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과 고흐를 동경했던 도예가 박용수 씨. 그의 공방은 진례면 담안리 21-2에 있다. '미다운도예'.
공방 앞에 서면 가장 먼저 가마가 보인다. 가마 옆에 공방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소박한 전시공간인 작은 건물이 있다. 햇볕 잘 내리는 마당을 지나면 살림채가 있다. 올해 분청도자축제를 앞두고 축제 일정 살피랴, 작품 만들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 미다운도예의 전시공간에 전시된 박용수 도예가의 다양한 작품들.

이중섭과 고흐·고갱을 동경했던 소년
공예학교에서도 이젤·화구통을 들고 일요일마다 동해남부선 기차를 탔다
산,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그리기 위해

좋아하는 그림과 색을 접목하기 위해
선택했던 도자공예의 길
투박하고 소박해서 더 정감가는 분청 작품 속에선 그 또한 조물주이다


박용수(53)는 부산 남구 대연동 못골에서 나고 자랐다. 그때는 부경대의 전신인 부산수산대학 바로 앞까지가 바다였다. 그는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면서 조개를 잡고, 유엔묘지에서 총싸움을 하고 숨바꼭질을 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그가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어렸을 때였다. 대연초등학교 2학년 때, 미술시간에 어머니를 그리는 수업을 했다. 선생님이 그의 그림을 보면서 "잘 그렸다"고 칭찬을 했다. "그때 그린 어머니 얼굴 그림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내가 그림을 그려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됐죠. 그 일이 대연중학교에 입학하고 미술부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대연중학교 미술부 시절, 그는 부원들과 함께 이중섭의 그림을 보면서 토론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림에 깊이 심취했던 것이다. 개성이 강한 이중섭과 훌륭한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그는 한편으로 자신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나는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선배들과 동기들은 나보다 더 잘 그리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릴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중학생 시절 그런 고민을 하면서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단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거였죠!"
 

▲ "분청은 부드럽고 정감이 넘치고 인간적인 느낌이 들지요. 문양을 자유분방하게 원하는 형태로 작업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죠." 도예가 박용수 씨는 분청에 회화적인 요소를 더해 작품들을 만들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림을 두고 자신의 재능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까까머리 박용수는, 그러나 부산공예학교에 2기로 입학했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당시 부산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예술고가 생기기 전이었어요. '공예'라는 개념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저 저 학교에 가면 그림을 그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림이 그리고 싶어 공예학교에 진학하려는 아들을 둔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대개 인문계고 진학과 대학 입학을 원하지만 그의 부모는 상당히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아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아들이 그림을 잘 그린다고 자랑도 많이 했단다. 심지어 "그림 한 점 그려줘라"고 아들에게 슬쩍 청탁도 했다. 박용수가 그린 유화 그림 몇 점은 그렇게 해서 "우리 용수가 그린 그림 어떠냐"는 자랑과 함께 아버지 친구들의 집에 걸리기도 했다.
 
박용수는 입학한 뒤에야, 공예학교의 수업과정이 그림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공예학교를 진학한 친구들도 만났다.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일요일마다 떠나는 스케치여행은 학창시절의 빛나는 추억이었다. 이젤을 메고 화구통을 든 어린 화가들은 일요일 아침마다 동해남부선 기차를 탔다. "완전히 '고래사냥' 분위기였죠, 뭐. '고래사냥' 노래를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림을 그리러 가는 겁니다. 기차 안에서 또래 학생들이 우리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하면서 쳐다보면 왠지 으쓱해지기도 했고…. 서생역에서 내려 4㎞를 걸어 '신암마을'이라는 곳까지 갔어요. 그 마을이 우리들의 스케치여행 비밀장소인 셈이었어요. 바다, 산, 아름다운 마을풍경 모든 것이 그림의 소재가 됐어요. 함께 간 선후배들과 그림도 그리고, 고흐와 고갱 이야기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감동도 하고…."
 
