 작품에 민화를 올려 실생활에서 쓰이는 공예품에서도 민화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 강경란
김해미협회원, 김해공예협회 감사로 활동 중. 김해문화의전당 내 다정공예방 운영. 한양예술대전 초대작가, (재)종이문화재단 민화분과 이사·김해종이문화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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