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동탁주를 만들기 위해 밥을 쪄 옮겨 담고 있는 모습. 전통의 제조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른 아침, 기대와 우려 속에 오랜 세월 김해 토박이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는 <상동양조장>을 찾았다.
상동면 대감리에 있는 상동양조장은 간판은 고사하고 양조장임을 알리는 그 어떤 표식도 없다.
지붕에 뚫린 환풍구 사이로 밥을 찔 때 나오는 수증기가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뻔 했다.
30여평 남짓한 작은 양조장에는 26년째 술을 빚고 있는 박대흠 대표와 예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 두 분이
새벽 4시부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규모 시설 투자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다보니 저절로 옛날 방식 그대로의 수작업이 진행된다.
"요새 젊은 사람들 이래 돈 안되고 힘든 일을 할라캅니꺼." 박대표의 말 속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장인들의 손으로 직접 빚었다는 감상적인 광고 카피는, 여기서는 그저 팍팍한 현실일 따름이다. 어디 상동양조장만 그럴까 만은…


막걸리 열풍이 식을 줄을 모른다. 지난 5년간 5% 대에 머물러 있던 막걸리의 시장점유율이 2009년 7.8% 수준으로 증가한데 이어 2010년에는 10% 대를 넘어섰다. 수출 또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 2010년 막걸리 수출액은 전년대비 3배가 증가한 1900만 달러 였다. 이 결과에는 사상 최대 규모라는 상징성 외에 또 하나의 의미심장한 결과가 숨어있다. 최근들어 일본 전통주인 사케가 인기를 끌면서 매년 50%의 수입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막걸리의 최대 소비시장인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자 사상 처음으로 막걸리 수출액이 사케 수입액을 넘어섰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0년 일본으로의 막걸리 수출액은 1558만 5000달러인데 반해 사케 수입액은 1369만 1000달러로 집계됐다. 한·일 양국의 전통주 경쟁에서 막걸리 덕분에 자존심을 회복한 셈이다.
 

▲ 상동양조장 박대흠 대표가 이른 새벽 상동탁주를 숙성시키고 있다. 26년째다. 장인의 손맛으로 빚는 그 맛엔 오랜 세월이 숙성되고 녹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열풍의 진정한 수혜자가 누구냐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전국의 막걸리 제조면허를 보유한 업체는 770여개에 이른다. 하지만 서울탁주와 (주)국순당이 전체 시장의 66% 내외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업체는 지역을 기반으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대기업들까지 본격적인 막걸리 시장 참여를 선언하고 나섰다. 직접 생산, OEM 생산, 지분인수, 수출 및 유통대행 등 다양한 형태로 진출하고 있다.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해 오던 지역의 중소·영세 막걸리업체의 입장에서는 막걸리 열풍이 마냥 반갑지 만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상동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상동탁주는 나름 내력이 있는 막걸리다. 한 때는 없어서 못팔 정도로 김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7년 국세청에서 주관한 '제1회 대한민국 주류 품평회'에서는 입선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입선에 뽑힌 전통주는 전국적으로 60개에 불과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방 막걸리도 전혀 수도권 막걸리에 뒤지지 않는다. 맛이 훌륭하다"는 칭찬과 더불어 새참 전용주로 선택함으로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이후 중앙과 지역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도 되었다. "신문이고 방송에서도 찾아 오고, 전화로 택배 주문도 들어오고 하드만은 그 때 잠시 뿐이지예".

김해 토박이들이 애호하는 술이고, 품질도 인정 받았고, 막걸리 열풍까지 불고 있는 마당에 상동탁주의 현실은 왜 여전히 팍팍할까? 여기에는 한 가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오랜 기간 생막걸리(비살균탁주)는 제조업체의 소재지에서만 유통할 수 있었다. 이름하여 "비살균탁주의 공급구역 제한 규정"이다. 규제완화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이 규정이 지난 2000년 폐지됐다. 이를 통해 막걸리의 전반적인 품질 향상과 막걸리 붐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조금 뜻밖의 현상이 벌어졌다. 홍보력과 유통망을 가진 대형 양조장에서 생산된 막걸리가 중소도시를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해 역시 부산합동양조에서 생산하는 '생탁'이 갈수록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추세다. 삼방동에서 신어국수를 운영하는 강희철 대표는 "손님들이 왕종근 막걸리만 찾는다"고 전한다(KBS 아나운서 출신이 왕종근 씨는 생탁의 CF 모델이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부정하거나 규제완화를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막걸리 전국적인 열풍 속에서 가려져 왔던 지역 양조장의 현실을 한번쯤 돌아 볼 필요가 있다.