하구언 둑이 생기기 전의 을숙도, 부산 기장군 정관면의 바다도 그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답답할 때마다 바다를 찾아갔어요. 보고 있으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아서요. 지금도 바다를 좋아합니다."
 
공예학교 2학년 때 그는 또 한 번 진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조소, 석공, 도자, 염색, 금속, 표구, 목칠 등으로 세분화된 전공과정을 선택할 시기가 된 것이었다.
 
그림을 좋아했던 친구들은 표구반을 선택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림과 가까이 하겠다는 뜻에서였다. "전 그림이 그 무엇보다 좋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중섭이나 고흐나 고갱 같은 화가가 될 거 같지는 않았어요. 밥 먹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들었고, 미술 선생이 되기도 힘들 것 같고, 생각이 많았죠. 결국 도자공예를 선택했습니다. 회화적 요소가 많은 과정이거든요. 도자공예를 하면 제가 좋아하는 그림, 좋아하는 색을 접목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공예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유니버스세라믹에 취직해 개발실에서 근무했다.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에 수출할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하고 국내용 제품도 개발하는 회사였다. 박용수는 이 회사에서 다양한 디자인들을 접했다. 경주의 월성요업㈜ 개발실에서도 근무했다. 몇 년간 타지에서 일한 뒤 그는 1998년, 학창시절 즐겨 찾았던 부산 기장군 정관면에 처음으로 공방을 차렸다.
 
김해에 온 것은 2001년이다. 공방을 열 장소를 찾기 위해 부산과 경남 일대를 찾아다니던 중, 진례면 담안리에 들어와 작업을 하고 있던 공예학교 선배의 공방에 들른 것이 인연이 됐다. 그 선배는 미교다물요를 열고 있는 도예가 정민호 씨.(본보 1월 22일자 10면 '공간&' 참조) "선배님도 뵙고 고민도 함께 나누려고 들렀는데, 현재의 이곳을 소개해주셨어요. 2001년에 들어왔으니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 올해 김해분청도자축제 행사 준비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용수 도예가.
박용수의 '미다운도예'는 그렇게 해서 진례면 담안리에 터를 잡았다. 공방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모습을 지켜본 한 친구가 20여 개가 넘는 이름을 지어 왔다. '미다운'은 그 중에서 고르고 고른 이름이다. '아름다운'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는 분청 작업을 주로 하게 됐습니다. 백자가 좀 차가운 느낌이 있다면, 분청은 부드럽고 정감이 넘치고 인간적인 느낌이 들지요. 문양을 자유분방하게 원하는 형태로 작업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죠. 예부터 경상도 쪽의 도자기는 투박함과 소박함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지요. 도예가들도 그것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고요."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넣어, 회화적인 요소를 접목한 분청도자 작업을 하고 있다. "조물주가 세상만물을 만들었 듯,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껏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작품을 빚어낼 때만큼은 제가 조물주가 된 듯한 기분이 들죠."
 
그는 현재 ㈔김해도예협회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매년 열리고 있는 김해분청도자축제의 올해 행사 준비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제 작품을 만들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자리예요. 올해는 분청도자관 앞에 '도자의 거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보도블럭을 도자작품으로 만들어 거리를 도자예술의 향기로 가득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10월 초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도예협회 회원들이 작업분량을 나누어 맡아서 제작하고 있는 중이다. 가로 세로 60×60㎝ 크기의 도자 블록에는 각 도예가들의 개성이 가득 담길 것이다. "제작기법을 고민해가며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특색 있는 거리로 만들 계획이니 시민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 박용수
㈔김해도예협회 이사장. 예얼도예가회원, 김해미협회원, 울산예술가회원, 한국미협회원, 김해선면전회원. 한일교류전(무다카다시 예술회관), 흙과 물의 생명전(성산아트홀), 김해예술제 미술특별전(대성동고분박물관), APEC기념 특별도예전(기장도예관) 외 전시회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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