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토박이 치고 이집 모르는 이 없죠
구수한 냄새 시장골목에 퍼져나가면
집집마다 커다란 솥 가져와 담아갔어요
잘 익은 깍두기 반찬 하나면 그만입니다
그는 지난 3월 아내가 "남 좋은 일 그만 하고 가게 일 좀 도와 달라"고 '바가지'를 긁었지만, 아랑곳 없이 다시 전통시장 회장 직을 맡았다. 벌써 5년째다. 그는 가게를 비워두는 한이 있더라도 오토바이를 타고 동상동전통시장을 위해 골목을 누비고 있다.
"언제 한번 소주나 한 잔 합시다." 김 회장은 기자를 만날 때마다 항상 이런 말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하지만 김 회장과 술잔을 기울여 본 적은 없다. 그가 워낙 바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그에게 연락해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김 회장이 잘 가는 맛집이면 더욱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회장을 따라 간 곳은 동상동전통시장 식당 골목에 위치한 '2.7식당'이었다. 소머리곰탕과 소머리수육을 파는 곳으로, 이곳에서 70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 셀 수 없이 많은 식당들이 새로 생기고 또 사라지는 요즘의 세태에 비춰봤을 때, 이 식당에게는 '버텼다'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식당 주인 이필임(89) 할머니는 지난해 4월 11일 '시장사람들' 시리즈를 통해 <김해뉴스>에 소개된 바 있다. 지금은 할머니의 외손녀 김현경(40) 씨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에는 식탁이 5개뿐이다. 김 회장이 이 식당을 소개한다. "김해에 이렇게 오랫동안 대를 물려가며 장사하는 식당이 몇 곳이나 될까요? 김해 토박이 치고 이 식당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손녀가 할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어요."
두 사람이 먹기엔 좀 많다 싶은 양의 소머리수육이 식탁에 놓였다. 따라 나온 반찬은 새콤하게 익은 깍두기와 양파, 마늘이 전부다.
수육을 입안에 넣어 보았다. 살코기는 부드럽고 소머리 껍데기 부분은 쫄깃했다. 너무 삶으면 살코기가 물러지는데, 이 고기는 국물에 제 가진 것을 다 뺏기지 않은 듯 담백했다. 고기를 먹을 때 중간중간 씹히는 잔파가 느끼함을 덜어주었다.
"소주 한잔 해야겠지요?" 김 회장이 방긋 웃으며 기자의 속내를 읽었다는 듯 물어왔다. 유혹을 간신히 떨친 기자가 화제를 돌려 주인장에게 고기 맛의 비결을 물었다. "어방동 도축장에서 이틀에 한번 씩 소머리를 가져옵니다. 암소 머리고기를 주로 쓰는데, 새끼를 밴 적 없는 암소가 제일 맛있죠. 수소는 고기 양은 많이 나오는데, 암소보다 고기가 질겨요."
머리를 통째로 솥에 넣고 2시간 정도 삶은 뒤 고기만 발라낸다. 더 삶으면 고기가 맛이 없고 곰탕에도 기름이 많이 뜬다고 한다. 곰탕은 이틀간 소머리뼈를 고아서 우려낸다. 김현경 씨가 곰탕 두 그릇을 식탁에 올렸다. 뽀얀 국물에서 구수한 향이 솔솔 올라왔다.
"소머리를 우려내는 구수한 냄새가 시장 골목에 퍼지면 집집마다 커다란 솥을 가져와 곰탕을 담아가곤 했어요. 아직도 곰탕 냄새를 맡으면 어릴 적 이 가게에서 곰탕을 가져가서 밥을 말아 먹던 생각이 납니다. 시장 상인들도 많이 먹었지요. 고된 일을 하는 시장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보양식이 어디 있겠어요?"
이 식당에서는 새우젓을 쓰지 않는다. 소금으로 간을 맞춰야 깔끔한 국물 맛을 느낄 수 있단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로 만든 양념은 기호에 따라 넣으면 된다. 김 회장은 깍두기 국물을 곰탕에 넣었다. "곰탕에는 딴 반찬이 필요없어요. 잘 익은 김치나 깍두기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소금을 넣어 휘휘 저은 뒤 그릇 채 들고 곰탕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제법 뜨거운데도 곰탕 국물이 후루룩 잘도 넘어갔다. 느끼했더라면 그릇을 그냥 내려놓았을 터. 국에 만 밥을 한 숟가락 뜨니 고기가 제법 많이 따라 올라왔다. 전통시장의 인심이 곰탕 한 그릇에도 오롯이 녹아 있었다. 정신없이 숟가락을 움직였더니 김 회장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천천히 드소. 체할라."
어느새 식탁 위엔 빈 그릇만 남았다. 김 회장의 이마엔 땀이 맺혔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습니까? 맛이 조금 심심하지 않나요?" 두 사람이 먹는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던 김현경 씨가 곰탕 맛에 대한 평가를 기대하는 듯 말을 걸어왔다. 김 회장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어릴 때 먹던 그 맛 그대로네!"라고 칭찬했다.
'2.7식당'의 새 주인 김현경 씨는 외할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어 식당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할머니가 연탄불 가스를 마셔가며 정성으로 소머리를 고아 손님에게 내놓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으니, 그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손녀의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김 회장이 식당 문을 나서면서 말했다.
"대를 물려서 하는 가게이고 옛날 곰탕과 수육 맛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으니 김해의 맛집으로 손색이 없지요. 그나저나 술은 왜 안합니까? 담에는 저녁에 여기서 꼭 소주 한 잔 합시다."
▶'2·7식당'은 동상동전통시장 내 칼국수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오후 8시에 닫는다. 주차는 동상동 주민센터 주변 공용주차장에 하면 된다. 소머리곰탕이 5천 원, 소머리수육 작은 게 1만 원, 큰 게 2만 원이다. 여름에는 수육을, 겨울에는 곰탕을 찾는 손님이 많다.