▲ 박대흠 상동양조장 대표가 완성된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밀가루→쌀→밀가루→쌀. 상동탁주를 만드는 주 원료의 변천 과정이다. 이 과정은 비단 상동탁주 뿐만 아니라 우리 막걸리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되자 정부는 1965년 '양곡관리법'을 통해 술의 재료로서 쌀의 사용을 금지했다. 이후 미국에서 수입된 밀가루나 옥수수로 막걸리를 빚게됐다. 통일벼의 연이은 풍작으로 정부미 재고량이 많아지자 정부에서는 1977년 쌀막걸리를 권장했으나 이내 폐지했다.

1990년 이후 쌀막걸리 제조가 다시 가능해 졌으나 상동탁주는 밀막걸리를 고집했다. 하지만 지난 2010년 7월부터 상동탁주는 100% 국내산 쌀만을 사용해 술을 빚고있다. 여기에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 국내산 쌀 소비 촉진을 위해 고심하던 정부는 국내산 쌀을 원료로 사용하는 경우에만 농·축협이 운영하는 매장에 입점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정했다. 약간의 강제성이 있는 조치이기는 해도 국산 쌀의 소비촉진과 막걸리의 품질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 조치를 두고도 막걸리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5년 씩이나 묵은 정부 비축미로 만든 막걸리가 좋은 술일까?'하는 점이다. 그런데 상동탁주 맛을 보고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밀가루냐 쌀이나, 수입이냐 국내산이냐, 햅쌀이냐 묵은쌀이냐에 따라 미묘한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술의 품질을 그 술을 빚는 사람의 솜씨에 달려 있다. 26년간 한결같이 새벽 4시면 막걸리를 빚어 온 박대흠 대표의 상동탁주는 주 재료의 변천과 상관 없이 꾸준히 성장해 왔다.

상동탁주는 개운한 청량감과 달콤한 과실향이 잘 어우러졌을 뿐만 아니라 잡맛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마무리 또한 훌륭하다. 생막걸리의 특성상 병입된 후에도 숙성이 진행되는 관계로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를 즐기는 재미도 있다. 3일쯤 지나면 향은 더욱 풍부해지고 숨어 있던 산미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취재 도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박 대표의 표정이 이내 밝아지고 목소리 또한 상기됐다. 이유를 여쭤봤다. 거래처인 삼거리슈퍼에서 온 전화란다. 삼거리슈퍼에서 상동탁주 맛을 본 다른 소매점 업주가 술 맛에 반해 판매 의사를 전해 왔다고 한다. 새로운 거래처가 열린 것이다. 좋은 술을 결국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이었다. 하지만 대형 양조업체의 공세에 비하면 이러한 점진적인 변화는 여전히 위태로워 보인다.

상동탁주 맛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예전만큼 쉽게 구매할 수 없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지역의 영세한 양조장의 처지에서 보면 홍보와 유통망의 확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자치단체와 지역의 상공계는 전통과 품질이 인증된 지역 술의 판로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고민할 시점이다. 전국적인 막걸리 열풍을 우리 지역의 관점에서 대처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취재를 끝낸 후, 상동탁주 한 박스를 구입해 조촐한 시음회를 가졌다. 김해 토박이를 비롯해 막걸리 애호가 네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김해 토박이는 변함 없는 맛을 칭찬을 했고, 처음 접한 막걸리 애호가는 뜻밖의 맛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순식간에 대여섯 통을 비워 버렸다. 시중에 유통되는 다른 막걸리와의 비교 시음에서는 그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졌다. 전국의 유명 막걸리와 충분히 겨뤄 볼 만한, 김해의 자부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은 막걸리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술이란 이러쿵 저러쿵 말로 전해듣기 보다는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맛을 봐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상동탁주는 현재 김해 시내 농·축협과 제한된 몇몇 소매상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양조장으로 직접 연락하면 상자 단위로 택배도 가능하다. 0.7ℓ와 1.2ℓ의 병당 소매가가 1200원과 1500원이며 한 상자에 각각 20병과, 15병이 담겨 있다.

▶주소 :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634
▶연락처 : 055-323-6611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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