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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은 기억할까, 사라진 이름의 산 '덕산'(46) 대동 덕산(德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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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3.07.02 16:10
  • 호수 130
  • 12면
  •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덕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낙동강과 양산 물금. 바다의 일부가 되기 위해 유장한 흐름을 이어가는 장대한 물길이 거침없다.
창원 자여도와 양산 황산도 연결하며
교통·체신 담당하던 옛 덕산역
그곳이 없어진 뒤 지도에서도 자취 감춰

백룡암 퇴색한 대웅전 단층과 낡은 문틀
낙동강 굽어보는 웅장한 새부리바위
하늘이 열리고 마루금 보이는 능선에도
멈추지 않는 강처럼 쉼없는 산의 숨결이



강은 멈추지 않는다. 유장한 발길로 흘러흘러, 가야 할 목적지가 있기에 그렇다. 바다라는 큰 품의 일부가 되기 위해, 쉬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잠시 발걸음을 늦추며 배웅하는 산줄기와 눈을 맞추기도 하지만, 소용돌이를 돌아서라도 거침없이 흐르고 만다.
 
사람은 그리움을 만나기 위해 강을 건넌다. 강 너머 존재하는 이들은 모든 그리움의 대상이다. 장대한 물길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고 애만 태우다가, 그리움을 만나러 거친 물살을 헤치며 강을 건너는 것이다.
 
산은 그런 강과 사람을 그저 바라만 본다. 흘러가는 강과 그 강을 건너는 사람을 애잔한 마음으로 배웅을 한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서, 오는 이를 맞고 떠나는 이를 보내는 것이다. 대동면 덕산리에 있는 덕산(德山)도 그런 마음으로 서 있는 산이다.
 
덕산은 옛적 덕산역(德山驛)이 있던 마을의 수호산. 덕산역은 창원 자여도(自如道)와 양산 황산도(黃山道)를 연결하며 각 지역의 교통과 체신을 담당하던 주요 거점 역이었다. 이 역(驛)을 내려다보며 덕산은 역마(驛馬)와 사발통문이 드나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 터이다.
 
이번 산행은 대동면의 덕산에 오른다. 처음부터 비탈의 경사가 심하고 가끔씩 너덜과 희미한 산길 때문에 쉽지 않은 산행이지만, 정상 주변의 풍광이 너무 뛰어나 산행의 어려움을 일시에 잊게 해주는 매력 있는 산이다.
 
덕산마을에서 덕산정수장을 끼고 시멘트 임도를 따라 오르다, 백룡암, 너덜지대, 능선으로 하여 정상에 오른다. 그 후 다시 능선 따라 471m봉 아래로 나있는 산길로 백룡암까지 내려와 덕산마을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대동공영버스를 타고 대동면 덕산리의 덕산정수장으로 향한다. 버스는 끄덕끄덕 녹음 짙은 시골길을 지난다. 원지, 괴정, 감천, 감내 마을을 지나 종점인 덕산마을에서 버스는 그 길을 접는다. 마을 뒤에는 덕산정수장이 성채처럼 산을 업고 버티고 섰다.
 

   
▲ 백룡암 대웅전 뒤켠에서 내려다본 절 풍경과 대동벌. 강 건너 부산 금곡동이 아스라히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온갖 소채들이 왕성한 생명력으로 제 몸집들을 키우고 있다. 상추, 콩, 대파, 콜라비… 등이 줄지어 이랑을 만들고, 산딸기 밭에는 한창 산딸기가 빨갛게 맛있게들 익어가고 있다. 산딸기 몇 개 따서 입에 넣는다. 새콤달콤한 것이 입맛을 돋운다.
 
마을 중앙에는 수령 350년 된 팽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섰다. 오랜 시절, 덕산에 역이 있었을 때 역의 책임자 찰방(察訪)이, 이 노거수를 심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덕산역을 떠난 이들은 낙동강을 건너 황산도를 따라 한양으로 넘나들었을 것인데, 이들을 마중하고 배웅했을 수도 있겠다.
 
