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토박이 치고 이집 모르는 이 없죠
구수한 냄새 시장골목에 퍼져나가면
집집마다 커다란 솥 가져와 담아갔어요
잘 익은 깍두기 반찬 하나면 그만입니다

▲ 동상동 전통시장 상인회 김철희 회장이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2.7식당'에서 소머리수육을 들어보이고 있다.
동상동전통시장 김철희 상인회장(57)은 동상동에서 태어나 동상동전통시장 골목에서 평생을 살아온 동상동전통시장 토박이이다. 지금도 그는 이곳에서 아내 김덕자(55) 씨와 함께 '동네족발'이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아내가 "남 좋은 일 그만 하고 가게 일 좀 도와 달라"고 '바가지'를 긁었지만, 아랑곳 없이 다시 전통시장 회장 직을 맡았다. 벌써 5년째다. 그는 가게를 비워두는 한이 있더라도 오토바이를 타고 동상동전통시장을 위해 골목을 누비고 있다.
 
"언제 한번 소주나 한 잔 합시다." 김 회장은 기자를 만날 때마다 항상 이런 말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하지만 김 회장과 술잔을 기울여 본 적은 없다. 그가 워낙 바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그에게 연락해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김 회장이 잘 가는 맛집이면 더욱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회장을 따라 간 곳은 동상동전통시장 식당 골목에 위치한 '2.7식당'이었다. 소머리곰탕과 소머리수육을 파는 곳으로, 이곳에서 70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 셀 수 없이 많은 식당들이 새로 생기고 또 사라지는 요즘의 세태에 비춰봤을 때, 이 식당에게는 '버텼다'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식당 주인 이필임(89) 할머니는 지난해 4월 11일 '시장사람들' 시리즈를 통해 <김해뉴스>에 소개된 바 있다. 지금은 할머니의 외손녀 김현경(40) 씨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에는 식탁이 5개뿐이다. 김 회장이 이 식당을 소개한다. "김해에 이렇게 오랫동안 대를 물려가며 장사하는 식당이 몇 곳이나 될까요? 김해 토박이 치고 이 식당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손녀가 할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어요."
 
두 사람이 먹기엔 좀 많다 싶은 양의 소머리수육이 식탁에 놓였다. 따라 나온 반찬은 새콤하게 익은 깍두기와 양파, 마늘이 전부다.
 
수육을 입안에 넣어 보았다. 살코기는 부드럽고 소머리 껍데기 부분은 쫄깃했다. 너무 삶으면 살코기가 물러지는데, 이 고기는 국물에 제 가진 것을 다 뺏기지 않은 듯 담백했다. 고기를 먹을 때 중간중간 씹히는 잔파가 느끼함을 덜어주었다.
 
"소주 한잔 해야겠지요?" 김 회장이 방긋 웃으며 기자의 속내를 읽었다는 듯 물어왔다. 유혹을 간신히 떨친 기자가 화제를 돌려 주인장에게 고기 맛의 비결을 물었다. "어방동 도축장에서 이틀에 한번 씩 소머리를 가져옵니다. 암소 머리고기를 주로 쓰는데, 새끼를 밴 적 없는 암소가 제일 맛있죠. 수소는 고기 양은 많이 나오는데, 암소보다 고기가 질겨요."
 
머리를 통째로 솥에 넣고 2시간 정도 삶은 뒤 고기만 발라낸다. 더 삶으면 고기가 맛이 없고 곰탕에도 기름이 많이 뜬다고 한다. 곰탕은 이틀간 소머리뼈를 고아서 우려낸다. 김현경 씨가 곰탕 두 그릇을 식탁에 올렸다. 뽀얀 국물에서 구수한 향이 솔솔 올라왔다.
 
▲ 소머리수육은 어방동 도축장에서 가져온 암소 머리고기로 만든다. 반찬이라고 해야 깍두기와 양파, 마늘이 전부다.
"소머리를 우려내는 구수한 냄새가 시장 골목에 퍼지면 집집마다 커다란 솥을 가져와 곰탕을 담아가곤 했어요. 아직도 곰탕 냄새를 맡으면 어릴 적 이 가게에서 곰탕을 가져가서 밥을 말아 먹던 생각이 납니다. 시장 상인들도 많이 먹었지요. 고된 일을 하는 시장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보양식이 어디 있겠어요?"
 
이 식당에서는 새우젓을 쓰지 않는다. 소금으로 간을 맞춰야 깔끔한 국물 맛을 느낄 수 있단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로 만든 양념은 기호에 따라 넣으면 된다. 김 회장은 깍두기 국물을 곰탕에 넣었다. "곰탕에는 딴 반찬이 필요없어요. 잘 익은 김치나 깍두기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소금을 넣어 휘휘 저은 뒤 그릇 채 들고 곰탕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제법 뜨거운데도 곰탕 국물이 후루룩 잘도 넘어갔다. 느끼했더라면 그릇을 그냥 내려놓았을 터. 국에 만 밥을 한 숟가락 뜨니 고기가 제법 많이 따라 올라왔다. 전통시장의 인심이 곰탕 한 그릇에도 오롯이 녹아 있었다. 정신없이 숟가락을 움직였더니 김 회장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천천히 드소. 체할라."
 
어느새 식탁 위엔 빈 그릇만 남았다. 김 회장의 이마엔 땀이 맺혔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습니까? 맛이 조금 심심하지 않나요?" 두 사람이 먹는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던 김현경 씨가 곰탕 맛에 대한 평가를 기대하는 듯 말을 걸어왔다. 김 회장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어릴 때 먹던 그 맛 그대로네!"라고 칭찬했다.
 
'2.7식당'의 새 주인 김현경 씨는 외할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어 식당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할머니가 연탄불 가스를 마셔가며 정성으로 소머리를 고아 손님에게 내놓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으니, 그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손녀의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김 회장이 식당 문을 나서면서 말했다.

"대를 물려서 하는 가게이고 옛날 곰탕과 수육 맛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으니 김해의 맛집으로 손색이 없지요. 그나저나 술은 왜 안합니까? 담에는 저녁에 여기서 꼭 소주 한 잔 합시다."


▶'2·7식당'은 동상동전통시장 내 칼국수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오후 8시에 닫는다. 주차는 동상동 주민센터 주변 공용주차장에 하면 된다. 소머리곰탕이 5천 원, 소머리수육 작은 게 1만 원, 큰 게 2만 원이다. 여름에는 수육을, 겨울에는 곰탕을 찾는 손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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