덕산정수장 담벼락을 따라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뙤약볕이 강렬하여 눈이 부시다. 담벼락에는 부들이 군락을 이루며 한창 제 키를 키우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부들이라 반가움이 더하다. 발밑으로는 낯선 이의 방문에 놀란 개구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부산스럽다.
 
   
▲ 푸른 하늘을 담고 바람 따라 물결이 찰랑이는 덕산저수지.
덕산저수지가 푸른 하늘을 담고 바람 따라 물결을 찰랑인다. 저수지를 뒤로 하고 시멘트 임도를 오른다. 초입부터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발밑으로 뜨거운 열기가 훅훅~ 올라오는 비탈길을 말없이 걸어올라 갈 뿐이다.
 
길섶으로 칡넝쿨과 청미래 덩굴이 산지사방으로 창궐하고 있다. 대표적인 여름나무인 자귀나무 꽃이 오리나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자귀꽃은 꽃모양이나 색깔, 향기, 모든 것이 농염한 여인을 연상케 한다. 자귀나무 아래에 잠깐 머무르면 정신이 맑아지는데, 한잠 편히 자고나면 온몸이 마비가 된다. 치명적인 여인의 현신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 들머리를 조금 지나면 바위벽 아래에 당집이 있다.
산줄기가 크게 휘돌아들기 전, 작은 바위벽 옆으로 당집이 하나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위 틈 아래를 제단삼아 '德山堂山神(덕산당산신)'이란 패를 모셔놓았다. 덕산의 산신을 모시는 당집쯤 되겠다. 당집 옆 암벽에도 치성을 드린 흔적이 역력하다. 바위틈으로 고사리가 새파랗게 웃자라고 있어 새삼스럽기도 하다.
 
다시 길을 오른다. 시멘트 임도 위 틈새에, 강아지풀 하나 외로이 피어 있다. 어쩌다 이 척박한 곳에 풀씨를 틔웠는지, 오요요~ 오요요~ 바람에 흔들리며 나그네를 맞이한다. 홀로이 산을 오르는 나그네 마음 같아, 한 번 더 되돌아보며 잘 자라기를 염려한다.
 
산딸기를 따 먹으며 계속 산을 오른다. 바위채송화가 군집을 이루어 노랗게 피어들 나고, 원추리 꽃무리들이 기다란 목 위로 꽃들을 피웠다. 여러 문양의 나비들이 나풀나풀 날아오고, 큰 메뚜기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사람을 놀라게 한다.
 
한참을 더 까무러칠 정도의 경사 길을 오르자, 소담한 절이 얼핏 보이기 시작한다. 백룡암이다. 대나무 숲에 살짝 숨어있듯 하던 절이, 경내에 들어서자 제법 넓어 보인다. 백구 한 마리 나그네를 보고 컹컹 짖는다.
산꾼들 말로는 이 백구가 산길을 안내해준다는데, 묶여 있어서 안내받을 수가 없겠다. 큰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 옆으로 평상이 놓여 있다. 모든 바람들은 평상 밑으로 들기를 좋아한다는데, 이 절의 평상에도 바람이 참 잘 모이겠다.
 
편안하게 앉아 있는 대웅전은 단청도 퇴색되고 문틀도 낡았다. 그런 자연스러움이 산과 함께 어우러지며 차라리 마음이 그윽해진다. 작은 소채밭에는 고추, 상추, 등속이 고랑 몇 개를 이루고 있고, 절 뒤쪽으로는 살구나무 하나, 잘 익은 살구 몇 알 노랗게 매달고 서 있다.
 
   
▲ 백룡암 뒤쪽 계곡을 가득 채운 너덜지대.
절 뒤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다시 산을 오른다. 언제나처럼 경사는 계속 급하게 이어진다. 큰 비탈에 나무를 부여잡으며 길을 오른다. 얼마쯤 오르자니 계곡을 가득 채운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참나무 낙엽이 가득 쌓인 너덜을 조심스레 타고 오른다.
 
숨이 턱턱 막힌다. 60도 이상 급경사의 너덜이 끝없이 이어진다. 작은 돌더미 하나가 발을 헛딛게 한다. 거의 돌들이 살짝살짝 포개져 있는 상태라, 밟기만 하면 '우르르~' 비명소리를 내며 아프게 무너져 내린다. 거의 네 발로 걷다시피 너덜을 기어오른다. 악전고투가 따로 없다
 
땀범벅의 고개를 잠시 들자, 하늘이 열리고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까스로 능선에 도착한 것이다. 능선에서 바람을 맞으며 가쁜 숨을 고르고 있자니, 머리 위로 햇빛 한 줄기 서광처럼 비추인다. 서광이 비치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 정상 부근에 있는 새부리바위.
잠시 편안한 능선을 따른다. 곧이어 큰 바위 하나 길을 가로막고 있는데, 그 바위로 난 길을 오르니 덕산(499m) 정상이 보인다. 정상 주변으로 여러 산악회의 리본들이 만장처럼 펄럭이고 있다. 정상팻말에는 '덕산'이 아니고 '새부리봉'으로 기재해 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덕산은 덕산역이 없어진 어느 때부터인지,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서도 사라진 산이었다. 김해 관련 몇몇 기록물에만 '대동면 덕산리에 있으며 산 아래 백룡암과 덕산역이 있었다'라고 소개할 뿐이다. 하여, 이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덕산의 제 원래 이름을 되찾아야 주는 일에 힘써야 할 일이다.

덕산 정상에 서니 새부리바위가 하늘을 향해 부리를 치켜들고 우뚝하다. 조심스레 새부리바위에 오른다. 오금이 저리는 바위 위에서 산 아래 풍광을 조망한다. 사방팔방의 전망이 거칠 것 없이 터진다. 온 가슴이 탁 트인다. 온갖 산골짝의 바람이 이리로 다 모여 든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양산의 오봉산, 토곡산 등이 보이고 물금벌 주위로 양산신도시가 한눈에 조망된다. 금정산의 장대한 몸짓도 보이는데, 고당봉은 구름 속에 숨어 자취를 숨기고 있다
 
고개를 돌려 동신어산 능선을 바라본다. 낙남정맥의 시작점인 동신어산, 그 산줄기가 수려하게 펼쳐진다. 낙동강에서 뭍으로 올라온 산줄기가 지리산으로 내처 뻗어가는 것이다. 새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는 백두산 마루금을 비롯해 장척산, 신어산 제 능선들이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다. 멀리 석룡산과 무척산도 병풍 치듯 첩첩산중이다.
 
다시 되돌아 능선으로 길을 내린다. 큰 다복솔도 보이고 굴참나무도 제 큰 잎에 바람을 매달고 흔들린다. 봉우리 하나 넘고도 계속 부드럽고 편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계곡의 바람만 나그네를 따를 뿐 홀로이 산을 휘돌아든다.
 
또 한 봉우리를 넘자 바위가 하나 서 있고 리본이 펄럭인다. 471m봉이다. 전망바위에서 잠시 쉰 후, 덕산마을로 내리는 산길을 다시 따른다. 어마어마한 경사다. 발 디딜 때마다 작은 돌들이 구르고,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며 아프게 비명을 질러댄다.
 
한참을 그렇게 내리자니 목줄 푼 백룡암 백구가 백룡암 갈림길에 서 있다. 나그네와 눈이 마주치자, 제 절로 안내하듯 길을 앞선다. 순순히 백구를 따라나선다. 백구 따라 가는 길이 집으로 가는 길처럼 편안하고 넉넉하다. 멀리서 '딸랑~' 풍경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두 손 모아 합장하듯 그 길을 조용히 따른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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